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순이 : 책으로 셀프가드닝 하기(3)
내가 좋은 날보다 싫은 날이 많았습니다
콤플렉스가 참 많은 나. 부모가 없다는 것, 가난하다는 것, 못 생겼다는 것, 키가 작다는 것, 머리가 그닥 좋지 않다는 것 그리고 결혼을 한 후에는 남편도 나의 콤플렉스가 되었다. 내가 콤플렉스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남들은 전혀 모르거나 의아해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내 안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콤컴플렉스를 바꾸기가 어려웠다. 무엇이 날 콤플렉스로 똘똘 뭉친 존재로 만들었을까?
어린 시절 나의 별명은 '못난이 메주'였다. 누가 처음으로 나를 그렇게 불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를 그렇게 자주 부르던 사람은 '큰언니'였다. 바로 위에 언니에게는 '호박'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런데 작은 언니는 그것이 상처 인 것 같지 않았다. 큰 언니는 키가 크고 얼굴이 햐얗고 엄마를 닮아서 늘 예쁘다는 칭찬을 들었다. 작은 언니도 키가 컸고 형제들 중 가장 공부를 잘해서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나는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내 얼굴형이 네모라고 믿었다. 그리고 나는 작고 못생기고 까만 얼굴에 공부도 제일 못했으니 그런 '평가'는 당연한 것처럼 받아 들여졌다.
그런 생각에 처음 의문을 갖게 된 것은 고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면서였다. 나는 대부분의 아이들처럼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다. 아버지는 너보다 공부를 잘 하는 큰언니도 상고를 갔는데 니가 무슨 인문계냐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나는 내 삶에서 처음으로 좌절감을 느끼며 펑펑 울었다. 그 당시 나의 성적은 인문계를 가기에 충분했다. 친했던 친구들 사이에서는 나름 공부를 잘 하는 편이라 내가 인문계에 갈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인문계에 못가는 것도 슬프지만 나보다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부모님에게 선물을 받으며인문계에 진학하는 걸 보니 자존심이 상했다. 다른 형제들은 스스로가 원하는 선택을 했지만 나는 내 선택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에 더 상처가 되었다. 객관적인 성적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태어나 살고 있는 운명에 따라 가질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상고에 진학했지만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다. 그 때 작은 언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대학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게 정말 부러웠다. 언니가 대학을 갈 즈음 큰아버지는 교대를 가라고 권했지만 자신이 선택한 통계학과를 갔다.내 꿈이었던 교사가 되는 길을 박차고 다른 선택지가 있는 언니의 삶이 또 부러웠다. 나는 일찍 돈을 벌고 쓸 수 있다는 것이 좋기도 했지만 늘 마음 한 편에 '대학생'이 되고 싶은 꿈이 있었다. 대학생이 되려는 건 허영심이었다. 늘 못난이로 취급 받던 내가 조금은 괜찮은 사람으로 취급을 받고 싶었다. 좋은 대학에 가서 다른 형제들 앞에 보란 듯이 나서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공부가 쉽지 않았고 수능시험까지 망쳤다. 두 번째로 내 미래를 위한 기회를 놓친 것 같아 또 한 번 크게 울어야 했다.
다행히 대학에 들어가서 복수전공도 하고 교직이수를 하게 되면서 어릴 적 내 꿈이던 '교사'가 될 수 있었다. 임용시험을 보기까지의 과정이 험난하기 했지만 내가 노력만 하면 다시 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공부할 수 있는 것도 행복했다. 신이 나를 버리지 않고 다시 기회를 준 것만 같았다. 상고에 진학하면서 완전히 멀어진꿈이라고 생각했다. 교사가 되고 나니 형제들은 은근히 나를 조금은 주변에 자랑하고 싶어했고 학교 생활에 대한 궁금한 것들을 물으면 나도 모르게 괜히 으쓱해 지기도 했다. 하지만 교사가 되고 난 후 또 다시 남들을 부러워하고 비교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나는 갖지 못했던 것들을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이었고, 내가 엄청나게 노력해서 얻은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우울해졌고 주눅들기 시작했다.
