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순이 : 오직 독서뿐 (8)
나는 왜 독서를 하는가
가만히 어릴 적을 떠올리면 책과 관련된 기억이 몇 개 없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 집은 그 누가 어릴때 나에게 책을 사줘본 적이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에 대한 첫번째 기억은 6살 무렵, 윗집 언니네 집에 가서 전래동화가 꽂혀진 책장을 보고 놀라하며 앉아서 하루종일 읽었던 것이다. 그때 그 언니를 많이 부러워하고 집에 돌아온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리고 떠오르는 기억은, 국민학생이던 시절, 방과 후에 새로 생긴 우체국 도서관에 친구들과 몰려가 책을 읽었던 일이다. 난생 처음 도서관의 분위기를 느끼고 조용히 책장을 넘기며 뭔가 으쓱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국민학교에 도서관이 있었는지, 이용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오로지 우체국에 도서관이 생겨 뛰어가서 책을 읽었던 기억만 남아 있다. ) 당시 나는 글쓰기도 잘하고,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통했던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그 후 책을 좋아하고 책을 읽으러 다녔던 기억이 없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은 말그대로 암흑기이다. 고전을 많이 읽어야 한다면서 몇몇 책을 기웃거리긴 했는데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만 중1때 읽은 기억이 나고 도통 책을 읽은 기억이 나지 않는 걸로 보아 책을 멀리 한 것으로 씁쓸한 결론을 내려야겠다.
대학교에 들어와서는 아무래도 전공이기 때문에 책을 조금씩 읽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학 4년 내내 읽은 책은 많다고는 볼 수 없다. 그 시절 책을 많이 읽지 못한 게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교사가 되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사실 나는 그러지를 못하고 살았다. 교직생활 적응도 하고, 연애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동료들이랑 술도 매일 마시며 책을 잊고 살았던 건 아닌가 싶다. 간혹 한 작가에 꽂혀 열심히 읽을 때도 있었지만 평균적으로 1년에 10권 이내 정도 읽은 것 같아 조금 부끄럽다.
그러던 중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정신없이 지내면서 마음 한켠엔 책에 언젠가 올인해서 푹 빠져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3년의 휴직생활을 마무리 하는 1년동안은 작정하고 구청에 있는 도서관을 다녔다. 오랫만에 복직한 어리버리한 사람으로 보이기가 두려워서 시작한 독서였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책읽기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임용고시 공부하는 것처럼 책을 읽어보자'. 당시 나의 다짐목표였다. 근 1년을 아이들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고 바로 도서관으로 향하면서 책에 어느정도 집중하였던 감사한 시기였다.
복직 후 매해 업무가 바뀌고, 또 학교까지 원치 않게 옮기게 되면서 책을 읽지 못하고 피곤함에 찌들다가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마음이 불안하고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그 우울함은 당장이 아니라 나의 미래, 우리 큰아이의 장래 진로까지 연결되면서 뭔가 불안하고 초조함을 불러왔다. 가만 있으면 도태되는 것 같고 뭔가를 붙잡고 싶었다. 내 주변에는 다 똑똑한 사람과 능력있는 사람들만 있는 것 같고, 나는 속빈 강정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 다시 책을 찾았다. 일년 목표를 100권 읽기로 잡았다. 시간이 날때마다, 점심에는 과일과 커피를 마시며, 집에 와서는 아이들은 밥만 겨우 주고 책에 매달렸다. 시간이 갈수록 책 읽는 속도도 빨라지고 재미도 더해지면서 점점 책에 중독되는게 느껴질 정도였다.
주변에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고, 독서모임도 하면서 책읽는 일은 점점 나를 드러내는 자랑이 되어갔다. 가끔 이게 맞나 싶었지만 그래도 책을 읽으며 나를 채워가고, 성장한다는 믿음이 굳게 박혀있기에 더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욕심이 마음속에 가득 들어앉았다.
