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 꽃 커피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 시국. 로마에 도착한 다음 날 남편과 함께 바티칸 투어를 신청했다. 여의도 면적 1/6으로 실제 인구는 500명 안팎에 불과한 독립국, 바티칸을 방문하기 전 넷플릭스로 영화 두 교황을 봤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그 직전 자진 사임을 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였다. 실제 모델과 흡사한 배우들의 열연도 인상적이었지만, 출신지도 성향도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받아들이는 과정이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다.
동이 트는 새벽, 바티칸의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많은 이들이 성벽을 둘러싸며 긴 줄을 섰다. 가이드를 따라 걸음을 내딛는 바티칸 투어의 시작, 작은 나라 안에서 다양한 언어가 들린다. 어렸을 때 미술책에서 본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천장화, 그중 하나는 익숙한 천지창조 그림이었다. 넋을 놓고 푹 빠져 보고 노니 고개가 뻐근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베드로 대성당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조각상, 피에타를 만났다.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무릎에 안고 있는 모습인데, 이는 위(하늘)에서 보기에 완벽한 형태로 조각되었다고 한다. 여기엔 미켈란젤로의 유일한 서명이 남아있다. 그리고 하나의 이야기가 숨어있다고 가이드는 말했다.
“피에타가 대중에게 처음 소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를 다른 조각가가 만들었다고 했죠. 이에 화가 난 미켈란젤로가 밤중에 몰래 성당으로 와서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고 해요. 그리고 다시 돌아가는 길에 올려다본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보며 반성했다고 합니다. ‘세상을 이토록 아름답게 만든 하나님도 당신의 작품 어디에도 자신의 이름을 새기지 않았는데, 나는 왜 그랬을까.’ 라고요. 그 후 다시는 자신의 작품에 서명을 넣지 않았다고 해요.”
바티칸 투어가 끝날 때 들은 미켈란젤로의 이야기에 마음이 뭉클했다. 매일 자연스레 해가 뜨고, 날이 밝고, 다시 어두워지고, 밤하늘의 달과 별이 반짝이는 일상. 길가의 꽃과 들풀은 누가 돌보는 이가 없어 보여도 때에 따라 내리는 비와 바람, 햇살의 돌봄을 받는다. 만든 이의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자연이라는 완벽한 작품 속에서 나는 살아가고 있다.
남편과 함께 바티칸 근처 1919년부터 커피를 전했다는 오랜 카페를 찾았다. 유명한 건 초콜릿 시럽을 바른 커피라고 했다. 두 잔을 시키고 계산 후 앉아 있으니 편안한 복장으로 카페를 찾는 이들이 눈에 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이들을 보며 동네의 사랑방 같은 곳일까 생각했다. 그 사이 우리 앞에 주문한 커피가 놓였다. 작은 찻잔 안쪽을 바른 초콜릿 시럽이 보였다. 마치 여섯 장의 꽃잎이 감싼 것처럼 속을 채운 에스프레소는 많이 쓰지 않았다. 위에서 보면 알 수 있는 커피 꽃, 활짝 핀 커피 꽃을 보며 가이드가 사진으로 보여준 위에서 본 피에타 속 예수님의 얼굴을 떠올렸다. 내가 볼 수 있는 한계, 나의 시선 속 세상은 어찌나 좁은지. 정말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을지도 몰라. 위에서 내려보면 우리는 얼마나 작은 하나의 존재인가.
* Sciascia Caffè 1919
Via Fabio Massimo, n.80/a, 00192 Roma RM, 이탈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