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보예 지젝, 「팬데믹 패닉」 감상문(?)
이 모든 들뜬 희망과 달리 바이러스의 위협은 여기에 머물러 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 절실하다. 이번 파동이 물러가더라도 감염병은 새롭고 어쩌면 더 위험한 형태로 재출현할 것이다. - 슬라보예 지젝, 「팬데믹 패닉」 p59
팬데믹 패닉(Pandemic Panic), 참으로 재미있는 제목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전염병에 대한 공포를 의미할 수도, 또는 공포 그 자체가 전염병처럼 퍼진 상태를 의미할 수도 있다. 그 중 저자의 의도가 무엇이 됐건, 우리의 삶을 바꾸고 있는 것은 전염병보다는 공포가 아닐까 생각한다. 기약 없는 백신의 등장을 고대하며 많은 이들이 전염병을 피해 움츠리고 있지만, 그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은 지금도 파티를 찾으며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요인은 코로나19 바이러스지만 직접적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은 그에 동반되는 공포라고 생각되는 이유이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유행을 기점으로 무엇이 달라졌을까? 앞서 언급한 공포의 확산은 이미 점차 수그러드는 듯하다. 초기 공급부족을 겪었던 방역 또는 위생용품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게 되었고, 세계의 주식시장은 코로나19 사태 발발 이전 수준으로 위복되는 수준을 넘어 유례없는 상승을 보이고 있다. 일상생활의 측면에서는 위생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전면적으로 뒤바뀌었고 공공위생 준수는 기본적인 요구사항이 되었다. 과거에는 별다른 의식 없이 실행에 옮겼던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지는, 모든 행동에 공포가 동반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마도 모두가 이토록 바라고 그리워하는 코로나19 이전의 삶이란 그런 공포가 없는 삶이리라.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코로나19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려는 희망에 대해 환상, 나아가 망상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미 과거의 삶은 근본적으로 흔들렸으며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정부는 전 지구적 비상사태에 올바르게 대처하지 못한 과오를 숨기길 바라기에, 그리고 국민의 입장에서 돌이켜보면 그다지 좋을 것도 없었던, 감염병이 만연하기 이전의 사회로 돌아가기보다는 허점투성이였던 낡은 체제를 뒤엎고 완전히 새로운 정부 형태의 출현과 근본적으로 전에 없던 시도의 도입을 요구한다. 그가 제시하는 한 가지 예는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실시된 긴급재난지원금과 같이, 과거 전통적인 자유 시장 경제체제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전면적인 정부의 개입이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처럼 창의적인 적용사례를 고민하는 것에 앞서, 앞으로 이어질 전 지구적 재난에 대비해 전에 없던 방식들을 과감하게 고려하는 판단력이다. 말하자면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21세기 들어 2002년 사스(SARS),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2015년 메르스(MERS), 그리고 현재의 코로나19 바이러스까지... 일정한 주기로 우리를 위협하는 감염병 유행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2015년 메르스의 경험은 현재 우리에게 닥친 새로운 위험에 대처하는데 많은 힌트를 제공해주었다. 그러나 다음에 찾아올 위협에도 그것이 통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향후 닥쳐올 그 보이지 않는 위협에 대한 근본적인 대비는 현 시스템이 가진 결함을 찾아 그 존재를 인정하고 판을 뒤엎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는 결단력, 그런 용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끝)
회사에서 교육 프로그램으로 진행 중인 독서토론회에 비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되어서, 결과보고를 위해 비자발적으로 쓰게된 형식적인 감상문.. 회사에서 정해준 책이라도 피해서 다행이다.. 마침 시기 좋게 지젝 선생님이 신간을 내주시고 번역본이 출간되어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