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순이 : 취미는 사랑(2)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연극은 나의 오랜 사랑의 대상이다. 대학 시절 연극 동아리를 했고 동아리 대선배님을 따라 발령을 받자마자 교육연극 교사 모임을 시작했다. 발달장애아를 위한 연극치료 봉사도 했으며 졸업 후 교대 평생대학원 교육연극지도자과정을 수료했다. 교육연극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 휴직을 하고 예술 전문 대학원 아동청소년연극 전공 과정에 들어갔으며 지금도 교육연극 관련 교사모임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연극을 떠올렸을 때 내 마음은 마냥 설레지 않는다. 사실 조금 아프기도 하다. 예술을 사랑하는 일은 늘 재능과 열정을 담보한다. 아니, 어쩌면 무언가를 사랑하는 일 자체가 그것을 담보한다. 나는 늘 누군가와 나의 재능과 열정을 비교했으며 이후 쭈구리가 된 내 마음을 발견하곤 한다. 주변에서 아무리 아니라고, 너 역시 이 분야에서 네임드되었다고 말해주고 실제로 종종 연수 강의를 하는 데도 그렇다. 외부의 시선과 평판에 상관없이 언제나 연극은 나에게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짝사랑 상대이다.
처음 연극 동아리에 들어간 이유는 대학 생활이 너무 재미없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들어간 첫 번째 대학이 적성에 맞지 않아 1년 반만에 때려치고 반수를 해서 운좋게 교육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교대는 마치 고등학교 연장선 같았다. 심화 과정으로 과를 나누어 같은 과가 함께 수업을 듣고 점심 시간도 따로 있었다. 조별 과제는 늘 번호 순으로 같은 친구들과 했다. 게다가 동기들은 술을 잘 먹지 않았다. (아마도 이게 가장 큰 원인이었던 것 같다.) 과엠티를 가서 레크레이션만 실컷 하다 왔다.
어렵게 들어간 대학인데 이러다간 학교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겉돌다가 튕겨 나갈 것 같았다. 그래서 빡쎄기로 소문난 동아리를 해서 학교에 나를 붙들어 매기로 했다. 후보는 밴드부, (술을 많이 마시기로 유명한) 철학 연구회, 그리고 연극 동아리였다. 그중 연극이 가장 만만해 보였다. 밴드부는 나름 실력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 같고 철학 연구회에서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연극에는 배우만 필요한 게 아니라 조명, 음향, 무대 등 스탭도 필요하니까 어떤 역할로든 붙어있을 수 있겠지, 생각했다.
나는 원래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연극 동아리에는 정말 튀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 친구들과 함께 하는 동아리 활동은 너무 재밌었고 종종 학교에서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특히 우리 동기들이 출중했다. 나를 포함한 여자 동기 셋은 (자칭?) 트로이카라 불렸다. 그리고 지도교수님은 정말 연극을 사랑하시는 분이셨다. 대학원에 교육연극 전공 개설까지 이루어내셨다. 재밌고 열정 많은 사람들 옆에 있으니 나도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비록 2학년 2학기부터 연애에 빠져 공연을 많이 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연극을 진짜 좋아했다’ 라는 회상할 수 있다. 틈만 나면 대학로에서 공연을 봤다. 연극을 보는 것이 너무 좋았다. 티켓 가격이 싼 프린지 페스티벌이나 젊은 연극제 등은 거의 놓치지 않고 봤다.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했던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밤의 꿈’,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박지일 배우가 열연한 ‘서안화차’,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했던 연희단거리패의 ‘갈매기’ 같은 공연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당시 싸이월드에 공연 감상문을 빼곡히 올리고 이런 저런 활동을 통해 만나는 연극 관계자들을 동경하듯 좋아했다.
그러다 교육연극을 만났다. (이 용어는 여전히 논란이 많지만, 내가 처음 접한 게 이 용어이므로 그냥 ‘아이들과 하는 과정 중심, 놀이 중심의 연극’을 교육연극이라 하기로 하자.) 3개월간 빡쎄게 연습하지 않아도, 캐릭터와 대사를 치열하게 분석하고 연기와 동선 연습을 하지 않아도 순간의 즉흥에서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나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었다. 연극의 본질을 발견한 것 같아 좋았다.
재밌어서 시작한 교육연극이 어느새 나의 커리어가 되었다. 욕심이 났다. 남들보다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교육 대학원이 아닌 예술 대학원에 갔다. 하지만 연극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 비해 나는 늘 부족해 보였다. 재능이, 열정이, 좋아하는 마음이, 나는 너무 부족해 보였다. 그녀들이 서로 네트워크를 구성하며 재미난 일을 펼치는 것에 매번 ‘멋지다’, ‘응원해’ 댓글을 달아주기 싫었다. 결국 SNS를 끊었다.
이후 교육연극과 관련된 모든 경력을 버리고 다른 분야를 연구하려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치를 발견한 독서, 글쓰기, 그림책 등을 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책을 읽고 글을 써도 나의 마음은 결국 연극에 가닿았다. 이 마음이 무엇인지 한번쯤은 정리해야 할 것 같았다. 두 아이 출산과 육아로 단절되었던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2년간 치열하게 졸업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논문을 쓰며 교육연극이 나에게 무엇인지 의미를 발견하려 했다.
결말이 해피엔딩이면 좋겠지만, 나는 결국 졸업하지 못하고 수료생으로 끝났다. 의미를 발견하여 글로 정리하는 것은 하나의 매듭일 뿐이다. 나는 아마도 평생 연극을 짝사랑할 것 같다.
그래도 변치 않을 진실 하나를 발견했다. 아이들은 연극하는 것을 너무 좋아하고, 다행히도 연극은 내가 아이들에게 해먹이는 요리 중 가장 자신있는 요리라는 것이다.
“나는 연극하는 선생님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 연극하는 선생님들은 확실히 달라.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이 넓고 유연해.”
우리 모임의 한 선생님이 한 말이다. 연극은 내가 아이들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이들과 연극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