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이 : 부끄러움을 팝니다 (8)
친구, J
오늘은 J와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J와 만나기로 약속하고 나면 나는 만날 날을 앞두고서 적어도 일주일 전부터 은근히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얼마 안 되는 외출복들을 꺼내놓고서 입을 옷이 없음을 한탄하면서 이 안에서 가장 괜찮아 보이도록 입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한다. 얼마나 고민이 되었던지,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있는 분리수거 쓰레기를 버리는 날조차 깜박하고 지나쳐버렸다.
하지만 J를 만나는 것을 어려워하는 마음은, 동창회에 그럴듯한 옷을 입고 나가서 있는 척하고 싶어 하는 마음과는 차원이 다르다. 없어 보이기 싫은 것은 맞지만, 단편적인 모습만 보이면 그만일 가벼운 친구 사이는 또 아니기 때문이다. J와 나는 대학교 새내기 때부터 지금까지 벌써 20년 가까이, 나름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격이 없는 친구 사이로 지내고 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아예 격이 없는 사이는 아니다. 친한 친구 사이에 '격'이라는 것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그녀는 강남에 사는 부잣집 사모님이고 그에 비해 나는 평범한 소시민이라서 엄연히 격이 다르긴 하다. 대학생 때는 사실 그 격을 느끼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자신만의 것을 일구기 시작하면서 나는 J에게 분명히 격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격' 때문에 나는 J를 만나러 갈 때 마음 편히 나가지 못하는 것 같다.
벌써 약 20년 전이다. 새내기 때 동아리에서 만나 절친이 된 J는, 나와 성격이 잘 맞아서 연애 고민부터 시시콜콜한 사는 이야기까지 다양하게 공유하는 사이였다. 어딘지 모르게 항상 자신감이 넘치는 J는 서울 생활이 낯선 나에게 많은 정보를 알려주었고, 힘든 시기에 많은 힘이 되어주었다. 엄마가 사준 옷만 입어본 나에게 제일평화시장에서 좋은 옷을 싸게 살 수 있다며 옷감을 만져보고 옷을 고르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데리고 다니며 가성비 좋은 맛집, 여러 핫플레이스 등을 소개해주었다. 그리고 해외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항상 소소한 기념품이나 작은 화장품들을 선물로 주곤 했다. 임용 시험에 재도전하며 공부할 때, 마침 J의 취업 준비 시기와 맞아서 함께 공부하고 밥을 먹으며 답답한 현실을 위로하기도 했었다. 우리는 졸업 후에도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기에 그녀가 세례를 받을 때 나는 대모가 되어 주기도 했으며, 혼배성사에 증인을 서고, 결혼식에서 부케까지 받기도 했었다. 나보다 3년 일찍 결혼한 그녀는 육아에 대한 것들을 내게 멘토로서 조언해 주었고, 지금껏 여러모로 나를 챙겨 왔다.
그런데 오랜 시간 동안 J로부터 참 많은 것을 받으면서, 이상하게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왠지 모를 빚이 쌓이는 기분이 들었다. 결혼도 육아도 먼저 하다 보니 J가 나보다 인생을 먼저 산 선배의 위치에 놓이게 되었고, 여러모로 나는 J에게 별로 해준 것 없이 대부분 받기만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분기별로 J에게 필요 없어진 육아용품 및 옷들을 택배로 받게 되었는데, 받을 때마다 나는 마음속에 빚이 더해지는 기분과 함께 약간의 혼란스러움까지 느끼곤 했다.
상자 안에는 J가 썼던 다양한 육아용품과 아이들 옷이 있었는데, 물려준 옷일지라도 한눈에 보아도 값비싼 것들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낡아 빠져서 구멍 나고 해진 옷들, 가끔은 세탁하지 않은 신발들까지도 함께 들어있었다. 물품들 간의 커다란 편차는 내게 심적으로 혼란을 주었다. 종합적으로, 그녀가 내게 보내주는 물건들이 구호물품처럼 느껴졌달까. 친구의 부족한 살림에 보탬이 되었으면 해서 보내주는 물품인 것인지, 그렇다면 나는 20대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J로부터 계속 도움을 받을만한 위치이기 때문에 보내주는 것인지를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물었던 것 같다. 그녀가 나에게 느끼는 것이 혹시 동정은 아닐까. 그런 생각들 속에서 마음 한편에 어둠이 쌓이게 되었고, 그 후로 택배를 받게 될 때마다 나는 종종 기프티 콘 같은 것으로라도 답례를 하게 되었다. 그것을 J가 원한 적도 없고 별로 반기는 것 같지도 않았지만, 이런 소소한 답례 없이 받는다면 정말로 구호물품이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J는 가끔씩 택배를 부쳤다는 카톡과 함께 '집에 필요 없어진 거 이것저것 다 보내니까 너한테 필요 없거나 너무 낡은 것은 버려'라고 하곤 했는데, 나는 그 말조차도 뭔가 꼬인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J의 택배를 거절할 방법은 생각나지 않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측면에서는 고맙기도 했지만, 뭔가 지울 수 없는 찝찝함을 느껴야 했다. J의 둘째와 우리 집 첫째의 신체 사이즈가 비슷해진 후로는 더 이상 그 택배를 받지 않게 되었지만, 내가 그런 어두운 마음으로 보냈던 시간들 때문일까, J에게 부족해 보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남게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J는 내게 고마운 은인 같은 친구임에 틀림없다. 무주택자인 나에게, J는 부동산 투자 선배로서도 내게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 J는 자신이 가진 부동산 정보를 활용해 청약 전문가를 소개해주었다. J가 소개해준 전문가는 우리가 아파트를 청약하는 전략을 짜는 데 도움을 주었고, 그 결과 그리 어렵지 않게 청약에 성공했다. 이처럼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에 J의 도움이 컸고, 나는 인생을 통틀어 J의 덕을 많이 보아왔다.
