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순이 : 거울을 바라보는 시간 (4)

두려움의 역설

by 일주일의 순이

살아갈수록 점점 두려운 것이 많아진다.

나이가 들수록 두려운 것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다소 역설적인 것 같다. 살아갈수록 다양한 경험을 통해 무지를 해소하며 연륜을 쌓아 나가고, 통과 의례들을 거치며 삶의 많은 것들을 획득해 나가는 과정에서 '확실'해지는 것들도 많아질 것이다. 그래서 삶이 점점 안정되어 가는 것이 이치에 맞겠는데, 이상하게 갈수록 두려운 것들이 많아지는 느낌이다.

'우리가 두려워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명언도 있지만, 그 말을 머릿속에 기억하고 인식하고 있다고 해서 때때로 찾아오는 두려움을 곧바로 휴지통에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매일 아침을 두려움으로 열고 있는 것 같았다. 집을 떠나면서, 직장으로 향하면서, 퇴근을 하면서, 잠을 자며 내일을 준비하면서 등 매 삶의 순간에 끊임없이 두려움과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부모가 되어 아이를 얻게 된 뒤로 나는 새로운 차원의 두려움을 알게 되었다. 입이 짧은 아이라 덜 먹는 것 때문에 잘 자라지 못하면 어쩌나 항상 두려웠고, 원인 모를 증상으로 아이가 아플 때에는 큰 병원을 찾으며 두려움에 떨었다. 아이가 아무 일 없이 잘 자랄 때조차 나는 혹시나 하는 - 부정 탈지도 모른다는 - 생각에 그것을 소리 내어 감사하거나 기뻐하고 안심하는 말을 하지 못했다. 아이의 존재가 한없이 소중했기 때문에 아이를 잃을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한없이 예쁜 아이는 존재 자체로 큰 행복이었지만, 아이보다 오래 살아본 삶을 근거로 삼아 삶이 결코 녹록지 않음을 두려움의 기제로 또한 삼게 되었다. 아이의 먼 미래의 행복까지도 걱정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부모로서 아이의 뒤쳐짐과 부족함을 또한 두려워하게 되었다. 아이를 채근하여 결과물을 얻으며 그 두려움을 해소하고자 하였고, 아이보다도 내가 더 마음속으로 쫓기느라 아이에게 많이 웃어주지 못했다. 오히려 엄격한 얼굴로 매일 부족함을 일깨웠다. 소중한 아이의 소중한 미래의 행복까지 잃고 싶지 않아서 항상 두려워하는 중이었다.

교사라는 직업을 얻은 뒤로도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매일 학교에서 아이들이 어떤 사고를 벌일지 몰라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출근했다. 규정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존재들은 언젠가 사고를 일으키게 마련이었는데, 그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번번이 무력감을 느끼곤 했다. 어쩌면 나는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로 가득 찬 학교, 그러나 어떠한 일이 일어나든지 최대한 그 상황에 맞게 현명하게 판단하고 그 결과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져야만 하는 교사의 위치. 게다가 그 과정 어딘가에 눈을 부릅뜨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학부모의 민원. 그 모든 것들이 내가 서 있는 곳을 흔드는 기분이었기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끊임없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얼마 전 받았던 건강검진은 나를 새로운 두려움의 세계로 인도하였다. 2년마다 으레 받아온 건강검진 이건만 갓 마흔이 되어 받는 이번 검사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과거에는 검진용 침대 위에 아무 생각 없이 누워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끝나던 초음파 검사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검사를 하는 의사 선생님의 심각한 표정에 당황하고, 예사롭지 않은 말들의 뉘앙스를 분석하며 온 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을 느끼는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결절이 있는데 알고 있느냐는 말씀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처음 듣는 소견이라고 하니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의사 선생님은 여러 번 같은 부위를 눌러서 진찰하고 또 진찰했다. 괜찮은 결과일 경우 환자가 묻지 않아도 안심시키기 위해 먼저 상태를 말해주기도 하던데, 나의 조심스러운 질문에도 의사 선생님은 결과가 나오면 들으라고 끝까지 함구하며 진찰을 반복할 뿐이었다. 선생님의 손길을 따라 나는 마음속에 있는 불안을 스캔하고 또 스캔해야 했다.

