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가사리 Jul 15. 2020

어떤 세계로의 초대

반려동물과의 짧지만 특별한 동거


어린 시절 잠시 시골 할머니 집에서 학교를 다녔다.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은 거리 곳곳을 활보하는 개였다. 동네에는 '개조심’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는 집이 꽤 많았는데, 자주 열려있던 이웃집의 문, 그 틈 사이로 나와 눈이 마주친 개는 당장이라도 뛰쳐나올 듯 짖었다.



하루는 그 소리가 무서워서 골목길에 들어서자마자 뛰었는데, 그 날따라 목줄이 풀려버린 개가 날 향해 달려들었다. 빗자루를 든 할머니가 뛰쳐나왔고 나는 물리기 직전에 그 상황에서 풀려났다. 그때 느꼈던 공포가 내 몸 어딘가에 기록되어 있는지, 어른이 된 지금도 등 뒤로 그르렁그르렁 하는 소리가 들리면 온 몸이 쭈뼛쭈뼛 긴장이 된다.

친구는 말했다. “네가 무서워하는 걸, 쟤가 아는 거야. 당당하게 아무렇지 않게 걸어. 관심 없다는 듯이 말이야." 그게 쉬운 일인가! 보이는데 어찌 안 보이는 척하며, 귀가 있는데 어찌 들리지 않는 척하라는 거야. 친구의 조언을 따라 나는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사실은 잔뜩 경직된 목으로) 엉거주춤 간신히 발걸음을 뗐다. 내가 기억하는 개에 대한 최초의 경험은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세계의 문을 닫아 버렸다.




“언니, 우리 안나수이를 잘 부탁해.”

갑작스러운 귀국으로 동생집에 홀로 있게 되면서 고양이 두 마리와의 동거를 시작했다. 1년 전, 동생 부부에 의해 입양된 고양이 형제의 이름은 (부부의 성을 따른) 이 안나아 안 수이. 개와 달리 고양이에 대한 경험은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귀여운 이미지뿐, 고양이에 대한 지식은 전무했다. 우리 잘 지낼 수 있을까.


처음엔 무관심했던 고양이 조카들

아침에 눈을 뜨면 모래 속 고양이의 똥을 치운다. (언제 이렇게 많이....? ) 아침과 저녁 사료를 주고, 마실 물을 수시로 갈아준다. (언제 이렇게 다.... 먹었니?) 장난감을 꺼내서 놀아준다. 그리고 청소기를 돌린다. 처음엔 침대와 소파 아래 숨어있던 녀석들은 내 곁에 다가와 냐-옹 하며 다리에 몸을 비비고, 자신의 발을 내 손 등 위로 턱 - 하고 올렸다. 침대로 가면 쪼르르 따라 들어와 내 발 밑에 누웠다. 목과 배를 긁어주면 그르렁그르렁 소리로 기분 좋음을 표현했다. 따뜻하고 작은 생명체의 존재가 주는 평안함, 말로 표현하기 힘든 작은 행복감이 마음 깊은 곳에서 잔잔하게 차올랐다.


호기심 많은 안나, 발을 올리는 걸 좋아하는 편
배를 긁어주면 그르렁, 옆에서 자는 수이

고양이는 생각보다 잠을 많이 잤다. 고양이에 대한 책을 보니 하루 평균 16-17시간을 잔다고 한다. 밥은 조금씩 자주 먹었다. 밥을 줘도 다 먹지 않고 남겨서 혹시 주인이 바뀌어 스트레스를 받나 걱정했는데, 다음 날이면 그 걱정이 무색하게 싹- 비워진 그릇을 볼 수 있었다. 발톱은 숨겨져 있고, 쉽게 할퀴지 않는다. 적당히 독립적이며, 적당히 관심을 요구하는, 밀당의 고수! 적당함을 아는 고양이의 매력에 나는 점점 빠져들었다. 나의 돌봄이 필요한 존재가 곁에 있다는 것은,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으며, 모스크바의 햇빛 없는 계절이 준 습관성 불면은 스르르 잠드는 고양이 곁에서 숙면의 밤이 이어졌다.

꼭 공부하는 내 옆에서 자는 녀석들 zzz


고양이와 함께 보낸 14일, 잠시 열렸던 반려묘의 세계에서 나는 전보다 많은 이야기들을 알게 됐다. 영원히 몰랐고 관심 조차 갖지 않았을 것들. 이처럼 이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어떤 동물, 식물, 사물의 세계와 이야기들이 얼마나 더 많을까. 이제야 그 정확한 자세와 뜻을 알게 된 ‘고양이 자세’ 스트레칭을 하며 또 다른 세계 속으로 초대받을 날을 기다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