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순이: 취미는 사랑 (3)

음악은 언제나 내 편

by 일주일의 순이

당신은 좋아하는 가수가 있는가? 즐겨 부르는 노래가 있는가? 음악을 정말 사랑하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의 두 질문에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에는?

나는 음악을 사랑하고 싶었다. 초등학생 때 합창부를 했고 중학생 때 오케스트라에서 플륫을 불었으며 고등학생 때 하모니카 밴드를 했다. 그리고 교육대학교에 입학할 때 심화 과목으로 음악을 선택했다.


우리 과 학생들은 대부분 레슨을 받았다. 졸업 시 연주회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나마 다룰 줄 아는 악기인 플륫 레슨을 받았다. 그런데 내 수준이 너무 형편없었다. 피아노, 바이올린, 플륫 등 악기를 하는 친구들의 수준은 아마추어를 능가했다. 그럼 노래를 해볼까? 하지만 성악하는 친구들 역시 수준 이상이었다. 나는 우리 과에 고작 4명 있는 남자들보다도 피아노를 못 쳤다. 다른 과는 반주 수업을 한 학기만 들으면 되지만 우리 과는 심화까지 3학기를 들어야 했다. 매주 정해진 노래를 교수님 앞에서 피아노로 치고 검사받는 수업이다. 나는 늘 남학생 4명과 함께 마지막까지 남았다.


게다가 이론도 너무 재미없었다. 장 3도, 단 3도, 포르티시모, 아첼레란도 등과 같은 음악 용어가 나에겐 너무 어려웠다. 어렸을 때부터 가정에서 혹은 교회에서 충분히 교육받았던 친구들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나는 너무 늦은 것 같고 재능도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과에서 겉돌기 시작했고 졸업 연주회에서도 예쁜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서는 친구들과 달리 조명과 음향을 담당하며 무대 뒤를 지켰다.


음악과 멀어진 삶을 살던 내가 다시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마을 활동에서였다. 아이들을 공동육아에 보내며 동네 사람들과 간간히 마을 활동을 했는데 그중 하나가 마을 음악회였다. 같은 방 엄마가 엄마들이 다 같이 무대에 섰으면 좋겠다고 해서 비교적 쉽게 배우는 우쿨렐레를 연습했다. 마침 친구의 페이스북에서 우쿨렐레를 가르치는 강사님의 정보를 얻어 그분께 그룹 레슨을 받았다.


우쿨 강사 반샘은 나보다 한 두 살 어린 보헤미안 같은 사람이었다. 첫날 수업에서 그는 우리에게 음악의 3요소가 무엇인지 아냐고 물어봤다. 리듬, 화음, 가락이라고 했다. 리듬은 박자, 우쿨에서는 주법으로 박자를 표현한다. 그리고 화음은 코드, 가락은 노래다. 우리는 첫날 C-G-Am-F 코드를 잡고 네 박자를 치며 벚꽃엔딩을 불렀다. 다른 수업에서는 도레미파솔라시도 잡는 방법을 배우는 데 반해 이 분의 수업이 신선했다. 그는 우리에게 우쿨이 아닌 음악을 가르쳐 주었다.


우리는 마을 음악회에서 성공적으로 데뷔(?)를 했다. 나는 교원 학습공동체에 음악 동아리를 만들어 학교에서도 반샘에게 레슨을 받았다. 그렇게 2년 이상 우쿨렐레를 배웠다. 그 사이 매년 열리는 마을음악회에서 떼창이 아닌 독창을 하게 되었다. 반샘이 홍대급이라고 칭찬했다. 마을에서도 음색 깡패라는 별명을 얻었다. 아, 내가 노래를 잘할 수 있구나.


욕심이 났다. 더 잘하고 싶었다. 동네 보컬학원에 등록했다. 내가 좋아하는 가을방학의 ‘취미는 사랑’ 노래를 잘 부르고 싶다고 했다. 내 노래를 듣고 강사님도 이미 가을방학이라며 칭찬해주셨다. 좀 더 어려운 곡을 하는 게 좋겠다 하시며 아이유의 ‘밤편지’를 추천했다. 그렇게 4번 보컬 레슨을 받고 노래를 녹음하여 파일로 받았다.

강사님은 내게 피아노 반주 녹음을 주며 매일 연습하라고 했다. 허밍으로 음계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이다. 재밌지 않았다. 아, 노래도 연습을 하니 재밌지 않구나. 나는 연습의 지루함과 어려움을 견딜 만큼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구나. 다시 마음을 접었다.


마음을 접는 것이 무엇이냐면,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고 애써 노력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걸 잘할 수 없고 재능이 없으니까. 세상에는 나보다 더 음악을 사랑하고 잘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좋으면 그냥 하면 되지, 직업도 아닌데, 왜 마음을 접지? 당시의 나는 그랬다. 시간 낭비하기 싫었다. 세상 많고 많은 것들 중에 내가 정말 좋아하고, 지루함을 견딜 만큼 연습할 수 있으며, 연습한 만큼 잘하는 게 되는 걸 찾아 취미로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음악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 삶에 스며들어 있었다. 나는 아침에 눈뜨자마자 음악을 튼다. 특정 장르를 선호하지 않는다. 그날 기분에 따라 음악을 검색하고 때로는 유튜브 알고리즘에 맡기기도 한다. 학교에서도 수업이 끝나면 음악을 틀고 청소를 한다. 음악에는 시간과 공간을 한 순간에 바꿔주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3분 남짓한 곡의 가사에는 한 편의 소설이나 드라마와 같은 서사가 있다. 함축적인 가사 안에서 희로애락을 경험하고, 그 가사가 가수의 음색에 실려 불러질 때 뭉클한 위로와 위안을 받는다.


내가 감히 음악을 사랑해도 될까? 미친 듯이 덕질하는 것도 아니고, 콘서트를 자주 가는 것도 아니고, 해박한 지식이나 과감한 투자도 없는데, 이런 비루한 수준의 나도 음악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음악이 나를 평가한 적은 없다. 모든 건 내가 만든 잣대였다. 음악은 언제나 조용히 내 옆에서 내 편이 되어 주었다.


나는 그냥 음악이 좋다. 음악이 흐르면 달라지는 시간성과 공간성, 플로우가 좋다. 우쿨렐레를 잡았을 때 느껴지는 따스함, 줄을 튕겼을 때 나는 울림, 그리고 가락에 실려 나오는 내 목소리의 흐름이 좋다. 비교하는 마음을 버리니, 다시 음악을 좋아할 수 있어졌다. 우쿨렐레를 치고 노래를 부를 수 있어졌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음악에 관해선 더 이상 알려고,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느끼고, 즐긴다. 순수하게 내게 위로를 주는 존재. 그렇게 음악은 오늘도 내 옆에 내가 사랑하는 존재로 남아있다.

맛보기로 유자차~ 쪼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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