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가벼운 글

작가의 서랍: 가벼운 글

브런치 작가님들의 서랍 속엔 무엇이 남겨져 있습니까?

by 불댕

브런치 작가 신청이 통과되고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을 때 약간의 당혹감이 밀려왔다. 그동안 사용해 왔던 보통의 블로그에 비해 기능적 측면에서 브런치가 가진 차이 때문이었다. 브런치 작가가 된 뒤에야 처음 만날 수 있는 발행 버튼은, 글을 충분히 마무리 지었다고 생각한 뒤에도 발행이라는 과정을 통해 타인, 다시 말해 독자에게 그 글을 선보일 것인가에 대해 한번 더 고민하게, 또는 망설이게 만든다. 그와 동시에 내가 만족하지 못해 발행하지 않은 글들은 "작가의 서랍"에 모이면서 외부로부터 철저히 분리된 채 작가의 개인적인 공간에 남아주었다.


브런치 작가 지원 시에 내 작가의 서랍에는 글이 세 개 작성되어 있었고 이 세 글로 브런치 작가 자격을 얻었지만 아직까지 이 세 글 중 발행된 글은 하나도 없다. 공들여 쓴 만큼 누군가 이 글을 읽게 된다는 부담이 커지고 좀 더 다듬어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때 하나씩 발행을 하려 한다. 아마도 새로이 수정 작업을 하면서 지금과는 그 모습이 꽤나 바뀌지 않을까 한다. 이토록 공들여 쓴 글들이 아직까지도 나만의 서랍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상기시키면서,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이 "작가의 서랍"의 의의를 생각해 본다.



빨간 약, 파란약?


브런치는 블로그가 아니었다. 물론 피드나 추천을 통해 노출되는 글들 중에도 그 내용적 측면에서 여타 블로그와의 사용성에 크게 차이를 두지 않는 이용자들 또한 다수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차이점은 이미지보다는 텍스트 중심으로 개인적인 고민의 흔적이 보이는 글들이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내가 블로그에서 그동안 자주 당해왔듯 이미지나 키워드로 사람을 낚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기술이나 전문성을 떠나 저마다 품고 있던 속마음을 글이라는 매개를 이용하여 토로한다. 그런 공통점이 있는 작가들이 모여든 곳이 바로 브런치였다. 자신이야말로 스스로의 삶에 대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던가. 2주 남짓 경험한 브런치는 "나"라는 전문분야에 대해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놓거나, 또는 다른 이들이 좀 더 그것을 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글쓰기 팁이 많이 보인다. 다시 말해 이곳은 글쓰기, 또는 사회라는 생태에서 각자 살아남기 위해 경쟁보다는 협업을 하는 독특한 곳이다.


빌 게이츠가 윈도우 리뷰를 해도 믿음이 안 간다.


여타 블로그처럼 직접적인 상업 광고 게재가 불가하고 유튜브처럼 조회수나 구독자 수로 금전적인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보니 발견되는 독특한 생태계일 것이다. 구글링을 해보면 이 특징 때문에 “뭐하러 브런치에 글을 쓰는가?”라는 의문을 던지며 이곳에서 중도 이탈하거나 진입조차 하지 않는 이들이 많이 보였다. 나야 뭐 금전적인 수입을 위해 브런치에 입문한 것이 아니므로 그런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 오히려 마음 편하게 글을 쓰게 된다.

그럼에도 하루하루 서랍에는 내가 쌓여간다.


브런치의 발행 글들을 살펴보니 글쓰기를 위해 에버노트 등의 다양한 메모 도구를 이용한 브레인스토밍을 권유하는 이들이 많이 보였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별도의 메모 앱을 이용하지 않고 브런치 작가의 서랍을 그와 같은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생각나는 쓸거리가 떠오르면 주저 없이 브런치 글쓰기 버튼을 누르고 키워드나 짧은 아이디어를 메모해 둔다. 그리고 저장버튼을 눌러 작가의 서랍으로 보내 놓았다. 지금 내 작가의 서랍을 끄집어 열어보니 저장글이 13개가 있다. 그리고 이 글이 곧 서랍에서 꺼내어져 12개의 글만이 남게 될 것이다. 그중엔 바로 발행을 해도 좋을법한 A4 3장 분량의 꽤 긴 글도 보이는 반면, 짧은 키워드만 몇 개 끄적여 놓은 저장글도 있다. 서랍 구석에서 숙성되고 있는 이 글들이 언제쯤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대로 잊혀 서랍 제일 아래로 밀려버릴 수도 있겠지만, 순간적인 감정으로 기억조차 남지 않을 내 삶의 일부들이 한 공간에 모여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 재밌기도 하면서도 내가 전업 작가도 아닌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하루하루 서랍에는 내가 쌓여간다. 고단한 하루하루를 지나온 내가 또 하루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글쓰기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의 서랍을 보며,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을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것, 그것이 가진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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