우울함은 한없이 깊게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나 자신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나의 운명이 원망스러웠다. 다행히 내 안에 긍정적인 내가 있어 책 속에서 나의 괴로움을 해결해 가기 시작했다. 이 책 <내가 좋은 날보다 싫은 날이 많았습니다>은 내 마음을 꽤 뚫어보는 듯 내가 겪었던 괴로움의 시간을 잘 보여 주었다. 이 책은 자신의 다양한 부분들을 탐색하고 만나고, 통합하며 깊게 연결되기까지의 여정에 대한 안내서다.
" 심리상담과 명상은 그동안 외면해 온 부정적인 내적 경험에 머무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빨리 떨치거나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함께 불편함의 무게를, 질감을 좀 더 견뎌보는 것이다. 이런 연습을 하다 보면 세 가지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우선, 통제하려는 노력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나쁜 감정이 일어날 때, 떨치지 않고 내버려두면 서서히 알게 된다.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내버려 두면 된다는 사실을.
둘째, 생각으로 감정을 덮지 않고, 있는 그대로 경험함으로써 새로운 관점으로 삶을 바라보게 된다. 심리적 유연성이 커지기 때문에 통제가 안되는 상황이나 갈등 국면에서도 일을 잘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셋째, 그런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자신과 깊게 연결된다. 강렬하게 다가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완전히 뚫고 지나가지 않고서 자신에 대해 아는 방법은 없다."
나를 안아주는 것은 나 자신
우리는 누군가가 나를 정말 있는 그대로 알아봐주고 인정해 주고, 조건 없이 사랑해주기를 바란다. 그 '누군가'를 찾아다니면서 인생의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나를 있는 그대로 보지도 못하면서, 누군가가 나 대신 나를 그렇게 고르게 봐주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친구나 연인, 배우자, 가족에게 기대하고 실망하기를 반복한다.
여러분은 아직 그 누군가를 만나지 못한 게 아니다. 당신이 알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잘 알아주거나, 당신이 외면하는 것을 당신 대신 품어주거나, 당신이 미워하는 자신을 조건없이 사랑해주는 그런 존재는 없다. 확실히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어디로 시선을 돌리게 될까?
바깥의 다른 존재가 아니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존감이 낮은 게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을 뿐
나 자신이 어떠어떠하고 내게 어떤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 '문제'가 하나의 부분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떤 특성도 곧 나의 전체는 아니다. 그렇다면 내게 드러난 '문제'말고 또 다른 부분은 어떨까? 이것은 우리 안의 다양한 부분들을 탐험하기에 매우 좋은 질문이 된다.
당신을 차별하는 것은 정작 당신이다
자기 자신을 바로 보아야 타인도, 세상도, 바로 보인다. 내 안의 다양한 부분들에 대해 평가하고 차별하면서 타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는 어렵다. 자신의 어떤 부분을 좋아하고 어떤 부분은 싫어하면서, 누군가가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받아주고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것도 곤란하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부분들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당신이 우울한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우울한 부분이 있을 뿐이다. 당신이 수치심으로 꽉 찬 것이 아니라, 당신 안에 수치심을 느끼는 부분이 있을 뿐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미워하는 감정도 어떤 부분에서 나온다.
예민한 부분들일수록 더 귀 기울여야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일수록 깊게 들여다보고, 그 부분의 역할을 존중하고 의미를 이해하며 감사함을 느낄 때 우리는 그 어떤 부분과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원래 그런 사람은 없다.
'원래 그런 사람'은 없다. 당신이 스스로에게 갖다 붙이는 꼬리표가 곧 당신이 된다.
나의 약점은, 극복이 아니라 이해해야 하는 것
어둠의 의미, 고통의 이유에 대해 깊게 들여다 보면 알게 된다. 그 자체로 이미 온전하다는 것을. 극복하려 애쓸 필요없이 이해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그저 자신을 향한 따뜻한 호기심
스스로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려면 따뜻하게 호기심을 갖고 대하는 것이 충분하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알고 있는 나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나처럼 대했다면 아마도 화가 나서 참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나를 수 십년 간 '학대'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을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안아주고 싶다. 내가 알고 있는 나에 대한 마음이 바꾸고 남은 시간은 나와 좀 더 잘 지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