화순이 : 부끄러움을 팝니다 (6)
후천성 가면 증후군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 여자 친구들로부터 심한 따돌림을 당했다. 갑자기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내가 지나갈 때마다 주위에서 나를 바라보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드라마나 웹툰에서 쉽게 등장하는 학교폭력의 장면이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의 한 구석에도 자리 잡고 있다.
따돌림을 당한 이유는 - 주동자들의 말에 의하면 - 내가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라 하였다. 내가 친하다 믿었던 친구들을 처음으로 집에 초대한 날, 친구들은 내 책상 책꽂이에 주르륵 꽂힌 수많은 문제집들을 보았는데, 그로 인해 큰 배신감을 느꼈다 했다. 평소에 공부하지 않은 척하더니 집에서 몰래 열심히 공부하는 내숭쟁이에 거짓말쟁이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상황이 무척 억울했다. 내가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한 거짓말도 아니거니와 단지 겸손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숨긴 것뿐이었는데, 이것이 이렇게 비난받아야 할 정도로 큰 잘못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학교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곳이므로 나 역시 재미있게 놀았을 뿐이고, 다만 시험 보기 전에 -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재수 없는 모습 같아서 - 공부를 별로 못했다는 친구들의 말에 맞장구치며 나도 그랬다고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친구들은 유독 나만 시험 점수가 좋았던 상황을 평소 의심스럽게 생각했고, 결국 눈앞에 꽂힌 수많은 문제집들 앞에서 거짓말쟁이, 재수 없는 아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었을까. 아니, 어쩌면 열심히 공부해서 수업시간에 적극적으로 발표하던 나를 유독 총애하던 담임선생님 때문에 나를 평소에 질투하고 있었다가 이 일을 계기로 나를 미워할 구실을 만든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외롭고 힘들었던 시간은 다행히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끝이 났다.
그런데 나는 왜 나의 노력하는 모습을 굳이 애써 친구들에게 숨기려 했을까? 혹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을 친구들이 알게 되면 나보고 독하다고 할까 봐, 아니면 자신들과 다르게 공부만 하는 나에게 이질감을 느껴 거리를 둘까 봐 걱정이 되었던 것일까?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그런 모습을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보이곤 한다. 내가 쏟아부은 노력을 실제보다 축소시키면서 내 노력을 숨기거나 과소평가하곤 한다. 턱없이 부족한 노력에도 운이 좋았다고 주변에 말하며 웃는 순간을 '이상적'이라 생각한다.
대체로 결과물을 만들거나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는 후회 없이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연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어느 정도로 노력했을 때에만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의 한계치까지 쓰러지기 직전까지 노력했을 때에만 그렇게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누가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내가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그것을 객관적으로 측정해서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감히 그것을 자신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들 속에 나는 스스로의 입으로 최선을 다했으며 열심히 노력했다고 말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겨우 그 정도로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느냐며 누군가가 나의 노력을 폄하할까 봐 두려웠다. 나는 늘 내가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인지가 궁금했고 늘 그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결국 노력의 정도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결과'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나는 내 노력의 정도를 어느 순간부터 결과론적인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 아무리 노력했어도 결과가 안 좋으면, 그것은 효율이 떨어진다는 차원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다, 결과가 좋으면 그것은 노력이 뒷받침된 것이므로 과정에서도 최선을 다한 게 맞을 것이라 합리화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한 게 아니라고 믿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에 심리학 책을 읽다가, 나의 이러한 성향을 진단하며 설명해 놓은 구절을 읽고서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나는 '후천성 가면 증후군'을 앓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성공할 만한 사람이 아닌데 그동안 주변 사람들을 속였어' 또는 '내겐 이렇게 성공할 자격이 없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후천성 가면 증후군'의 대표적인 증상이었다. 한마디로 나는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스스로가 열심히 하는 것조차도 주변에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 나는 다른 이들에게 백조처럼 우아하게 잘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애처롭게 발놀림 하며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증후군을 앓게 되는 이유는, 바로 집과 학교에서 무언가를 빠르게 성취한 사람, 소위 말해 '천재'만 인정받는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했다. 노력을 통해 성공한 사람 중 적지 않은 수가 이 증후군을 앓게 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노력'이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라 여기고 사람들이 실망할까 봐 불안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시험공부를 안 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시험을 잘 보면 내가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시험을 혹시 못 보더라도 공부를 정말 안 해서 못 본 게 되니, 그런 거짓말로써 내가 잃을 게 없는 상황을 만들고자 한 것이었다.
그동안 나는 스스로가 노력했던 것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 본 적이 없었다. 노력의 결과가 모두 성공으로 연결되지는 않더라도, 노력 자체로도 의미가 있고 자랑할만한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주변에서 노력하는 나를 격려하고 칭찬하는 말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 어쩌면 노력을 숨겼기 때문에, 부모님과 나 자신 이외에 나의 노력을 알아보아줄 사람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 나의 노력은 매일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노력하며 힘들었던 나를 스스로가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주지 못하고 인정해주지 못한 것은 몹시 불행한 일이었다. 노력하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기쁨을 잘 느끼지 못했던 것 역시 그것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결과 중심적으로 살아가게 된 나는 빛나는 완벽한 아이가 되고자 나의 노력을 숨겼고, 그것은 스스로에게나 다른 이들에게나 솔직하지 못하다는 죄책감을 낳았다.
타인에게 솔직하지 못하다고 자책하면서도 내 안을 쉽게 내보이지 못했던 아이. 그런 자신을 탓하며 정말로 내가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상한 아이가 아닐까 어느 순간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던 나는, 사실 무척 외로운 아이였다. 나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라 단지 두려움이 많은, 인정받고 싶었던 어린아이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많이 아팠던 것이었다.
이제는 그동안 열심히 살아주어서 고맙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앞으로는 가면을 벗고 노력하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그 모습 자체를 칭찬하고 존중해주자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