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순이 : 워킹맘의 줄다리기 (8)

관계 회복의 줄다리기

by 일주일의 순이

이 이야기는 글로 한 번 풀어내고 싶었다. 내가 힘들거나 마음이 상했을 때 나의 방어 기제는 글을 쓰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고, 솔직하게 내 마음과 상황을 다 꺼내 보임으로써 당당해지기도 했다.


엄마가 되어 보니 나의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부모님이 옛날에 왜 그랬는지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빠는 많은 고민거리를 주던 사람이었다. 엄마에게도, 딸인 나에게도. 술을 좋아하고 각종 놀이를 좋아하셨다. 화투, 경륜, 경마, 내기 당구 등등. 그 때문에 엄마와 많이 싸우셨다. 어린 삼 남매는 싸우는 모습을 보며 울부짖기도, 애원하기도, 또는 아예 싸움에 관여하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 위태로웠다. 엄마 아빠가 이혼하면 어떻게 살지? 나는 누구랑 살지? 오늘의 싸움은 언제 끝나지? 항상 반복되는 레퍼토리였다. 술을 많이 드시고 온 아빠가 이런저런 술주정을 하시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게 비난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그 비난을 엄마가 맞받아 치면서 같이 싸우게 되고 우리는 그 싸움이 끝날 때까지 옆에서 같이 잔소리를 하거나 울거나 그만하라고 하는 게 빈번했고, 그럼 아빠는 잠시 담배를 피우러 나가거나 그냥 엎드린 채로 엄마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잠을 자거나 했다. 그렇게 그날의 싸움이 끝났다. 어린 시절 항상 아빠가 술을 마시면 보통 이런 과정을 거쳐서 끝난다. 끝이 안 나고 파국으로 치달을 때도 있었다. 끝은 예상할 수 없었다.



나는 아빠랑 대화가 별로 없었다. 아빠랑 이야기하려고 하면 항상 술을 드시고 왔고, 밤늦게 오거나 술에 취한 채로 오셨다. 그러면 싸우거나 운 좋은 날은 금방 주무셨다. 평상시에는 말씀이 없으셔서 대화를 잘 못했다. 대화하는 방법도 몰랐다. 그냥 싫었다. 매번 이렇게 술을 드셔서 싸움의 시작을 만드는 아빠가 너무 싫었다. 원망스러웠다. 친구들의 아빠들은 딸과 친해 보였다. 아빠랑 전화도 많이 했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왜 우리 집은 이렇게 싸우지? 왜 우리 아빠는 매일 술을 드시지? 왜 우리 가족은 이렇게 힘들지? 아빠와 싸운 후 동그라니 앉아 밤을 지새우며 생각에 빠져있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더 화가 나고 절망스러웠다. 마음에 많은 생채기가 났다. 나는 어두웠다.



어린 시절 술은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담배도 싫었다. 술 먹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증오했다. 그런데 내가 대학생이 되어 술도 접하게 되었다. 취한 느낌이 무엇인지도 알았다. 그래서 아빠처럼 비틀거릴 때도 있었다. 그 느낌을 싫어하지 않는 나를 보면서 자책했다. 요즘도 가끔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시원한 맥주가 생각이 난다. 아빠는 어떤 삶의 무거움으로 술을 찾았을까?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공사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일한 동료들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습관적으로 술을 드셨고, 그게 시작이 되어 늦게 까지 술을 드시는 일상. 어찌 보면 당연스럽기도 하지만 어릴 적 우리 가족을 굉장히 힘들게 했던 일상.


엄마가 되고 하나의 가정을 꾸려서 두 아이를 키우며, 견뎌야 하는 무게감이 다르다. 아빠는 가장으로서 세상에 맞서는 방어 기제가 술이었다. 사람마다 힘들 때 자신이 선택하는,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이 있는데 그게 등산이거나 술을 먹거나 글을 쓰거나 전화로 이야기를 하는 것 등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한다. 아빠는 방어 기제가 술이었고, 습관이 되어버렸다. 나약한 어른의 모습을 어른이 되어보니 이해한다. 아빠는 일하고 늘 먹는 술이 고약한 현실을 잊게 해주는 약이었다. 술을 먹으면 또 용기가 생겨서 가족들과 못다 한 이야기를 해 볼 수가 있었다. 그런 취지였지만 술 드신 아빠가 내비치는 진심이 너무 과해서 나는 너무 힘들었다.



나는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칠순이 된 우리 아빠, 하루라도 빨리 아빠와 화해를 하고 관계를 더 좋게 만드는 것과 그냥 지금처럼 아빠와 데면데면한 관계로 지내는 것, 이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아빠와 관계를 좋게 만드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하던 대로 지내는 것과 조금씩 용기 내서 아빠에게 사랑을 주는 것. 내 마음은 아빠와 관계를 좋게 만들고 조금 더 살가운 딸이 되는 것이 목표인데,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방법을 몰라서 관계의 줄다리기는 팽팽하다.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는 무조건 정답을 말하고 씩씩한 사람이 엄마인 줄 알았는데 아직도 어린 시절의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고 관계를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지 헤매고 있다. 엄마가 된 나도 나약한 사람이고, 칠순이 된 할아버지의 아빠도 나약한 사람이라 관계를 잘 풀어가고 이어가는 게 어렵다. 조금씩 아빠에게 아주 쉬운 목표부터 정해서 하나씩 해드려야겠다. 손주들 보시라고 영상 통화하기, 약간의 용돈을 몰래몰래 드리기, 작은 선물하기 등등. 반응이나 결과가 어떻건 간에 해보는 것이다.


줄다리기의 승자는 정해졌다.
작가의 이전글화순이 : 부끄러움을 팝니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