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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Mar 12. 2021

봄과 같은 점심식사

핀란드 헬싱키 | 마리토리 


부모님과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핀란드 헬싱키로 가는 기차를 탔다. 국경에 가까워졌을 때 여권 검사를 했고, 우리의 여권엔 처음으로 기차모양의 스탬프가 찍혔다. 밖의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다른 나라에 도착했다는 게 기분이 묘했다. 헬싱키 중앙역에 도착했다. 아주 오래전 반나절 체류한 기억을 떠올리며 숙소에 가기 위해 트램에 올랐다. 아빠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도시가 정말 깨끗하고 좋구나. 트램도 편리하게 되어있고.”


헬싱키에서 보내는 2박 3일, 바닷가 옆 한적한 동네에 위치한 에어비앤비는 부모님 마음에 쏙 들었다. 집 안에 건식 사우나가 있었다. 갑작스러운 이상기온으로 추워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우리는 급히 패딩 조끼를 사서 입었다. 백야가 시작된 북유럽은 낮은 적당히 따뜻했고, 아침저녁은 쌀쌀했다. 하루 일과의 시작과 끝, 부모님은 건식 사우나를 즐기셨다. 아빠는 계속 집에만 있어도 좋다고 했다. 그러나, 꽃을 좋아하는 모녀는 이 곳에서 꼭 가고 싶은 데가 있었다. 핀란드 브랜드 ‘마리메꼬 본사/아울렛’이다. 나는 아빠에게도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기로 결정했다. 이번 여행의 가이드는 나니까.


“아빠, 솔직히 말하면 오늘 일정은 아빠가 재미없을 수도 있어요.”

“응. 그럼 난 집에 있을까?”

“헬싱키에만 있는 거고, 여기에서만 해볼 수 있는 체험이에요.”

“좋아, 가이드님만 따라갈게.”


시내에서 20분 지하철을 타고 다시 지도를 열어 십여분을 걸었다. 한적한 마을을 걷고 걸었더니 밝은 회색 건물이 나왔다. 핀란드를 대표하는 브랜드 중 하나인 <마리메꼬 Marimekko> 본사였다. 이 곳엔 아울렛과 함께 <마리토리>라는 사내식당이 있다. 마리메꼬 직원들을 위한 곳이지만, 일반인들도 돈을 내고 뷔페식의 자유로운 식사가 가능하다. 모든 식기가 마리메꼬 제품으로 준비된 곳, 엄마와 나는 예쁜 그릇들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생동감 있고 화려한 패턴, 꽃무늬의 접시에 원하는 걸 골라 담는다.


“그릇이 너무 예쁘다.”

“그렇지, 엄마- 그릇 꽤 비싼데, 여기선 사지 않아도 원하는 그릇에 마음껏 먹을 수 있어요!”


트레이를 들고 정갈하게 준비된 음식들을 골고루 그릇에 담았다. 밝고 따뜻한 색깔의 꽃, 반복되는 경쾌한 물방울이 그려진 접시에 담긴 요리를 보고 있으니, 맛보기 전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다양한 종류를 원하는 대로 담을 수 있어서인지 아빠도 신나 보였다. 수프와 빵, 샐러드, 함박스테이크를 듬뿍 담아왔다. 커피도 두 번이나 드셨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걱정이 많았다. 아빠, 엄마, 나 셋이 여행을 해본 건 처음이라서, 하지만 부모님은 전적으로 내가 짠 일정에 잘 따라주셨다. 단체 패키지가 아닌 느긋하게, 원하는 데서 먹고, 쉬고, 여유로울 수 있어서 좋다며 행복해하는 부모님을 보니, 내 마음도 즐거웠다. 봄과 같은 접시에 담긴 음식을 맛보며, 우리의 마음에도 봄이 찾아왔다. 창밖으로 비친 따뜻한 햇살은 아빠의 몸과 마음을 사르르 녹였고, 이후 <마리메꼬 아울렛>에서 본인의 카드를 맡겼다. 세 자매의 앞치마, 엄마와 나는 새 원피스가 한 벌 씩 생겼다. 여름이 오면 아빠가 사준 까만 물방울이 그려진 그 원피스를 입고 다시 한번 그곳에 가고 싶다.


Helsinki, Finland _ 마리메꼬 사내식당 <Marit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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