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순이 : 취미는 사랑(1)

왜 사랑을 해야 하나요?

by 일주일의 순이



대학 시절 나의 별명은 '1미터'였다. 캠퍼스를 돌아다니면 1미터 안에 아는 사람을 만나 인사를 하기에 붙은 별명이다. 교육대학교 특유의 작은 캠퍼스가 이유이기도 했고, 열정적인 학교 생활을 한 나의 ‘인싸력’이 또 하나의 이유였다.


이십대의 나는 배우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참 많았다. 동아리도 서너개씩 했다. 첫 번째 대학에선 요가, 실험, 천문관측, 그리고 두 번째 대학에서도 천문관측, 연극, 그리고 삼수 이상의 '늦깍이'들만 들어갈 수 있는 다사연(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란 동아리를 했다. 이름만 걸쳐져 있는 게 아니었다. 연극 동아리에선 회장을 했고 과에선 과대표를 했다. 그때의 나는 집에 일찍 들어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매일 사람들을 만나거나 무언가를 했다.


삼십대의 나는 어땠나. 아무리 돌이켜봐도 애 키운 것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다. 애 키우며 힘들게 직장 다닌 것, 애 키우며 힘들게 집안일한 것, 임신으로 중단되었던 대학원을 졸업하겠다고 9개월짜리 둘째를 어린이집 맡기고 대학원을 마저 다닌것. 학교, 대학원, 집의 삼각형 속에서 삼십대를 보냈다.


그리고 사십대가 되었다. 나름 굉장히 성실하고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을 돌아보니 왠지 나만 뒤쳐진 것 같다. 20대는 공부하고 취업하고, 30대는 결혼하고 애키우고, 모두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40대가 되니 어느새 삶의 방향은 달라져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벌써 각자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 같다. 재테크에 성공하여 유수 지역에 아파트 3채를 확보한 선배, 장학사가 된 동기, 스타 교사로 온라인 연수를 몇 개 찍고 책도 쓴 후배. 서울 변두리에 살며 오늘 벌어 오늘 사는 하루살이 내 인생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몸은 또 왜이리 삐거덕거리는지. 운동과 거리가 멀었던 삶을 산 탓인지 이제는 생존 운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하는 저질 체력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중견 교사가 되어 5년 연속 부장을 했더니 조금만 피곤하면 방광염이 도진다. 그래도 나름 피부만은 자신있었는데 어느새 기미와 다크써클, 주름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사십대다.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건 어느 것에도 설레지 않는 일상이다. 세상 도처가 ‘이미 아는 맛’이다. 이미 먹어본 것, 이미 들어본 것, 이미 해본 것. 쇼핑, 여행, 드라마에는 평생 설렐 줄 알았는데 그 반복되는 행위 자체에 지루함을 느낀다.


우울은 언제나 다른 우울을 끌어들인다. 흑과 백이 50대 50인 상황에서도 마음은 어둠으로 끌려간다. 자기 학대는 자기 혐오로 나아간다. '나는 왜 살아야 하나, 산다는 건 무엇인가’ 등 삶에 대한 회의로 귀결되면, 그 침잠된 에너지를 다시 끌어올리는 게 쉽지 않다.


그렇게 마음이 동굴에 들어갈 때, 나는 철저하게 혼자가 된다. 혼자가 되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혼자인데 누군가와 함께 있는 기분. 그 존재는 바로 '나'다. 나는 '나'와 떨어질 수 없다. 내가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하는 사람은 ‘나’다.

이십대로 시간을 돌릴 수 없고, 남들이 오랜 시간 이룩한 자원을 지금에 와서 취할 수도 없다. 그러나 오직 나만이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바로 나를 기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을 찾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할 때 기쁘고 행복한가? 시간을 더듬어 본다. 몇몇 순간들이 사진처럼 떠오른다. 유성우가 떨어지던 날, 다같이 기숙사 옥상에 올라가 벌벌 떨면서 담요를 덮고 별을 관측하던 순간. 실험 동아리에서 막걸리를 빚고 폭죽을 만들어 터트린 순간. 연극 공연을 할 때, 무대 밑 대기실의 눅눅한 공기와 부유하던 먼지들과 마주하던 순간.

그 순간들의 기억은 내가 무언가를 순수하게 좋아하고 사람들과 그 즐거움을 나누던 순간들이다.


"난 원래 재즈를 싫어해. 그런데 당신때문에 재즈가 좋아졌어.

당신은 열정이 있는 사람이잖아! 사람들이 열정이 있는 사람에게 이끌리는 건.. 바로 그들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것을 그 사람에게서 발견하기 때문이야." (라라랜드 중)


사랑에 빠진 사람은 매력적이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눈에 보이는 거든, 보이지 않는 거든 상관없다. 사랑할 때, 그의 눈은 빛나고 그녀의 볼은 상기된다.

그래,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아무것도 재지않고 따지지 않고 그 순간에 존재할 수 있게 해 주는 ‘사랑’이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 대상이 훌륭해서가 아니다. 내가 아직 무언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나의 마음의 반증이다.


그래서 우린 사랑해야 한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 그를 위한 공간을 비워두는 느낌을, 생각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무엇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사십대의 나의 존재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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