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순이 : 책으로 셀프 가드닝하기(2)

당신의 어린 시절이 울고 있다

by 일주일의 순이

감추고 싶었다. 부정하고 싶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증거를 찾기는 쉽지가 않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친구들을 웃기는 밝은(척 하는)아이였다. 웃겨서 인기가 꽤 있었던 나에게 학기가 끝날 즈음 친구들이 보내는 크리스마스카드에는 항상 두 가지 말이 빠지지 않고 적혀 있었다.

"ㅇㅇ아, 넌 너무 웃겨! 그리고 살 좀 쪄!" 였다.

난 어릴 적 나 자신에 대해 잘 몰랐다. 내가 처한 형편이나 처지를 잘 몰랐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이 다른 사람 눈에는 그렇게 불쌍한 것인지도 모르고 자랐다.

어른이 되고 난 후 우연히 졸업 앨범 뒤에 꽂힌 나의 건강기록부를 보게 되었다. 어디서라도 내 어린 시절의 흔적을 찾고 싶었기에 반갑기도 했다. 건강기록부를 보며

'그래, 난 참 조그맣고 가벼운 아이였지. 그래도 지금은 그렇게 작지 않으니 다행이야.'

대수롭지 않게 그냥 지나쳤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며 다시 그 시절의 기록을 보니 내 어린 시절이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지금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의 키는 130cm가 넘었고 몸무게는 30kg 가까이 되었다. 5살인 둘째의 키는 103cm 정도이고 몸무게는 18kg가 되었다. 옛날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초등학교 3학년 쯤 지금 5살인 아이의 몸무게였고

아마도 6살쯤 되는 나이의 키에 학교를 입학한 것이다.


어린 시절 가난한 홀아비의 4남매 집에는 늘 먹을 것이 부족했다. 저녁은 대부분 칼국수 반죽으로 만든 죽을 먹었고 계란 하나로 만든 계란 찜과 김이 자주 먹는 반찬이었다. 친적집에서 제사를 치르고 음식을 가져와도 막내인 내가 맛 볼 수 있는 음식의 양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마저도 양이 차지 않은 언니와 오빠들에게 뺏기기 일쑤였다. 언니 둘은 키가 모두 170cm정도이고 오빠도 176cm인데 나는 왜 이렇게 자라지 못했을까? 이런 궁금증을 원가족에게 이야기하면 내가 어릴 때부터 먹는 것을 잘 먹지 않아서였다는 타박을 들었다. 나는 아이를 키우며 생각했다. 식탐도 많고 늘 자기에게 주어진 양보다 더 달라는 첫째와 먹는 속도가 달라 누나가 먹는 양의 반도 채 먹지 못하는 둘째의 것을 지켜주는 것도 엄마가 해야한다는 것을.


엄마가 살아 있었던 시절은 달랐을까? 사이코 드라마를 쫓아다니던 시절, 정신과 의사가 나의 '초기 기억'을 찾아 준 적이 있다. 3살 무렵 시골 둠벙에 빠진 나를 7살 오빠가 나뭇가지를 내밀어 건져 주었던 일이었다. 오빠는 지금도 그 이야기를 자신이 나의 생명의 은인이라며 자주 이야기하지만 내 기억의 의미는 달랐다. 엄마와 다른 형제들은 나를 방 한 구석 위에 밀어 놓고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잠이 든 것처럼 보였겠지만 실은 몸이 쳐져 엄마를 부를 힘도 없이 누워 있었다.

'내가 불러도 자기네들이 떠드는 소리에 들리기나 할까?'

'엄마는 아이가 아픈 데 어쩜 안아주거나 약 줄 생각도 없는 거지?'

3살인 아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누워 있을 수 있을 지 의구심이 들지도 모른다. 초기 기억이란 진짜 나의 기억이 아니라 그 기억을 떠올린 내 무의식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를 찾아내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무의식이었기에 나도 왜 내가 그런 생각을 떠올렸는지는 잘 몰랐다.

