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유난히 추웠던 오전, 평소와 다름없이 걷기를 하는데 왼쪽 발은 어딘가 모르게 불편함이 느껴졌다. 걸을 때마다 엄지발가락부터 발가락들이 제각각 움직이는, 발가락 뼈의 움직임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큰 통증이 아니어서 그런 느낌을 무시하였다. 그런데 그날 저녁, 멀리 있는 학원에 간 딸을 데리러 가기 위해 집을 나왔을 때. 바로 오전의 그 이상한 느낌이 있었던 그 위치에 뭔가 작은 번개가 내리쳤다. "빠직~~" 갑자기 생긴 통증이라 '이게 뭐지?' 싶었는데 그때부터 왼쪽 발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발바닥 통증보다는 내디딜 때 느껴지는 발등 통증으로 딸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통증은 사람을 긴장하게 한다.
다음 날, 병원을 방문하니 '족저근막염'이라고 했다. 일반적인 족저근막염과는 다른 양상이지만 분명 그렇다고. 발이 낫는 데는 최소한 3주 이상의 시간이 걸리며 절대 안정이 필요하고 발을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1월의 중순이 되지 않은 어느 날부터 오랜 시간 집안에 콕! 해야 했다. 발을 다쳐 잘 걷지 못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불편하였다. 일상생활을 하는데 신체적으로도 힘들긴 하지만, 평소 걷기 운동을 즐겨하는 나에겐 바깥에 나가서 마음껏 걷지 못한다는 답답함에 자꾸 마음이 울적해졌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다. 한 달만 참아보자. 조금만 더 지나면 서서히 나을 거야.' 마음먹으며 한 달 가까운 시간을 보내었다.
더디게만 가던 하루가 어느새 보름이 지나고 조금씩 발의 컨디션도 좋아져서 바깥으로 다시 나갔다. 아직 다 낫지는 않았다. 동네 언니들이 보면 살짝 절뚝이는 것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래도 이 정도라도 걷게 된 것이 어디야~~'... 생활 속에서 꼭 해야 하는 걸음걸이가 아닌, 내가 원해서 걷는 그 즐거움을 다시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움직였던 비슷한 시간대에 아파트 산책을 시작하자, 항상 보이던 어르신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렇구나. 나는 집에서 쉬고 있었지만 이분들은 이 추운 겨울에도 계속 걷기 운동을 하셨구나.' 그분들의 꾸준한 노력이 새삼스럽게 크게 와닿았다. 좋은 날씨, 따뜻한 날씨, 밝고 상쾌한 날에는 누구든지 걷기를 하고 싶고, 하기가 쉽다. 그렇지만 궂은 날씨, 비 오는 날씨 등에는 우리는 핑계를 대며 자신과 타협해버리고 만다. 이번의 나는 발등 부상이라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지만, 평소에 나의 마음가짐은 어떠했나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다시 걷기 운동을 하며 아파트 둘레를 이리저리 돌면서 사소한 것들을 주의 깊게 보게 되고, 사소한 소리들을 주의 깊게 듣는다.
겨울인데도 아파트 산책로에 매달려 있는 빨간 열매.
나무들 사이에 숨어있는 고양이, 테니스장에서 운동하는 사람들, 애완견을 산책시키는 아주머니.
놀이터에 앉아있는 할머니들.
짹짹거리는 작은 새들.
어느 순간 높은 나무에 앉아 있는 까치.
발을 저리면서도 몸을 이끌고 운동하시는 할아버지.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움직이는 할아버지.
할아버지 뒤를 따라 함께 하는 할머니.
그 순간, 막연히 느껴졌다.
우리는 같은 울타리에 살고 있는 가족이라도 다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객체이자 온전한 타인이다.
오전에 아파트 5바퀴 도는 것을 나의 목표로, 아파트를 둥글게 빙빙 돌아서 인지.
유난히 우리 모두가 다 소우주같이 느껴진다.
대한민국 내의 고리에서, 아파트라는 같은 공간에서 제각각 돌고 있는 우주 행성.
나와 우리는
어느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인연으로 가까이 다가오기도 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도 하고, 어느 순간 멀어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들은 각자의 시간을 살며 오늘 하루를 보내는 거겠지.
우리가 같은 시간대, 2022년을 살아간다 하더라도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시간대는 고유의 시간대로
제각각 다 다른 것이다.
나는 40대 중반의 나이 테두리를 갖고 살아가고
아이들은 초등학생, 자신의 나이 테두리
유모차를 끄는 젊은 엄마들은 또 다른 나이테.
지나가다 보이는 젊은 여대생들.
이쁜 애기 엄마 등 나보다 어린 나이테를 가진 사람은 아무리 이쁘고 젊어 보여도 그다지 부럽지 않다.
나도 그때는 젊었고 예뻤고 지금보다 즐거웠던 때가 더 많았기에. 나도 그 시절엔 큰 생각 없이 큰 고민 없이 하루하루 핑크빛이기만 했던 것 같다.
오히려 앞으로 나의 나이 테두리는 어떤 모습일까?
산책하며 만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며 많은 생각과 다짐을 하게 된다.. 그분들도 젊고 더 좋았던 시절이 있을 텐데.
마치 우주 속을 떠도는 각각의 행성들 나이가 다른 것처럼
어느 행성은 새롭게 태어난 신행성.
어느 행성은 나이 들어 쇠퇴해 가는 노행 성.
그럼 나는 중간 행성.
이 넓고 넓은 우주 은하수 속에 지구에서 살고 있는
'나'라는 작은 행성... 어찌 보면 미세먼지만큼 작은 존재로 보잘것없겠으나 '나'만 본다면
'나'는 또한 우주 그 자체. 완벽한 하나의 생명체.
육체와 고유의 정신이 함께 공존하며 자신만의 속도로 존재하는 완벽한 생명체.
작년부터 생각지도 못한 질병에 대한 걱정이 하나 끝나면, 다른 하나가 생기고, 또 다른 하나가 생기고... 심지어 이번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발등 통증까지 생겨 집에만 있으니 생각할 수 있는 폭이 좁아지고 나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못하는 게 더 많은 것 같아 의기소침해져 있는 나.
이럴 땐 내가 내 스스로를 다독이고 위로해 줘야지.
지금 내가 직면한 현실에서 좋은 것만 생각해야지.
다친 것이 좋은 일은 아니지만, 한 템포 쉬어가며
내 몸을 보살필 수 있는 아주 운 좋은 기회를 얻은 것이라 생각하자!
용기 내어서, 두려움을 거두고, 오늘 하루도 화이팅하자.
'나'라는 행성은 오늘도 분명 빛나고 있을 것이다.
잘 살아 움직이고 회복하고 있다.
나의 우주를,
절대.
망가지는 나이테를 갖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