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순이 : 취미는 사랑 (8)

티비에서 보는 그대 모습은 너무 너무 예뻐요.

by 일주일의 순이

"나 덕통사고 당했어."
30년지기, 금융업에 종사하는 화려한 골드미스인 그녀가 어느 날 단톡방에 고백했다.
"뭐? 덕통사고가 뭐야?"
"나 방탄소년단에 빠졌어. 두달째 새벽 4시까지 영상 찾아보고 2시간 자고 회사 출근하고 있어."
당시 나는 방탄소년단 멤버의 이름도 알지 못했다. 방탄소년단에 대해 내가 아는 거라곤 랩몬스터가 멘사 회원이라는 사실 뿐이었다.
즉흥적이고 감성적인 나에 비해 이지적이고 냉철한 그녀가 팬덤에 빠졌다는 건 무척 의외였다. 그런 만큼 그녀의 늦바람은 대단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콘서트 취소표를 클릭하여 '올콘'을 이루었고 미국 콘서트까지 다녀왔다. 삼총사인 우리 중 둘은 기혼자였기에 만나면 남편, 자식 이야기를 하는 만큼 방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처음 그녀의 고백을 들었을 때 나는 대학 동기인 K를 떠올렸다. 삼수생인 나와 동갑인 그녀는 HOT의 열성팬이었다. 그 사실을 듣고 나는 "뭐? 대박. 진짜?"라며 비웃듯이 반응했고 그러자 그녀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너같이 말하는 사람이 제일 싫어." 라고 했다. 망치로 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고, 부끄러웠다. 그만큼 나는 팬덤 문화에 무지했고 어느 정도 편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녀와 나의 오래고 오랜 관계 때문인지, 아니면 자연의 순리인지, 그것도 아니면 정말 방탄소년단이 대단한 건지.. 이듬 해에 나도 '아미'가 되었다.
당시 나는 매우 힘겹게 논문을 쓰고 있었다. 연수 휴직을 해가며 빡쎄기로 소문난 대학원에 들어갔는데 3학년 1학기에 출산을 하며 졸업과 멀어졌다. 8년 안에 졸업하지 않으면 제적되는 엄격한 학칙을 가지고 있는 학교였다. 게다가 콧대 높은 교수님들은 졸업도 잘 시켜주지 않았다. 연이은 둘째 출산과 육아로 휴학을 다 끌어쓰고 연한이 2년이 남았을 때, 졸업프로젝트와 논문을 시작했다. 시간안에 완수하지 못할 것 같았으나 해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학교에서 업무전담 부장을 하면서도 남은 시간을 올인했다. 결국 졸업은 하지 못하고 수료생으로 남았지만 오히려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믿지 못하겠지만, 특유의 '정신승리'를 한 것 같겠지만, 진짜다. 나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미완성의 삶을 사랑한다.)
아무튼 당시 나는 퇴근하면 집에서 저녁만 챙겨먹고 바로 스터디 카페에 가서 논문을 썼다. 두 달간 100시간을 끊어서 3-4시간 남겨놓고 다 썼다. 그 때 BTS는 신곡 <ON>을 발표했다.

" 가져와 bring the pain oh yeah
올라타봐 bring the pain oh yeah "

논문의 주제가 어린이의 슬픔과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었기에 나는 이 가사를 매우 주의깊게 들었다. 매일 이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음미했다. 인생의 깊이가 대체 얼만큼이면 이런 가사를 쓸 수 있는지 궁금했다.
논문을 쓸 때 한 두시간 글 쓰는데 집중하고 나면, 잠깐이라도 휴식할 거리가 필요했다. 그때 나는 유튜브에서 방탄소년단 무대 영상을 찾아 보았다. 그러다 '덕통 사고'를 당했다. 그 순간의 경험은 뭐랄까, 말 그대로 '사고'를 당한 것 같은 느낌이다. 나를 입덕시킨 자는 '입덕 요정' 지민이였다.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외모에, 우아하면서도 날렵한 춤선. 특히 내가 좋아한 건 분홍머리의 지민이었다.

"오늘은 절대 죽지 말아 빛은 어둠을 뚫고 나가.
날아갈 수 없음 뛰어. Today we will survive.
뛰어갈 수 없음 걸어. Today we will survive.
걸어갈 수 없음 기어. 기어서라도 gear up."

무려 2017년에 발표된 <NOT TODAY> 뮤직비디오를 처음 접하고, 그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영상과 소위 '세계관'에 반했다. 노래 가사는 내 마음에 박혔다. 논문을 쓰면서, 교수님에게 까이면서, 지치고 힘들 때마다 이 노래를 들으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다 <MIC DROP>에 빠졌으며 그 다음엔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봄날>, <다이너마이트> 등, 차곡차곡 플레이리스트를 늘려나갔다.
나도 아미가 되었다고 고백하면서 그녀와 나의 속깊은 채팅이 시작됐다. 그녀는 '자신을 이상하게 볼까봐' 차마 하지 못했던 이야기까지 털어놓았다. 결혼과 비혼으로 갈라진 우리의 삶이 BTS로 다시 연결되었다. 우리는 추천 영상을 공유했고, 그녀는 내가 잘 몰랐던 BTS의 '스토리'를 알려 주었다. "달려라 방탄", "본보야지", "인더숲" 등 꼭 봐야 하는 프로그램들도 알려주었다. 그 해 겨울방학, 나는 무려 120화짜리 "달려라 방탄" 정주행을 완료했다.
방탄소년단은 별명이 참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흥탄소년단', '야채튀김소년단'이다.

<야채튀김소년단>이란 멤버들이 언제 어디서나 한데 어울려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이 마치 '야채튀김' 같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이런 별명이 생길 만큼 그들은 함께 있을 때 남다른 '케미'와 '시너지'를 보인다.
노래와 무대로 입덕했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들의 해맑고 순수한 웃음과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모습 (족구를 진짜 못함 ㅋㅋ) 들에 또 한 번 반했다. 지민이로 입덕했으나 슈가, 제이홉 등 눈에 들어오는 멤버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 그야말로 출구가 없는 '회전문'이다.
뒤늦게 팬덤에 빠지면서, 나는 또 하나의 사랑의 방식을 알게 되었다. 보고 싶을 때, 만나고 싶을 때 나는 언제든 그를 소환할 수 있다. 비록 그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나 역시 그의 깊은 사생활까지 관여할 수 없지만, '적당한 선' 안에서 우리는 사랑을 주고 받는다. 또한 그를 사랑하는 자들은 '우리'다. 팬이라는 이름의 우리는 다같이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고, 진심으로 그가 잘 되기를 바란다. 선한 영향력이 널리 퍼졌으면 하는 마음에 그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기도 한다.
인간에게는 4개의 다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Physical, Financial, Social 그리고 Fantasy이다. BTS는 나의 Fantasy이자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Social이다. BTS를 좋아하게 되면서 '나도 그들처럼 열심히 살아야지.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더 챙기고 좋아해 줘야지. 작은 일에도 항상 꺄르르 웃어야지. 예술과 독서를 사랑해야지. 소신있는 발언과 선한 영향력을 놓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게 된다.
이렇게 쓰다보니 BTS는 정말 좋다! 버릴 것이 없다. 나는 내가 '아미'인 게 자랑스럽다. ^-^

다음 주에는 <취미는 사랑> 번외편을 올리겠습니다. (한 주 빵꾸낸 것을 무마하기 위해 ^^;) 멋진 BTS 화보 함께 감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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