나는 그 집에서 구지 태어나지 않았어도 될 잉여인간이었고, 남자로 태어나지 않아 환영받지 못했고, 약하고 어려서 쓸모없이 밥만 축내는 아이가 내가 생각하는 나였다. 막내라면 아마도 사랑받고 귀여움을 받고 자랐을거란 선입견이 오히려 더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당신의 어린시절이 울고 있다'라는 책의 제목을 처음 접한 것은 몇 년 전이었다. 하지만 그 책을 쉽게 펼치지 못했다. 나는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이 먼저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눈물이 났다. 엄마가 되어보니 어린 시절의 내가 더 가여워 보였다. 나는 그리 좋은 엄마는 아니지만 엄마에게 치대는 아이들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어린 시절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이들의 감정을 예민하게 살폈다. 아이들이 컸을 때 그럼에도 엄마에게 받은 상처를 말한다면 기꺼이 미안하다는 말을 해 주겠노라고도 여러 번 다짐했다.

나의 삶이 힘든 원인을 어린 시절에서 찾게 되면서 치유의 방법을 찾아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다. 각종 심리학 책과 감정 코칭, 사이코 드라마를 몇 년간 쫓아 다니며 몇 번의 주인공이 되어 보기도 했다. 그리고 상담 대학원에 진학하고 졸업도 했다. 하지만 나의 발목을 잡고 있는 어린 시절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니 다시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은 태어난 이후 불과 몇 년의 시간 안에 일어난다. 그런데 성인이 된 우리에게 이미 그 기억은 사라지고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시기가 우리의 일생을 좌우하고 있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히 이 시기에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안정적 토대가 마련되며, 이때 받은 상처는 이러한 토대가 생성되는 것을 방해하거나 제한해서 많은 사람의 인생에 긴 그림자를 남긴다. 나는 이러한 옛 상처들을 '발달 트라우마'라고 부를 것이다.

나는 나의 '발달 트라우마'를 인정하기로 했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과거를 계속 붙잡고 있었다. 그것처럼 미련한 일이 또 있을까 싶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책의 앞 장에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나타나는 몸과 마음의 다양한 증상들을 알려준다. 이미 내가 겪었던 것들이었다.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길은 좋은 경험을 쌓아 과거의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상처는 치유될 수 있다.

살아가면서 무엇을 경험하든지 그 경험을 지워버릴 수도, '벗어던질' 수도, 그냥 없었던 일로 생각할 수도 없다. 그 경험들은 모두 우리 역사의 일부분이다. 따라서 치유는 흉터가 남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원래 의학적으로도 그런 치유는 불가능하다. 내가 생각하는 치유는 '통합'한다는 의미이다. 과거에 벌어진 일에 대한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과 통합한다는 뜻이다.

심리치료학계에서는 어린 시절을 치유하기 위한 다섯 가지 인생과제가 있다고 한다.

인생과제 1. 나는 안전한가

인생과제 2. 나는 내 욕구를 충족하고 있는가?

인생과제 3. 나는 타인의 도움을 받아들이는가?

인생과제 4. 나에게는 '자기효능감'이 있는가?

인생과제 5. 나는 사랑과 성에 관대한가?


과연 나는 지금까지 이 인생과제를 해내고 있었는지 물었다.

1. 나는 대체로 안전한 편에 속하지만 마음 속 불안이 늘 나를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2. 나는 내 욕구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지 못하니 충족하는 것도 잘 하지 못한다.

3. 나는 타인의 도움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며 받게 되면 부담스러운 마음이 든다. 가족 또한 타인이다.

4. 나는 어린 시절 나의 효능감에 대한 가스라이팅에 시달렸다. 스스로를 믿고 인정하기 어렵다.

5. 나는 사랑을 주는 것이 부자연스럽고 타인에 의해 사랑받고자 하는 주체적이지 못한 태도를 보였다.


행복을 결정하는 세 가지는 '자기 조절 능력', '유대관계', '신체지각능력'이라고 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모험'을 시작할 것이다. 책을 읽으며 어느 정도 인생과제를 해 나갈 실마리를 찾았다.

나를 사랑해 주는 존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아이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받고 있었다. 내가 엄마라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아이들 덕분에 나는 지금 살아있고, 살아갈 것이고, 성장하며 나아갈 것이다. 아이들이 사랑을 주는 만큼 나도 느끼고 사랑했는지를 돌아볼 것이다. 그리고 나와 타인을 사랑하는 것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인생과제를 하나하나 풀어 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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