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순이: 나의 알 깨기(2)

내 잘못이 아니야

by 일주일의 순이

2편 관계



상담사와 두 번째 만남. 지난 주말 선생님의 권유에 심리검사를 받기로 했지만 아이 둘의 일정 사이의 빈 시간을 확보할 수 없어 검사를 취소했다고 말씀드렸다. 아이 둘로 인한 이유가 있긴 했지만 실은 검사 결과가 어떨 것인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고 그렇게 알게 된다고 해도 지금의 나 스스로 느끼는 점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도 있어 기대되지 않았다.






선생님은 몇 가지 질문을 하셨고 또 어릴 적부터 크면서 많이 듣었던 말을 골라보라고 하셨다. 5가지를 말씀하셨는데 그중 나한테 가장 익숙한 말은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야 해', 즉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해'와 맥락을 같이 하는 문구였다.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돼. 네가 생각하는 것은 다 불안해. 너란 존재는 없는 거야, 네가 뭘 알겠어. 아무것도 못하고 모른다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해. 내 마음에 들게 해. 그래서 나를 기쁘게 해야 한다고."


지금 다시 떠올려보니 이 말이 참 무서운 말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세뇌당하듯 항상 이런 말을 듣고 자랐고, 내가 대학생이 되어도 내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잘 몰랐던 거 같다. 나는 내 마음대로 무엇하나 할 자신이 없었어 옷가게에서 티셔츠 하나 못 골랐다. 심지어 내가 성인이 되어 결혼을 결정할 때도 그러해서, 마음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난 정신적으로 부모님에게 독립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생각의 끝은 항상 부모님을 떠올리며 부모님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염두에 두고 있는 미성숙한 어른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난 아주 나약한 존재여서 나를 엄격하게 제제하는 부모님을 거역하지 못하며 그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온전한 나를 찾아 나 다워지는 데 미숙한 채로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생활과 두 아이를 기르고 있다. 내가 어른스러워지는데 방해물이 되었던 '내가 하라는 대로 해'는 내 깊은 곳에 뿌리를 내려 나의 모든 것을 뒤흔들며 좌지우지하고 있음을 느끼고 마음속으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 스스로 홀로 존재하지 못하니 항상 다른 사람의 존재가 신경이 쓰였다. 아니 생각해보면 나 스스로 해낸 뿌듯한 경험이 없지 않았고 그것들의 자양분이 지금 모습에 긍정적 요소들로 자리 잡게 된 일도 많았지만 나의 단단하지 못한 자존감은 감기처럼 불쑥불쑥 찾아와 나를 피폐하게 하여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게 해왔다.


" 왜 직장에서 사람들이 선생님의 말대로 다 해야 하고 이루어져야 하죠?"

" 저는 최소한의 상식적인 일들에 대해서만 얘기해요. 교사로서 해야 하는 당연한 의무도 지키지 못하는 일들과 합리적이지 못한 부당한 일처리들이, 그리고 관련된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요. "

" 다름을 인정하셔야 해요. 아주 상식적인 것들에 대해선 온화하게 얘기하고 일정 부분은 마음을 비우세요. 나이가 좀 더 들어 연륜이 쌓이면 영향력이 커질 때가 올 거예요. 그렇지 않다고 선생님이 잘못인 것은 아니니, 스스로에게 화살을 돌리지 마세요."






내가 힘들어했던 사소로운 일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나의 밖에서 괴로워했던 일들은 사실 내 안에서 나를 향해 요동치고 있던 감정의 잔재들이었다. 내 영역의 많은 일들을 교만하게도 다 나의 영향이라고 생각하고 내 뜻과 맞지 않을 때 힘들어했다. 분명히 나의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당당하지 못하고 나 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생각과 시선이 중요했고 나는 없었다.


어릴 적부터 나를 감싸고 있는 외부적 요인들로 진정한 나를 만드는데 많은 노력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어릴 적 비난과 지지를 받지 못한 경우 자존감이 낮고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모르겠다.

나를 스스로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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