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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Oct 30. 2022

비오는 날의 추억

일본 도쿄 다이칸야마 | 와플

오늘처럼 보슬비가 내리던 날, 엄마와 나는 도쿄 다이칸야마의 거리를 30분째 헤매고 있었다. 


"이상하네. 지도상으론 여기가 맞는데."


구글맵이 없던 시절이었다. 여행책자의 지도에 나온 카페, 사실은 한 가수가 극찬한 와플집을 찾고 있다. 고급 주택들이 많은 이 동네는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신주쿠, 시부야와는 달랐다. 한적하고 고요한 느낌, 오밀 조밀 붙어있는 집들 사이 카페는 어디에 있는 걸까. 우산을 어깨에 끼고 지도를 다시 뚫어져라 봤다. 


"천천히 찾아봐. 엄마는 괜찮아."

"응. 잠깐 저기 가게에 가서 물어보고 올게요."


지도를 들고 작은 옷가게로 들어갔다. 아는 일본어는 단 한마디 뿐이었다. 


"스미마셍... " 


친절하게 날 반긴 옷가게 주인을 향해, 나는 멋적은듯 지도에 있는 카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녀는 일본어로 답변을 하다가, 내가 못 알아듣는 걸 알고 밖으로 함께 나와 손가락으로 오른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계단을 오르는 시늉을 했다. 친절한 설명이었다. 


"엄마, 저 골목길 사이로 올라가야 나오나봐요." 


이미 지나온 길을 다시 돌아 작은 골목 앞에 섰다. 작은 언덕이 보였다. 엄마에게 기다리라고 한 후, 먼저 계단을 오르니 가정집을 개조한 듯한 카페가 보였다. 와플스 라는 간판도 확인했다. 후다닥 계단을 내려가 엄마와 함께 다시 천천히 언덕을 올랐다. 


쓰고 있던 우산을 접고 문 옆의 함에 넣었다. 점원의 안내를 받아 창밖이 보이는 둥근 탁자에 앉았다. 밖의 풍경이라 해도 가게에서 관리하는 작은 꽃 화분이었다. 보슬 보슬 내리는 빗방울이 꽃잎들을 툭툭 치고 있었다. 주문한 기본 와플과 따뜻한 커피가 두 잔 나왔다. 


"어머, 사각형 모양의 예쁜 빵이네. "

"응, 엄마 여기 와플이 정말 맛있대요. 어떤 가수가 극찬했어.” 


나이프를 들어 네모난 와플을 쓰윽 썰었다. 위에 얹어있던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한 쪽으로 치우고, 와플 한 조각과 아이스크림을 함께 입에 넣었다. 30분을 헤맬 가치가 있는 맛이었다. 맞은 편에 앉은 엄마가 너무 좋아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날의 경험으로 나 또한 하나를 얻었다. 엄마가 나를 향한 믿음. 엄마에게 나는 그 나라 말을 몰라도 잘 살아남을 수 있는, 처음 가는 길이어도 찾아낼 수 있는 대단한 아이가 되었다고 할까. 


이후 일본어를 배우고, 일 년간 일본워킹홀리데이를 간다고 말했을 때, 위험할 수도 있는 지역으로 출장을 떠날 때, 결혼 후 해외에 살게 되었을 때도 엄마는 종종 십 여년 전 그 이야길 꺼내며 ‘그때 대단했지. 말도 못하는데 가고 싶던 그 카페를 결국 찾았잖니.’ 라며, 내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자신감의 씨앗을 톡톡 건드리고, 또 한번의 물을 주었다.



Daikanyama, Tokyo _ 비오는 날의 추억, 엄마와 함께 먹은 와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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