그러던 중 평소 좋아했던 채사장의 강연을 유튜브로 들으면서 그가 책을 읽지 않아도 좋다는 말에 깜짝 놀라게 되었다. 아니, 엄청난 독서를 하며 책을 펴내며, 인문학 강연을 하고, 책과 관련된 팟캐스트를 비롯한 여러 활동과 강연을 하는 그가 왜 책을 읽지 않아도 좋다는 것일까...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거야 본인은 엄청난 책을 읽고 많은 지식을 얻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한 지 며칠 뒤, 우연히 박노해의 '걷는 독서'를 읽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쓴 서문을 읽으며 채사장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 박노해가 전하려고 하는 진심이 무엇인지 짐작을 해본다
“우린 지금 너무 많이 읽고 너무 많이 알고 너무 많이 경험하고 있다. 잠시도 내면의 느낌에 머물지 못하고 깊은 침묵과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끊임없이 찾아 다니고 찍어 올리고 나를 알리고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인정을 구하고 있다. 그리하여 책을 읽는 것조차 과시와 장식의 독서가 되고 말았다. 독서가 도구화될 때, 그것은 거룩한 책의 약탈이다. 내가 책 속의 지식을 약탈하는 듯하지만 그 지식이 나의 생을 약탈하고 있다. “ <걷는 독서>, 박노해
읽자마자 마음이 뜨끔해지는 건 내가 바로 그 과시와 장식의 독서를 하고 있기 때문아닐까? 심지어 나 자신에게조차 속이며 잘난척해대는 과시의 독서는 나의 삶을 야금야금 약탈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데 고등학교 친구가 20-30이 읽어야할 독서책 목록 36권 정도를 보내며 추천을 해달라고 톡이 왔다. 쓱 보니 나는 70프로 정도밖에 안본 거 같아 또 다 읽어야겠다는 욕심이 타오른다. 친구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고 먼저 읽을 책 추천을 해주니 역시 '독서의 신'이야 라는 말을 해주는데..그 말을 억지아닌 억지로 받아내며 (잘난체하며 톡을 보낸거라) 웃음이 나온거 보니 좀 우스꽝스럽고 유치한 생각이 푹 올라온다. 책 그게 뭐라고..내가 고작 그 리스트에 있는거 좀더 읽었다고 잘난체를 하는게 뭐람..글을 쓰는 지금, 내가 가진게 고작 그것밖에 없구나 싶어 눈시울이 붉어지고 부끄러워진다.
작가는 말한다.
“진정한 독서란 지식을 축적하는 '자기 강화'의 독서가 아닌 진리의 불길에 나를 살라내는 '자기 소멸'의 독서다. 책을 '읽었다'와 책을 '읽어버렸다'의 엄청난 차이를 알 것이다. 읽어버리는 순간, 어떤 숨결이 일었고, 어떤 불꽃이 피었고, 저 영원의 빛에 감광되어 버렸고 그로부터 내 안의 무언가가 결정적으로 살라지고 비워지고 만 것이다. 그 소멸의 자리만큼이 진정한 나를 마주하고 새로운 삶을 잉태하는 하나의 성소인 것이다. ~ 책으로의 도피나 마취가 아닌 온 삶으로 읽고, 읽어버린 것을 살아내야만 한다. 독서의 완성은 삶이기에, 그리하여 우리 모두는 저마다 한 권의 책을 써나가는 사람이다. 삶이라는 단 한 권의 책을.” <걷는 독서>, 박노해
아직도 욕심을 다 버리지 못한 나는 그의 의미를 100퍼센트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이제는 나의 독서방향을 수정하려고 한다. 더이상 책을 과시와 나의 방패막이로 삼지는 않겠다. 작가의 말처럼 나만의 길을 걸으며, 간절한 마음으로 읽고 싶다. 권수에 집착하지는 않으련다. 초조해하며 짜증내느라 내 아이들을 바라보지 않고 책읽기에만 몰두하지는 않을 것이다. 즐기면서 자유롭게..읽고 싶을 때 읽고, 싫을땐 책을 놓을 것이다.
그럴때 비로소 "걷는 독서는 나를 키우고 나를 지키고 나를 밀어 올리는 신비한 그 힘을 자신으로부터 길어내 준다" 라는 작가의 말이 진짜 나의 말로 울려 퍼지리라.
나는 아직도 독서가 나를 키워준다고 믿는다. 나를 지키고 나에게 힘을 주리라 믿는다. 하지만 그 독서가 기록을 재는 100미터 달리기 독서가 되지 않기를...나만의 길을 걸으며 '걷는 독서'로 이루어지길.... 책을 읽고 그 진리 앞에 응답하고 읽어 내 버린 것을 온전히 살아내기를..내 삶속에서 평안과 위안과 사랑속에서 독서가 자리잡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