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안한 내 존재감의 민낯을 드러내는 일기가 아닌 공개되는 글을 쓰려니 처음 글을 쓰기로 마음먹을 때 미처 아우르지 못했던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이 어린애의 알 깨기로 어른스러움을 가지려 하는 늦깍이의 서툰 모습을 이해해 주실 거라 생각하며... 세 번째 글을 시작한다.
화요일에 상담사와의 만남은 불편했다. 일정 조율의 차질로 급하게 온 상담사의 심기는 전보다 편안하지 않아서 좀 당황스럽기도 했고, 그런 감정의 여운이었는지 나는 말이 술술 나오지 않았다.
상담사는 어린 내가 참 힘들었을 거 같다며 그때의 나를 위로하고 다독여주어 현재의 내 속에서 떠나보내주어야 한다고 했다. 무슨 한이 남아 있어서 떠나지 못하는 원혼처럼 옛날의 외롭고 슬픈 나는 지금의 내 속에 웅크리고 앉아 계속 나를 괴롭히고 있다.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대면하는 시점에서 나는 회피하고 싶어서 제대로 나를 들여다보지 않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에게 마음고생 많았구나...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상담사의 독촉으로 상황을 매듭지으려 간신히 내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말을 내뱉은 후 나는 눈물이 막 쏟아져서 몇 분 동안 흐느껴 울었고 곧 티슈로 눈물을 닦으며 내 마음을 진정시켰다.
두 번째 상담사를 찾았을 때, 지난 시간 예전의 나를 만나는 시간이 힘들었다고 하니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라고 했다. 그래도 마음속 한편에 어둡게 자리 잡았던 그 애는 몸집이 훨씬 작아지고 가벼워짐을 얼핏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은 왜곡된 자아상을 갖게 만들었고 억눌리고 표출되지 못한 감정들로 현실을 이성적으로 직시하지 못하게 되며 이러한 요인이 지금의 나에게 큰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온전히 옛날의 나를 떠나보내야 치유와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는 거구나... 내가 거기서 살아남으려 갖게 된 삐뚤어진 욕망, 나에게 있는 큰 욕심을 바라보았다. 이는 살아가면서 나를 성장시키기도 했지만 반면에 감정적 이어 판단을 흐리고 중용을 어렵게 만드는 심리적 기제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정리가 되니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대인관계의 스트레스와 육아의 문제점들의 밑바닥을 헤아릴 수 있어서 시원한 감정이 들었다. 이후 상담사와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들을 나열하며 꺼내어 보려 했지만 딱히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를 향한 자애가 깊게 문제가 있다. 평생 같이 가야 할 나의 존재를 나는 비난하고 껴안아 주지 않고 충분히 사랑하지 않아 단단하지 못했고 거기에 디디지 못하니 홀로서기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서 몇 가지 단어를 화두로 남겼다.
욕심, 감정적임, 나에게 잘해주기, 가벼운 새로운 나
그리고 다음 주 상담사와의 마지막 여정이 기대가 되어 설렌다.
그 해답을 찾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