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순이 : 어른들을 위한 동화 (1)

[One pack]투명이 되고 싶어.

by 일주일의 순이

밤사이 불어난 강물은 강바닥을 아프게 할퀴어 놓았다. 터전을 짓고 모여 살던 물고기들은 서로 흩어졌고, 살던 곳을 잃고 쓸려 내려갔다. 바람이 잦아들고 물살이 잠잠해진 후에야 작은 생명들이 거기 있음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아얏! 풀이 나를 찌르네.”

“카하학. 내가 풀인 줄 알았구나? 나는 초록 복어 푸쿠야. 네가 잘 안보여서 몰랐어. 넌 참 투명하구나.”

“나는 아기 넙치 올리바야. 그런데 저기 숨어있는 애도 투명한데? 얘, 너도 나와 같은 넙치니?”

“아, 아니... 나는 글라스캣 케이시라고 해.”

평소 푸라무스 강은 따뜻하고 품어주는 곳이기도 했지만, 지난 밤처럼 모든 생명의 평온함을 뒤흔들어 놓는 가혹한 손길이 되기도 했다. 아직 덜 영근 세 마리의 아기 물고기들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우리 힘을 합쳐 먹이를 구해보자. 기절한 작은 새우라도 구할 수 있다면 좋겠어.”

올리바가 말했다. 그 말에 배가 고팠던 푸쿠도 대답했다.

“그래. 나랑 올리바는 물길을 따라 가보자. 케이시는 돌 사이에 숨은 먹이를 찾아보도록 해.”

“응… 그럴게…”


겁이 많은 케이시는 아직 이곳이 익숙하지 않아서 멀리 가고 싶지 않았다. 항상 언니, 오빠, 동생과 함께 무리지어 살던 곳에 익숙해서인지 더욱 외로움이 느껴졌다. 그래도 푸쿠와 올리바를 만난 것이 다행이라고 여기며 케이시는 긴 윗 수염으로 돌 틈을 더듬어 작은 먹이를 많이 모아두려 애썼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록 친구들이 돌아오지 않자 걱정되는 마음에 케이시는 무서움도 이기고 돌 밖까지 마중을 나갔다.

“카하학. 올리바, 너는 왜 이렇게 웃기게 차냐?”

푸쿠의 큰 웃음 소리가 들렸다. 올리바와 푸쿠는 둘이 물방울을 가지고 신나게 축구를 하고 있었다.

“푸쿠, 니가 골대를 잘 못 막는거지. 자, 다음에는 더 큰 물방울이다. 얍!”

둘은 신나게 노느라 케이시가 근처까지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푸쿠, 올리바. 돌아오지 않아서 걱정했어. 어서 와서 먹이 먹어.”

케이시는 둘이 먹이를 구하지 않고 노는 모습에 조금 속이 상했지만, 누군가와 같이 있는 것 만으로도 안심이 되어 친구들을 반겨주었다. 흥이 식지 않은 푸쿠가 급하게 달려와서 먹이를 먹으려다가 그만 케이시의 지느러미를 세게 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케이시는 크게 휘청거렸다.

“푸쿠야, 이렇게 치면 어떻게 해…”

투명했던 몸이 조금 벌게진 채로 케이시가 말했다.

“야! 케이시, 무슨 소리야. 네가 지금 내 옆구리를 친 거 잖아. 올리바, 너도 봤지?”

올리바는 아까 케이시와 눈이 마주쳤었다. 케이시가 지느러미를 못 펴서 멀리 쓸려갔다 오는 모습을 분명히 보았다,

“어? 어… 야! 케이시! 우리가 먹이 안 구해와서 화가 난 거야? 니가 푸쿠 옆구리를 지느러미로 미는 것을 내가 봤어.”

푸쿠를 자꾸 쳐다보는 올리바의 얼굴도 약간 흙빛을 띄고 있었다.

“아닌데... 올리바. 나 아까 밀려나는 걸 니가 봤잖아.”

“케이시, 니가 피곤해서 조금 예민한 것 같아. 그냥 물살 때문에 서로 그랬다고 치자. 어서 먹자. 우와! 맛있겠다.”

