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순이: 책으로 '셀프가드닝' 하기(1)
나라는 식물을 키워보기로 했다.
이미 한 번 봤던 해방일지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어린 아이를 키우며 드라마 한 편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만 드라마의 대사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작가가 하려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미정이는 나와 같지 않은 사람이지만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난 한 번도 채워진 적 없어.
개새끼, 개새끼, 내가 만났던 놈들은 다 개새끼..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해방일지 3회-
5살 나이에 엄마를 잃었고, 고등학생이 되기 전 아빠마저 잃은 나는 항상 마음이 허전했다. 어린 시절 나 자신에 대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이 너무 가엽고 안쓰러웠다. 늘 남들에게 받았던 동정의 시선이 싫었는데 나 스스로 자기 연민에 빠진 것 같았다. 부모로부터 사랑 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나를 주눅들게 했다. 한 번도 사랑으로 채워진 적이 없는 그런 마음.
이건 부모가 있거나 없어서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난 한 번은 채워지는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돼..
추앙해요.
-해방일지 3회-
나도 미정이처럼 한 번은 채워지고 싶었다. 사랑으로 안된다고? 사랑도 부족한데 누구에게 날 추앙해 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존재를 만나지 못한다면 나는 평생 텅 빈 마음으로 살다 죽는 것일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날 추앙해 줄 사람을 찾아 나서야 하나? 나는 사람은 믿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대가없이 추앙해 줄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거라고 믿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구하는 건 구차하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도 없는데 내 안의 아이는 발이 묶인 채로 계속 제자리만을 맴돌고 있었다.
나는 해방되고 싶었다. 열심히 나를 키우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나 우울한 감정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우리 진짜로 하는 건 어때요?
해방 클럽..
전 해방이 하고 싶어요.
해방되고 싶어요.
어디에 갇혔는진 모르겠는데 꼭 갇힌 거 같아요.
속 시원한 게 하나도 없어요.
깝깝하고 답답하고 뚫고 나갔으면 좋겠어요.
-해방일지 3회-
나를 어떻게 해방시켜 주어야 하나 고민하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책을 만났다. '나라는 식물을 키워보기로 했다.' 마음에 드는 제목이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나름 나를 잘 가꾸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한계에 부딪혔다. '그래, 나를 가꾸는 뭔가가 더 필요한 순간이 온 거야' 책 속에서 "셀프가드닝"이란 말을 배웠다.
각자 다르고 고유한 모양으로 자라는 식물들이 모여 아름다운 정원을 이루듯,
내가 더 나은 모습으로 나를 만날수록 유해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 이 세상 또한 조금 더 나아지고, 훨씬 더 아름다워 질 수 있다.
-나라는 식물을 키워보기로 했다-
식물을 가꾸듯 내 삶도 정성스런 관심과 애정이 필요했어. 꽃 한송이 피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인데 나에게 그런 시간과 노력을 주었을까?
이런게 '추앙'이 아닐까? '추앙' 그거 내가 해주어야지.
봄이 되면 나도 다른 사람이 되어 있고 싶으니까.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뭐든 될 수 있어!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나를 응원할게.
확실해?
봄이 오면 너도 나도 다른 사람 돼 있는 거?
확실해.
난 한 번도 안 해 봤던 걸 하고 나면 그 전하고는 다른 사람이 돼 있던데.
추앙은 어떻게 하는 건데?
응원하는 거.. 넌 뭐든 할 수 있다. 뭐든 된다. 응원하는 거..
-해방일지 4회-
역시 세상에 '좋기만 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자식한테도 이러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외롭게 혼자인 느낌은 싫다. 나를 채워 남들과 나누고 싶어졌다.
생각해보니까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것 같은 사람들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다 불편한 구석이 있어요. 실망스러웠던 것도 있고, 미운 것도 있고, 질투하는 것도 있고, 조금씩 다 앙금이 있어요.
사람들하고 수더분하게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혹시 그게 내가 점점 조용히 지쳐가는 이유 아닐까,
늘 혼자라는 느낌에 시달리고 버려지는 느낌에 시달리는 이유 아닐까.
-해방일지 5회-
나는 나를 추앙하기 위해 가장 먼저 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고 싶었다.
나의 내면 아이는 아직도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