부모로서, 그리고 교사로서의 불안, 마지막으로 건강으로 인한 불안... 최근 삶을 지배하는 이 불안들 중에 가장 큰 것은, 아무래도 내 존재를 규정하는 '건강으로 인한 불안'이었나 보다. 건강검진을 받고 온 후 - 결과가 나오기까지 아직 1주일 정도가 더 남았건만 - 불길한 결과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커져만 갔고, 두려움에 비례해 풍부해진 상상력으로 암이 걸려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까지 가정함으로써 이것이야말로 내 삶을 가장 크게 뒤흔드는 거대한 두려움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가장 큰 두려움이 일상 속의 작은 두려움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잠식해버리니, 병에 대한 두려움들보다 더 큰, 궁극적인 두려움이 내 안에 남아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인가? 아니었다. 바로 그동안 삶에서 이런저런 두려움들에 쫓기느라 최대한 삶을 여유 있고 즐겁게 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계속 그렇게 살다가 내가 가지고 있던 소중한 일상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나는 너무나도 후회할 것 같았고, 그것이 두려웠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버킷리스트를 세우는 이유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버킷리스트를 실천해나가는 영화의 주인공을 보며, 죽으면 끝날 것을 왜 힘든 몸을 이끌고 무리해가면서까지 실현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었는데, 내가 그러한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해보니 그것이 이 세상에 남아있는 동안 삶을 최대한 행복하고 뜻깊게 기억하며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매일매일이 선물'이라는 말을 진심으로 삶 속에서 느껴보고 싶어졌다. 그간 누리지 못했던, 소소하게 흩뿌려져 있는 즐겁고 기쁜 순간들을 발견하고 마음껏 즐기고 싶어졌다. 그래서 순간을 음미하고, 순간의 휴식을 달콤하게 생각하고, 내 삶을 최대한 긍정적인 순간들로 가득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씩 외식하며 찾는 유명한 동네 중국집에서, 나는 아이들이 먹을 것을 챙기느라 평소에는 내 입으로는 어떤 음식이 어떻게 들어가는지도 잘 몰랐었다. 그런데 이번 주말에는 나를 위해 칭다오를 한 병 시켜보았다. 입이 워낙 짧아서 먹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엄마 배불러'를 외치는 아이에게 그만 먹어도 된다고 말해준 뒤, 나는 남편과 맥주잔을 부딪쳤다. 맥주에 곁들여 음미하는 탕수육은 황홀한 맛이었다. 바삭한 튀김옷 사이를 비집고 배어 나오는 육즙과 달콤한 소스의 하모니를 그토록 생생하게 느껴본 것은 처음이었다. 돼지고기 볶음밥과 짬뽕 국물이 그토록 잘 어울리는 메뉴라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아차렸다. 일상에서 맛보는 신세계였다.

집에서는 공부하라는 잔소리 대신, 아이가 좋아하는 유튜버와 갓 관심을 가지게 된 게임의 내용을 소재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 처음 보는 표정들이 아이로부터 끊임없이 생산되어 나왔다. 나는 아이의 시무룩하고 불만 섞인 모습을 나의 일상으로 착각하며 살아왔었다는 깨달음이 뒷머리를 쳤다. 나의 선택으로 바뀔 수 있는 삶의 모습들이 생각보다 많구나라는 깨달음과 함께.

얼마 전부터 나는 차 속에서 더 이상 혼잣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누리지 못한 하루를, 나를 만나는 아이들에게 내가 주지 못했던 것들은, 내가 놓치는 함께하는 하루에서 발견할 숨은 그림 찾기 속 그림처럼 숨어있는 기쁨을 생각하면 불안이 새어들 틈이 없다. 두려움이 불확실성에서 나온다면, 내 운명을 뒤흔들지도 모르는 거대한 불확실성은 오히려 이런 작은 두려움들이 삶에 대한 의지와 욕심, 집착에서 나오는 것임을 확인시켜주며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내 마음속에는 두려움보다는 아쉬움이 많다.
내가 받아 들 결과가 무엇이건 간에, 나는 예전의 두려움 많은 내 모습보다는 아쉬움이 많은 내 모습을 더 사랑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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