옆에 있던 올리바도 아니라고 하니, 케이시는 푸쿠가 축구를 하다가 온 탓에 너무 흥분해서 자신도 모르게 밀었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에도 수영을 오래 하지 못하는 케이시는 돌 주변을 훑고, 올리바와 푸쿠가 물살을 거슬러 먹이를 구하러 가기로 했다. 케이시는 자꾸만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어제 둘이서만 신나게 놀고 있던 모습과 푸쿠의 편을 들어주던 올리바의 외면하는 눈빛, 케이시 혼자 애써 구한 먹이를 먹으면서도 둘이서만 아는 축구 얘기를 신나게 나누던 모습에 공연히 외로워졌다.

오늘은 어제만큼 먹이를 구하지는 못했다. 먹이를 구하는 영역을 조금 더 넓혀 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어 친구들이 간 쪽의 바닥을 훑고 있을 때였다. 저 쪽에서 웅성거리는 물살이 느껴졌다. 여러 색으로 빛나는 칼라테트라들이었다. 그런데 그 안에서 더욱 잘 보이는 것은 푸쿠와 올리바의 모습이었다.

“카하학. 초록 칼라테트라 네 비늘 진짜 멋있구나. 나는 이번 폭풍우 때 초록 비늘이 조금 벗겨졌더라.”

푸쿠가 등 비늘을 이리저리 들춰보며 말했다.

“푸쿠, 이거 진짜 비늘 아니야. 나는 원래 인간들이랑 같은 동네에서 살다가 왔는데, 거기선 동물병원에 가면 이렇게 원하는 색의 잉크를 비늘 윗 쪽에 넣어줘.”

초록빛의 칼라테트라가 으스대며 말했다.

“우와, 너는 진짜 멋진 곳에 있다 왔구나. 이곳에서는 보지 못했던 색이라 그런지 정말 예쁘다. 나도 투명한 몸 말고 멋진 색을 갖고 싶다.”

올리바는 주변의 테트라들을 정신없이 곁눈질하기 바빴다.

그 날 저녁, 푸쿠는 저녁을 먹으면서도 공연히 투덜거렸다. 우리가 머물러 있는 하류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라 물이 짜다며, 상류에서는 등이 더 초록이었는데 누렇게 빛이 바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좋은 물로 이사가면 더 밝은 색을 가질 수 있을거라며 한 숨을 내쉬기도 했다. 올리바는 가만히 먹이를 먹던 케이시의 몸을 위아래로 쳐다보며 말했다.

“케이시, 너랑 나는 몸이 왜 이렇게 귀신같이 투명한 걸까? 우리도 고급스러운 파랑, 노랑 이렇게 우리만의 색이 있으면 더 예뻤을텐데. . . “

올리바의 투명했던 몸은 그런 우울한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어 어느새 더욱 진한 흙빛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색이 없다는 것이 고급스럽지 않은 몸이 된 것 같도록 느끼게 하는 올리바의 말은 내내 케이시의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케이시의 몸은 여전히 투명했다. 케이시는 한 번도 색을 가져보기를 희망한 적이 없었다. 어떤 먹이를 먹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몸이 재미있었고, 진실해 보여 좋았다. 하지만 오늘은 올리바와 푸쿠 앞에서 온 마음을 다 들킨 양 투명한 몸이 창피해졌다.


며칠 동안 또 큰 비가 내렸다. 푸쿠와 올리바, 케이시는 물풀 속에 숨어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사실은 케이시의 마음 한 구석에는 이 비에 나도 모르게 휩쓸려 갈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푸쿠, 올리바와 함께 지내는 것이 마음이 내내 불편했던 탓이었다. 하지만 겁이 많은 케이시는 물풀을 잡은 지느러미의 힘을 풀 용기도 없었다. 누군가의 무리 속에 속해 있지 않다는 외로움은 저들의 무례함보다도 더욱 겁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비가 그친 이른 아침, 일어나보니 올리바가 곁에서 보이지 않았다. 혹시 물살에 떠내려갔는지 걱정되어 찾으러 나와본 케이시의 눈에 저 멀리 모래색의 커다란 광어 한 마리가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겁이 많은 케이시가 근처 돌 사이로 몸을 숨기려는데 올리바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이 내 아버지라면 나를 왜 편한 곳으로 데려가지 않죠? 인간들에게로 가면 가만히엎드려 있어도 먹이를 먹을 수 있고, 이렇게 물살에 휩쓸려 갈까봐 걱정하지 않는 울타리도 생긴다는데요.”