그만큼 고마운 친구인 J를, 나는 이렇게 어려운 마음으로 대하고 있다니, 그것부터 사실 매우 죄책감이 드는 부분이다. 하지만 항상 J와 내가 속한 범주는 다르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40을 바라보는 지금은 취미생활부터, 자녀교육의 목표나 지향점 등에 이르기까지 생활 수준과 환경으로 인해 그녀와 나는 다른 점이 아주 많아졌다. 그렇기에 20살 때에 비해 아주 많은 것을 격 없이 논하거나 공유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내 마음 한 구석이 편해지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대학 때부터 그러했듯이 J는 이번에도 나를 핫플레이스로 불렀다. 처음에는 압구정으로 약속 장소를 잡았는데, 차라리 걸으면서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며 그곳에도 맛집들이 많다고 덧붙이며 서울숲으로 나를 불렀다. 서울숲에서 산책을 하며 그동안 못 나눈 사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점심을 함께 한 뒤,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만남이었다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J와의 만남을 마무리하려는 그때, J가 잠깐 차에 들렀다 가라며 나를 이끌었다. 다시 또 격을 느끼게 하는 비싼 외제차 SUV가 눈에 들어왔다. 차 문을 열고 J는 무언가를 꺼내서 내게 주었다.
항상 J는 이런 식이었다. 작은 만남에도, J는 나를 위해 무언가를 챙겨 왔다. 소소하게 밥 먹고 수다 떠는 자리에까지, J는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었다. 그에 반해 나는 J에게 무언가를 해 줄 때마다,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 J에게 무엇을 주어야 좋을지 고민을 너무 많이 해야 했던 것 같다. 또는 오늘 이런 상황처럼 아예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J의 선물에 송구한 마음이 되어 열어보니, 선물은 꽤 여러 가지였다. 립밤과 휴대용 손 비누, 그리고 화분, 그리고 포장된 필름 대여섯 장.
화분에는 J가 정성껏 기른 구근이, 이제 곧 꽃필 날을 기다리며 예쁜 이파리를 뻗고 다소곳이 자라고 있었다.
필름은 우리가 스물한 살일 때, 사진기자였던 J가 나를 찍어준 것을 직접 암실에서 작업해서 만든 것인데, 아직까지도 간직하고 있다가 내게 돌려주는 것이었다.
나는 이 선물을 받고서, 그제야 지난 20년 동안 내가 그녀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깨닫게 됐다.
내가 그녀에게 경제적인 차이를 이유로 격을 쌓아 올리는 동안, 그녀는 꾸준히, 끊임없이 격을 무너뜨리면서 내게 진심을 보여왔던 것이다. 오늘 이렇게 정성되고, 소중한 선물을 준비한 것처럼, 끊임없이, 편하고 소중한 친구로서 내 곁에서 있어 주었던 것이다. 만남을 준비하며, 항상 이렇게 J는 나를 생각해주고 있었다. 삶을 살아가며, 항상 이렇게 J는 보이지 않게 나를 챙기고 있었다. J가 준 화분과 선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과 부끄러움으로 어쩔 줄 몰랐다.
마음을 조금 추스른 뒤, '나도 잊고 있었던 스물한 살의 내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줘서 고마워, '라고 톡을 보내니
J는, '스물한 살의 너를 찍도록 허락해 주어서 고마워.'라고 답했다.
오늘 하루, 자격지심 투성이의, 세속적이고 얄팍한 나에게 실망하고, J에게 말할 수 없이 큰 감동을 느꼈다, 아니 너무 미안했다. 고마움으로 덮을 수 없는 견딜 수 없는 미안함, 진심을 오해한 미안함.
친구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던가,
오늘에서야 나는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