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가사리 Feb 16. 2020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오늘 아침 새로운 엽산 통을 열었다. 지난가을 한국에 들르면서, 처음으로 공항에서 엽산을 샀다. 영양제를 꼬박 챙겨 먹는 편도 아니고, 일조량이 적은 이 곳에서 생존을 위해 비타민 D를 간신히 먹는 나였다. 결혼 한 지 1년 반, 우리 부부는 함께 엽산을 먹기로 했다. 처음으로 열어본 통 안에는 작은 알갱이가 꽤 많이 들어 있었다. 모두 100알, 매일 혼자 먹는다면 3개월은 넉넉한 양이었다. 일주일 치 약통에 종합영양제, 엽산, 비타민d를 담았지만 습관이 안된 부부에게 매일 꾸준함이란 어려운 일이다. 처음 샀던 엽산이 4개월이 지나서야 동이 났다.  그리고 어제, 나는 사진을 보여주며 이 곳의 약국에서 두 번째 엽산을 샀다.

 

© laurynasm, 출처 Unsplash


중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은 대부분 20대 초중반에 결혼을 했다. 처음으로 엄마가 된 친구를 만나러 조리원에 갔을 때 그 모습이 생생하다. 마침 친구의 생일과 겹쳐 케이크를 들고 갔는데, 아이를 안은 내 친구의 모습이 참 낯설었다. 그때 그 아가는 지금 의젓한 초등학생이 되어 있다. 육아로 바빠진 친구들을 예전처럼 자주 만나기는 어려웠다. 주로 반차를 내서 친구의 집으로 찾아가거나, 갑작스러운 변수로 인해 취소되는 일도 잦았다. 자연스레 직장에서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또  새로운 관계를 쌓았다.

결혼의 유무, 결혼을 했다면 아이의 유무, 아이가 있다면 형제의 유무, 형제가 있다면.... 그 뒤는 사실 잘 모르겠다. 결혼을 하고 나면, 이제 시작이라고 친구는 말했었다. 흔히 명절이면 자주 듣는 질문에는 이 모든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질문하지 않아도, 그 시점에 있는 이라면 꾸욱 막힌 멍울이 목 안에 있음에도 말이다. 친구의 말처럼 결혼을 하고 나니, 아이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이 사회가 만들어낸 성실한 학습자처럼 다른 삶의 모습을 생각하지 않았다.


© jessicarockowitz, 출처 Unsplash


“언제까지 공부하실 거예요?” 
“1년 정도 더 하려고요. 대학원도 가고 싶은데 아이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
“아, 아이 생각이 있으시구나. 저희는 결혼할 때 아이를 안 가지기로 했어요.”

어학교의 세미나 수업에서 만난 그분은 공무원으로 이 곳에 연수를 왔다. 수업시간에 이야기를 하다가, 같이 식사를 한 끼 하게 되었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결혼 생각이 없었지만,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한 조건이 맞아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게 되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의지적으로 그런 삶을 택한 이를 만난 건 사실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내 주변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있거나, 또는 아이를 간절히 원하지만 주어지지 않아 힘든 이들의 모습만 보았으니까. 흔들림 없는 그녀의 단단한 목소리가 신선했다고 해야 할까. 계획된 변수가 없이 자신의 다음 스텝을 계획할 수 있는 결정이 부러웠다고 할까.


© katieemslie, 출처 Unsplash


결혼 한지 1년 8개월, 나는 여전히 내 마음을 모르겠다. 어린 시절 결혼과 연결된 내 모습에는 자연스레 엄마인 나도 그려져 있지만, 여전히 많은 것이 두렵고 불안하다. 먼저 친절하지 않은 이 곳의 산부인과, 의료시설이 무섭고, 임신과 출산을 감당하기에 이제 한계점에 가까워진 신체적인 나이도 그렇다. 혼자 이 곳에서 아이를 돌보는 것도, 일어나지 않은 수많은 변수들을 마음으로 셈하면 답이 없다. 아이를 간절히 원하던 친구가 했던 “처음부터 없는 것과,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것은 다른 거야”라는 말이 생각이 났다. 어느 날 밤에는 내가 엄마가 되고 싶어도, 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슬퍼졌다. 훌쩍이는 나를 남편이 토닥인다. “아이가 없어도, 있어도 괜찮아. 나에겐 당신이 가장 1 순위야. “ 엄마가 아닌 삶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다시 또 새로운 꿈을,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건가? 정말 엄마가 되고 싶은가? 나는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좋은 기운을 모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