“아들아, 너는 지금 투명하고 작은 넙치이기 때문에 인간들이 너를 탐내지 않는 것이란 다. 아빠처럼 자라서 몸이 점점 흙빛으로 변하면 너를 잡아먹기 위해서 먹이를 주는 양식장일 뿐이야. 아빠와 함께 자유로운 바다로 가자.”

“싫어요. 저는 힘든 것은 하지 않을래요. 바다로 나간다고 저를 먹이로 노리는 위험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예요. 어차피 한 번 사는 삶이라면 편하게 먹고, 편하게 살다가 죽을래요. 양식장에 데려다 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냥 친구들과 있고 싶어요. 걔네들은 저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거든요.“

아빠 광어에게 단호하게 얘기한 올리바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아빠 광어는 그 다름 앞에서 어떤 강요도 하지 못하고 바다로 돌아갔다.

케이시는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어떤 것이 나에게 맞는 삶인지 바닥부터 헷갈리기 시작했다. 살면서 마음 불편한 것들을 겪으면서도, 포기한 이후의 삶이 무서워 맞서지 않고 있었던 것들이 내 스스로의 양식장 안에 나를 가두게 하는 것이었을까.

이대로 푸쿠와 올리바에게 돌아가면 고민했던 투명한 속을 다 들킬까 겁이 났다. 하지만 혼자서는 갈 수 있는 곳도 없었다. 그러기에는 안정이라는 가치를 선호하는 편이었다. 케이시는 꼬리 지느러미를 축 늘어뜨리고 푸쿠와 올리바에게 돌아갔다.

‘저들은 곧 내 속을 투명하게 다 보고 비웃겠지.’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푸쿠와 올리바는 케이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아니, 자세히 말한다면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케이시의 마음이 파랑이건 분홍이건 그 색을 아무도 바라봐 주지 않았다.

“카하학. 내 등비늘이 에메럴드 빛 같다구? 보는 눈이 있구나. 올리바.”

“응. 그렇다니까. 푸쿠야. 너 등 계속 볼꺼면 이 남긴 새우는 내가 먹는다.”

둘은 서로에게 필요했다.

케이시는 그들에게 꼭 필요한 친구가 아니었다.


케이시는 마음이 빨개질 것 같았다. 머리에서 파란 피가 흐르는 것 같았다.


내게 소중한 나의 존재가 그들에게는 안 필요했다.


그렇게 케이시는 중하층부 물결이 흐르는 대로, 이끄는 대로 하루 종일 가만히 떠서 흘러만 갔다. 차마 내 발로는 그들을 떠날 수 있는 용기도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는 대로 가만히만 있어도 삶은 내가 필요하지 않은 곳에서는 나를 데려가 버리는 법이었다.

한참을 떠다니던 케이시는 문득 지느러미를 움직여 보았다. 어려서 글라스캣 형제무리에서 자랄 때 ‘자신이 어울리는 집단의 일원은 서로를 복제하려는 성향이 있다’고 들었다. 몸이 얼룩덜룩 흉측한 색으로 변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정신없이 이곳저곳 몸을 둘러본 케이시는 여전히 투명하고 물과 똑같은 색이었다. 케이시는 푸쿠와 올리바 집단의 일원이 아니었던 것이다.

케이시는 그것이 오히려 고마워졌다. 굳이 누군가의 마음에 드는 색이 아니길 바랐다. 또 누군가가 싫어하는 색 또한 아니길 바랐다. 물이 드는 서운함을 용인하며 어딘가에 친한 척 소속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케이시는 그냥 투명한 물고기였다, 그것은 그를 누군가가 아무 색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음은 나에게 온전히 속한다는 것을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케이시는 비로소 마음의 양식장을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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