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순이 : 워킹맘의 줄다리기 (6)

모든 늙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by 일주일의 순이



2017년 2월 말, 남편은 출장을 갔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서 하룻밤 잠을 자고 갔다. 그다음 날 아침 한 친구가 신기한 꿈을 꿨다고 말해 주었다. 우리 집 베란다에 흰 잉어가 한 마리 놀고 있었다고 했다. 엄청 큰 잉어라고 했다. 어머?! 이게 무슨 꿈이지?

며칠 뒤 임신 테스트기에 희미하게 두 줄이 보였다. 꿈처럼 나의 잉어가 찾아왔다. 그 후 입덧을 다행스럽게도 견딜 만큼만 하며 배가 불러오는 것을 느꼈다. 어느 날에는 배에서 비누 방울이 터지는 느낌이 들었고 그 후 정말 나의 뱃속에서 잉어가 슝슝 헤엄쳐 나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점점 배가 불러와서 걷는 내내 숨이 차고, 배가 너무 커져 침대에서는 늘 옆으로 누웠다. 조금만 더 먹어도 음식물이 역류하는 느낌이 들었고 예정일 몇 주 전에는 소양증 증세까지 나타났다. 이렇게 견딜 만큼의 고통을 이겨내며 예정일이 되었고 드디어 나의 우주와 만나게 되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이를 낳고 조금 쉬었다가 아이를 만나러 가는 길, 설레서 두근거렸다. 어른들이 보내주신 사진과 동영상을 보았지만 내 눈으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드디어 내 이름표를 보여주고 우리 아이를 만났다. 살짝 게워낸 입과 똘망똘망한 눈, 엄마를 알아보는 듯한 표정. 모든 순간이 반짝거렸다. 설명할 수 없는 행복함을 느꼈다. 나의 보물, 은총, 그 어떤 수식어를 가져와도 아깝지 않을... 누군가 하늘에서 빛을 마구마구 쏟아주는 행복한 마음. 아, 이 마음이 엄마의 마음이구나. 엄마의 사랑이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행복과 비례하듯 육아의 고통도 만만치 않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정말 어려웠다. 나의 몸이 회복되기도 전에 아이를 돌봐야 했다. 누군가의 손길도 많이 필요했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가 천국이라고 늘 선배 언니들이 말했었는데 흘려 들었다. 조언을 들은 것 같은데 상상을 못 했던 것 같다. 아주 작고 나약한 어린아이... 조리원에서 아이를 안다가 떨어뜨릴까 걱정하고 혹시 나의 손이 아이를 다치게 할까 늘 조심스러웠다. 아이는 30분 정도 분유를 먹고 30분 정도 트림을 시켜줘야 하고 한두 시간 재우다 또 수유 시간이 되었다. 밤에도 2~3시간마다 깨서 아이를 먹이고 트림시키려고 등을 두드려 주고 그렇게 육아 동굴로 빠져들었다. 크면 클수록 아이는 내가 안아야 잠이 들었고 침대에 눕히면 아이가 언제 잠들었냐는 표정으로 잠에서 깨서 울었다. 점점 나의 얼굴은 초췌해졌다. 눈밑에는 판다처럼 깊은 어둠이 생겼고 임신하고 찐 살은 빠지지가 않았다. 힘들다고 밥을 먹다가 아이가 울면 그냥 과자로 식사를 할 때가 대부분이었고 그럴수록 살이 더 쪘다. 결혼식 사진의 젊고 상큼한 나는 없고 다른 사람이 되었다.

돌잔치를 하고 걸음마를 하고 어린이집에 가고 말도 하고 아이는 점점 나의 손을 덜 탔다. 그 아이가 벌써 6살이 되었다. 이제 혼자서도 옷을 입고 동생과 대결한다. 누가 이기지? 누가 이기지? 하며 엄마는 동생의 옷을 입혀주는 동안 누나는 이기려고 혼자 능숙하게 잘 입는다. 마스크도 딱 가져온다. 마스크 봉지도 뜯는다. 과자 봉지도 혼자 뜯는다. TV에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익살스럽게 따라 하고 예쁜 반지도 끼고 자랑한다.


언제 이렇게 컸지?


아이가 크는 동안 나는 늙었다. 어느 순간 내 머리에는 은빛 머리가 생겼다. 결혼 전에도 듬성듬성 새치가 있었다. 3학년 아이가 내 머리를 보고 살짝 놀라며 "선생님, 머리에 은빛 머리가 있어요." 하고 살짝 알려주었는데 흰머리보다 은빛 머리라고 표현해 준 것이 고마워 기억하고 있다. 예전에는 머리를 들추면 있었는데 이제는 잔디 머리처럼 조금만 들춰도 나오고 그냥 대뜸 '나 여기 있소' 하고 올라온다. 보일 때마다 족집게로 뽑아 버리고 우울해했다. 그런데 이제는 안 나는 게 아니라 와장창 나니까 뽑다가 내 어깨가 아플 것 같아서 포기했다. 어느 날 딸이 나에게 말했다.



"엄마 여기 하얀 머리 있어요."

"어머~ 하나 뽑아봐."



나는 누웠고 아이는 한 가닥 뽑아보려고 인상을 쓴다. 이 장면 나의 어릴 적에도 있었던 장면인데.... 엄마가 나에게 흰머리를 뽑아보라며 흰머리 하나 뽑을 때마다 10원씩 주겠다고 해서 뽑았던 기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나도 이 장면을 남기고 싶어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집중하는 아이와 누워있는 나를 찍었다. 나도 이제 엄마처럼 나이가 들었구나, 흰머리는 너무너무 싫지만 이제는 친구처럼 받아들여야 하겠구나. 내가 엄마 닮아 흰머리가 많구나. 이건 유전이니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은빛 머리는 반가운 친구가 아니라 불청객 같다.

내가 늙었다고 느껴질 때는 흰머리가 한 곳에 우수수 모여 나와 있을 때다. 이건 족집게 친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잘 버티다가 미용실에 가자. 체념해 본다. 또 늙었다는 징표는 추위를 타는 것이다. 나의 몸이 예전 같지 않을 때 늙었다고 느낀다. 고등학생 시절 추워도 코트 하나 안 입고 나는 강하다고 생각하며 교복만 입고 버티던 몸이 이제는 코트로는 안돼서 패딩을 무조건 입고는 한다. 이렇게 하나하나 내 몸이 변해가는 것을 느끼며 젊음에서 한 걸음 멀어져 가는 것을 느낀다. 아직 나는 30대인데, 왜 이렇게 흰머리가 나는 거지? 하고 너무 화가 난 적이 있었다. 흰머리를 뽑으며 눈이 뒤로 돌아가는 것처럼 뻐근하고 내 팔이 손을 들고 벌을 받는 것처럼 아플 때가 있었다. 이제는 하나씩 놓고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 거지. 생각해본다. 그 옛날 모든 것을 다 가진 황제도 늙기 싫어서 신하들에게 불로초를 구하여 오라고 시켰다. 늙음도 사랑해 줘야지. 노화는 자연의 섭리라는 걸 알면서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은 아직 내가 너무 어린가 보다. 몸은 늙고 정신은 어리니 이런 괴리를 어찌하면 좋을까?

엄마가 되는 일은 아이를 잘 키워내면서 엄마의 몸과 마음도 잘 가꾸고 키워 내야 하는 일 같다. 엄마로서의 내가 늙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모든 늙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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