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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Oct 28. 2022

나를 위한 피카

스웨덴 | 셈라

알란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철도로 숙소가 있는 시내의 거리로 나오니 잿빛의 아스팔드 바닥이 반갑다. 모스크바의 겨울은 눈으로 덮여 맨바닥의 땅을 밟는 게 오랜만이고 낯설었다. 기분이 좋았다. 흐리지 않은 파란 하늘을 보며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렸다.     

 

‘출장 중인 그에겐 왠지 미안하지만, 역시 오길 잘했어.’      


결혼 후 처음 맞는 생일이었다. 갑작스레 해외 출장을 가게 된 그는 미안한 표정으로 스웨덴 여행 티켓을 건넸다. 처음엔 혼자 하는 여행은 재미없을 거 같다며 안 가겠다고 했었지만, 그 마음은 스웨덴에 도착하자 눈 녹듯 사라졌다. 생일에 홀로 두어 여전히 마음을 쓰고 있을 그에게 고맙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카페마다 ‘FIKA’라고 쓰인 입간판들이 보인다. FIKA 피카는 스웨덴어로 ‘커피 브레이크’, ‘티타임’이라는 뜻이다. 바쁜 일상에서의 커피 한 잔의 여유, ‘피카’ 문화는 스웨덴의 당연한 일상이다. 하루에 한두 번, 직장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로 정해져 있다고 한다. 시차로 인하여 한 시간이 더 늘어난 나의 생일, 25시간의 특별한 날이다. 새로운 한 해를 앞둔 나를 위한 피카를 선물해야지. 길을 걷다가 눈에 띄는 카페로 들어갔다.      


“맛있는 디저트를 추천해줄 수 있을까요?”

“셈라(Semla) 먹어 봤어요?”

“스웨덴은 처음이에요.”

“겨울에 맛보는 전통 디저트예요.”      


친절한 직원의 추천으로 커피와 셈라를 주문했다. 처음 본 셈라는 뚱뚱한 크림빵처럼 생겼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40일 동안 금식을 하는 사순절의 시작 하루 전 ‘재의 화요일’에 배가 든든하도록 셈라를 먹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칼로리가 높은가 보다. 동그란 빵을 잘라서 빗살 무늬로 채운 생크림 위로 살짝 덮은 빵의 윗부분이 겨울의 베레모처럼 보였다. 귀여운 이걸 어떻게 먹지? 베레모처럼 위를 덮은 빵을 생크림에 푹 찍어 맛본다. 낯선 곳에서 홀로 보내는 생일의 피카, 수첩을 열어 올 해의 감사한 일을 하나씩 적어보았다. 하나 둘 적다 보니 슬프고 힘든 일보다, 기쁘고 감사한 일로 마음이 든든해진다. 셈라. 새로운 나의 한 해도 잘 부탁해.


Sweden _ 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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