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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lleehan Aug 16. 2018

사랑의 실패

삼투압과 회전목마

내가 쉽게 굴복하고 복종하는 몇 가지가 있다. 돈과 명예 권력 남자 욕망 음식 위스키 다정 따뜻한 포옹 키스 등이 있다.  위대하고 아름다운 존재들 앞에서 난 내가 쉽게 체면을 벌거벗고 복종하는 것을 느낀다. 복종이라 함이 나 자신을 버리고 그것들을 쫓을 수 있는가 에 대한 기준점이라면 정확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여전히 나인채로 그것들을 원한다. 그렇게까지 금수의 영역으로 탈선하지 못한 상태이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럴 수 있나 라고 하는 말의 인간의 탈이라는 틀에 나는 아직 나를 잘 가둬놓고 있다. 그것이 내 정신을 가두는 육체의 본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생에서 나는 이 육체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최소한 인간의 참된 정의와 진리를 따르기로 했다. 내가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내 선택이 아닌것처럼 그 또한 내 의지로 선택한 일은 아니다. 때문에 그 율령에 따르기로 한 것이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다.


난 그 애가 힙합을 듣는 것을 보고 썩 흑인 음악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뿌리부터가 탈선과 저항을 이해할 수 없는 정서로 자라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애는 내가 생각한 이 사회의 기득권층이라 말할 수 있는 조건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이들의 자제였기 때문인데 그것은 완벽한 나의 착각이었다. 그 애가 줄곧 살아온 그 땅에서는 껍질이 노란 신기한 소수자의 존재로 살아왔을 것이라는 걸 완전히 망각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 좁은 곳에서 살고 있음을 그렇게 또 증명했다. 그게 아무리 자유의 여신상이 횃불을 든 자본과 문화가 꿀처럼 흐르는 미국 최대의 도시 뉴욕 한복판이어도 느끼지 못할 리 만무하다.


저주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 다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눈부신 회전목마 앞에서 여자 친구 손을 잡고 내 이별을 비웃던 사람은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되었지만 역시 훌륭한 재능 있는 인재들은 곧 잘 격이 맞는 다른 사람을 잘만 찾아서 또다시 손을 잡을 줄 아는 인간들이었다. 나는 그런 쪽으로는 좆도 재능이 없고 또 재능이 있었다 해도 소금물에 절여놓은 배추잎처럼 삼투압을 발현하면서 사랑을 흡수하지 못하고 죄다 게워내고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누가 들으면 맞아 걔라면 그럴 만 해라고 끄덕일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과 또 그의 애인과 열심히 손을 잡고 호들갑을 떨어도 많이들 축복해줄 구원받은 삶들이 나도 모르게 질투가 나서 한참을 우울해지기도 했다. 헤어지면 내가 같이 술을 마셔줄 사람들 그리고 미래의 애인과 사귀고 있을 나 자신 빼고 죄다 다 헤어졌으면 좋겠다는 말은 사실 농담보다는 진담에 가깝다.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이 오더라는 말을 찌질이처럼 발끈하면서 반박하는 것은 즐겁다.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모두 운이다. 나는 운이 더럽게 없는 편이다.  나는 노력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 많이 울었고 또 누구보다 많이 반성했다. 그 깊이도 모자르지 않았고 횟수도 모자르지 않았다. 내 결핍이 내 사랑에 해가 될까 봐 누구보다 노력했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많이 단단해지고 차분해지고 또 태연해졌다. 그럼에도 나는 사랑이 찾아오는 매 순간 좋은 사람이 되지 못했다. 네 원래 모습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을 만나 라는 말도 듣기 싫어하는 말들 중 하나다. 나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내 솔직한 모습으로 그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다. 절대로.


이별을 한번 겪을 때마다 수많은 심리학 책들을 읽으면서 올바른 방법으로 나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했고 또 자책으로 나를 망가뜨리지 않으려고 멍청하고 찌질 해 보이지 않기 위해 뻣뻣하게 뼈를 세우고 건조하게 웃어 보이는 한심한 짓도 하지 않았다.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한 솔직했고 또 사랑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내가 나쁜 놈들만 만나서 이 지경이 되었다는 원망의 논조가 절대 아니다. 내가 만난 모두가 훌륭하고 멋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사랑의 실패는 논리 정연한 이유로 정리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또한 나를 사랑하다가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것도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나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 많은 이별을 이겨내기도 했다. 이별은 지진이나 해일 같은 자연재해나 다름이 없다. 지구의 판이 이동해서 라는 피상적인 이유야 찾을 수 있겠지만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별이 이미 결정된 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저 떠내려간 가축들을 위해 나무판자를 내려주고 무너진 잔해들 속에 남은 마지막 생명을 구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잔해가 모두 정리된 깨끗한 내 영혼은 갈 곳이 없다. 차라리 미워할 사람이 남아있으면 좋겠노라고 요즘은 자주 내 생이 너무 시시하다는 생각을 한다. 겨우 스물 셋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앞으로 겪을 일들이 내가 겪은 일들과 다를 거라는 일말의 희망 또한 찾아 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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