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순이 : 나의 알 깨기(1)

열 네살의 나

by 일주일의 순이

1편 육아


1회차 상담이 시작되었다. 예전에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지라 첫 만남에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얘기하고 현재 갖고 있는 고민의 주제를 명료화하는 시간을 갖겠거니 예상했듯이 상담자 선생님은 내가 하는 말들을 귀담아들으며 적기도 하고 꼬리를 물어 나를 알아가는 분석 작업에 집중했다.






내가 상담을 신청한 주요 원인은 최근의 직장 내 대인관계에 의한 스트레스이다. 현재 나를 둘러싼 상황을 얘기하자니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생겼고 나에게 몰입되지 않고 치우침 없이 최대한 밖에서 나라는 사람을 얘기하려고 노력했다. 내 성격을 얘기하다가 자녀와의 관계를 질문받게 되었고 나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자녀 중 사춘기를 만나고 있는 1호와의 관계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담 신청을 마음먹은 현실적인 목표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출발한 나의 자존감, 거기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아 절대적 사랑과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 같은 아이들 때문이라고, 어렴풋한 나의 머릿속이 정리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상담을 시작하길 잘했다며 남은 기간 안에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 변화의 열쇠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지만 아픈 구석인 딸아이의 구체적 모습이 떠오르며 다시금 진지하고 심각해진다.


내가 알고 있는 '부모의 모습'은 권위적 이어 엄격하고 그리 수용적이진 않았다. 나의 엄마, 아빠는 나에게 항상 기대치가 높아서 어릴 때부터 부족한 아이, 못마땅한 아이로 자라왔다. 엘리트 출신의 직업군인이었던 아빠를 따라서 어릴 때부터 2년이 넘게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이사를 다녀 초등학교는 강원도의 깡촌 시골학교들을 4군데 거쳤고 중학교는 학년마다 다른 3곳, 그 중요한 고등학교 때에는 서울에서 지방으로 전학을 강행했다. 보통 자녀가 학령기가 되면 두 집 살림을 하며 아이의 안정적인 생활을 우선시하는데 반해 우리 집은 아빠의 뒷바라지를 위해 나와 남동생은 낯선 환경에 던저져 적응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게 여러 번인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성격 좋고 밝은 남동생보다(나름 이 아이도 쉽지만은 않았겠지만) 나는 많이 힘들어해서 소극적이고 위축된 채로 커갔고 물론 새 친구들도 잘 사귀지 못해 혼자 있는 게 편하고 이게 나의 적응방식이 되어 버렸다.


학교에서도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 없는 학생으로, 집에서 또한 내 마음 가는 대로 거리낌 없이 있지를 못했다. 눈도 못 마주치겠는 무서운 아빠와 본인의 인생에 애살과 의욕이 많은 엄마의 다그침과 잔소리에 지쳐 가끔 내 방문을 잠그고 있기도 했고 일기장은 일상이 아닌 그저 내 감정 받이로 채워져 어른이 되고 다시 들춰보고 싶지 않아 얼른 버렸다.


내가 결혼하고 부모님 곁을 떠날 때 '너를 너무 강하게 잡아서 키워서 미안하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다. 여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치열한 인생을 버텨 온 부모님에게도 찾기 힘든 부분이었으리라며 이해가 되기도 했지만 그런 말씀의 여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부모의 권위적인 태도는 쉽게 없어지는 게 아니고 절대적 지지와 사랑을 느끼게끔 하는 수용적 태도는 자연스럽게 생기는 게 아니라 노력하고 일궈야 함을 그분들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내 딸아이를 볼 때마다 어릴 적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정리정돈을 잘 못하고 매사 느리고 무기력하고 고집을 부린다. 가끔 내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녀에 대한 절대적 지지와 무한대의 사랑을 부어주시는 시어머니 덕분에 남편은 정서적 안정감을 지녀 아이들을 대할 때 나보다 감정적이지 않고 일관성이 있으며 수용성과 섬세함을 갖춘 좋은 아빠이다. 아빠가 이런 태도를 지녔는데도 딸은 나의 어릴 적 우울한 모습을 닮아 있다니, 성격의 문제인 것도 같고 복합적인 상호작용이겠지만 엄마인 나의 태도가 영향이 크다고 결론지었다. 딸아이의 예민하고 강한 자존심의 기질도 나와 비슷하니 말이다. 내 마음속의 멍을 딸아이도 똑같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쓰리고 딸아이가 안쓰럽고 너무나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이제 뚜렷하게 드러나서 알게 되었다. 의식하게 되었으니 이미 반은 지나왔고 내 태도가 변화하고 있다고 안도하지만 사춘기 아이와 심하게 부딪힌 올 상반기의 일들을 떠올리니 머릿속의 이성적 생각과 심장의 감정은 전혀 다른 길로 가고 있어 조율하기가 힘듦을 새삼 깨닫게 된다. 아이는 나를 경찰서에 신고한다고 했고, 이상하고 나쁜 사람이라고 했다. 자식이 의존할 수 없는 불안한 나쁜 엄마, 경찰이 신고받고 조사해야 하는 범죄 가능성이 있는 엄마가 나의 모습이다. (이었다고 과거형으로 쓰자니 용기가 안 난다.)


내가 열네 살이 되어 엄마, 아빠에게 간절하게 원했던 모습과 행복한 일상을 그려본다. 아침에 깨워 일어날 때부터 하루를 준비시키기, 친구들과 불편한 일들은 없었는지, 네가 오늘 하고 싶은 일은 없는지, 공부하기 힘든 것은 무엇인지, 커서 갖고 싶은 빛나는 삶을 그려보라며, 아직 없다면 지금 그렇게 살면 된다고 친절하게 알려주고 싶다.


딸이 열네 살의 나에게 위로받고 힘을 얻으며 단단하고 멋지게 커 나가기를.


딸과 함께 있는 어릴 적 나, 딸로 인해 가슴의 멍이 차차 없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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