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가벼운 글

불멍의 미학: 가벼운 글

브런치 입문 소감+불멍에 대한 소고

by 불댕


2020년 4월 10일 금요일, 12시 반쯤 브런치 작가가 되었습니다. 저도 기회가 되면 브런치 작가 신청기를 한번 써보고 싶네요. 저는 운 좋게도 첫 신청만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습니다. 1월 즈음 회원 가입만 해두고 글 한 번 쓰지 않고 방치했는데, 지난 4월 7일 화요일부터 총 3일에 걸쳐 하루 하나 씩 세 편의 글을 썼고, 마지막 4일 째인 금요일, 예쁜 편집도 없이 비문만 수정하고 이 세 편의 글을 첨부하여 신청하였습니다. 5일까지 걸린다는 안내와는 다르게 오전 10시 무렵 신청했는데 당일 12시 반쯤 결과가 나왔네요. 작가 자격을 받고 첫 발행은 어떤 글이 좋을까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신청 당시 첨부했던 저장글 세 개를 다듬어 브런치 작가로서 첫걸음을 시작해 볼까 했는데, 그 글들이 읽을수록 무거운 느낌이라 좀 더 가볍게 새로 하나 써봅니다. 작가 신청 시 첨부했던 세 편의 글들은 연재 형식으로 쓴 짧지 않은 에세이들이었습니다. 처음 시작은 캠핑에 필요한 장비 소개처럼 정보전달 형식의 가벼운 글을 쓰기 위함이었는데, 글을 시작하고 나니 3년 전 처음으로 캠핑을 다니게 된 계기도 자연스럽게 쓰게 되면서 당시의 극심한 스트레스에 대한 내용이 글을 너무 무겁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불멍"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열심히 캠핑을 다니다 보니 지금은 직장 스트레스를 캠핑으로 푸는 게 아니라 캠핑 갈 돈을 마련하려 직장에 다니는 지경이 되었네요. 캠핑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지만 이 글에서는 "불멍"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여러분은 "불멍"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불멍은 모닥불을 멍하니 바라보는 행위를 일컫는 신조어라고 합니다. 캠핑을 시작할 당시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방문했던 커뮤니티에서 불멍이라는 표현을 자주 보았는데, 통상 "불멍 하려고 캠핑 간다"라며 동사 형태로 쓰이는 걸 보니 이게 분명 캠핑과 관련된 말인 건 분명한데 도무지 무슨 뜻인지를 모르겠는 겁니다. 처음에는 '불'에 구워 뭘 '먹'는다는 말인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구글링을 해보니 앞서 언급했듯 "장작불을 보며 멍 때리기를 의미하는 캠핑 신조어로, 이미 캠핑족들에게는 익숙한 단어이다"라고 하더군요. 캠핑족들에게는 익숙한 단어라는 걸 보니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진 표현이 아니지 싶기도 하네요. 하지만 유튜브에는 10시간짜리 벽난로 영상도 있는 걸 보면 불멍이라는 행위 자체는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불을 바라보는 것에 대한 기록이나 학술적 의미에 대한 글들도 찾기 어렵지 않지만 가볍게 쓰려는 글이니만큼 그런 내용을 쓰고 싶진 않습니다. 제게 그와 관련된 특별히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제목은 "불멍의 미학"이라고 그럴싸하게 지었지만, 너무 진지한 이야기보다는 힘을 빼고 경험으로서의 불멍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네요. 이 글을 읽고 여러분도 한번 불멍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합니다(츄라이~ 츄라이~).

목적이나 해답 없는 순수한 행위 그 자체

불멍은 원초적인 행위입니다. 불을 일으키고 장작을 원하는 만큼 보태어 불길이 사그라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그 행위에 목적은 없습니다. 불을 일으키는 것도, 장작을 보태는 것도, 그리고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내는 것, 그 어느 것도 불멍의 목적이 아닙니다. 그리고 거기에 불멍의 미학이 있습니다.

이따금씩 따닥따닥 불이 튀어 오르는 파열음에 화들짝 놀라기도 하고, 그 모습에 터지는 웃음은 늦은 밤 잠 못 이루는 이웃 캠퍼들의 알아듣지도 못 할 수다 소리와 기분 좋은 조화를 이룹니다. 하지만 불멍의 미학은 함께 캠핑을 하는 일행이나 주변에 자리 잡은 여타 여행객들과 공유하기보다는 좀 더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입니다. 자리에 앉아 화로에 장작을 쌓고, 타오르는 불길에 시선을 두고 있자면 조금씩 그 불에 온전히 마음을 빼앗깁니다. 서늘한 밤공기에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뜨거운 화롯불에 손을 펼치고 있으니 장작 타는 연기 냄새가 달큼하게까지 느껴집니다. 그리고 온 신경을 작은 불덩이에 내어주고 있자면 캠핑에 지친 몸이 점점 노곤해지고 의식은 멍해지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열기 때문인지 두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있네요.

멍하니 이 불꽃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고되게 흘러간 지난 한 주도, 이 밤이 지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며칠간 아침마다 출근길에 올라야 한다는 것도 잊게 됩니다. 그러면서 복잡했던 머릿속이 비워지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높은 급여, 우수한 실적, 원만한 대인관계… 항상 어떤 목적을 좇아왔던 일상을 떠나 어떤 목적이나 해답이 필요 없이 불을 바라보는 순수한 행위에 그치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괜찮다는 것이 바로 불멍의 미학이 아닐까 합니다.


저마다 야영장에 모여 앉은 사정은 다르겠지만 저는 굳이 캠핑에 이유를 두려 하지는 않습니다. 그동안 얽매어 있었던 목적의식을 벗어던진 채, 집을 나서 야영장에서 망치질을 하고, 불을 피워 음식을 하고, 그 불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지인들과 주말을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할 일이 간혹 생길 때면 나의 주말이 마치 도시 사람의 일탈처럼 비치기도 하지만, 그들의 "먹고 사느라 바쁘다"는 핑계는 장작불 피워 먹고사는 저의 주말에 비하면 오히려 여유롭게 들리기도 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억지로라도 그들을 끌고 불 앞에 앉혀 놓고 싶지만 타인의 삶을 멋대로 재단하는 것만큼 오만한 행동이 또 어디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내일도 출근하여 불멍 영업합니다. 츄라이~ 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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