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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Jul 30. 2020

나의 코로나 탈출기

모스크바를 떠나던 날


영국, 터키, 탄자니아. 아무 연관이 없어 보이는 3개의 나라, 오는 8월 1일부터 러시아와의 하늘길이 다시 열린 나라들이다. 코로나로 인해 러시아는 지난 3월 27일부터 모든 국제선 항공편 운항을 중단했었다.


“언니, 기사 봤어요? 내일부터 하늘길 닫힌다는데?”
“갑자기..? 진짜?!”


© NilsW, 출처 Pixabay


3월 26일 목요일 아침 10시,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위해 접속하니 채팅창으로 유학생 J가 말했다. 푸틴의 말 한마디가 곧 법이 되는 나라, 25일 대국민담화로 투표일을 연기하더니 하루가 지나 총리의 발표가 있었다. 우리에게 허락된 단 하루, 24시간 내에 러시아 하늘을 벗어나야 한다. 이미 러시아 항공의 모스크바-인천 직항 티켓은 구할 수 없었다.  

“언니, 일단 나리타까지 직항으로 갈까요? 모스크바-나리타, 나리타-인천”
“잠깐. 지금 한국인이 일본 입국이 안될 텐데... 방콕 경유할까. 엇, 여긴 코로나 검사결과지가 필요하대.”
“여기서 검사 결과 하루 만에 나올 수가 없겠죠.”
“러시아-블라디보스토크-인천. 어, 근데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면 다음날로 넘어가네.”
“일단 오늘 안에 러시아 하늘 밖으로 나가야 해요.”


© dead____artist, 출처 Unsplash


러시아는 넓은 나라였다. 한 대륙 안에 7개의 시간대가 있는 나라, 수도 모스크바에서 출발하여 한국으로 가는 길엔 러시아 다른 지역을 경유하는 티켓이 많았다. 하루 안에 러시아 하늘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일단 벗어나자. 코로나로 인해 수시로 바뀌는 정책 때문에, 비자 없이, 건강검진서 없이 입국이 허가된 나라를 찾기 시작했다. 길은 단 하나뿐이었다.   

“카타르뿐이야. 모스크바-카타르-인천”
“언니, 카타르가 대체 어디예요?”

사우디아라비아 반도, 석유가 나오는 카타르를 경유한 건 모두 아프리카 르완다 출장길에서였다. 인천에서 카타르항공을 타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부부들 사이에 팀장님과 나란히 앉았지. 진하고 뚜렷한 눈매를 가진 이들이 많았던 곳, 향수를 파는 매장은 어찌나 많았던지- 오후 5시 나는 카타르 도하공항 경유 인천행 티켓을 샀다. 편도 300만 원이었다. 당장 내일 하늘길을 닫는다는 정부의 발표에 그 누구도 촛불을 들고 붉은 광장으로 나가지 않을 나라이기에, 그 어떤 대안도 정책이 바뀔 희망도 없었다.

늦어도 저녁 8시에는 공항으로 출발해야 했기에 주어진 시간은 3시간뿐이었다. 유학생 J와 함께 공항에 가기로 했다. 그 와중에 이틀 전 냉장고 청소를 한 것, 전 날 겨울옷을 싹 정리해둔 과거의 나를 잠시 대견해했다. 캐리어를 꺼내 부랴 부랴 짐을 챙기고, 샤워를 하고, 마스크와 장갑, 손소독제까지 야무지게 챙겼다. 집에 온 J의 큰 캐리어는 우리 집 베란다에 둔 채, 우리는 공항으로 향했다.


© MikesPhotos, 출처 Pixabay


공항에서 카타르 경유 한국행 표를 사야 했던 J는 나보다 더 비싼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 항공사 직원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의 코로나 확진자 수는 모스크바보다 훨씬 더 많았다.

“한국, 위험하잖아.  왜 돌아가려고 해?”
“내일부터 하늘길이 닫히니까 오늘 가야 해.”
“계속 운행할 수도 있어. 확실하지 않지만-“
“한국이 더 안전해.”

3월 26일 밤 23시 45분, 하늘길이 닫히기 15분 전 우리는 러시아 영공을 벗어났다. 5시간  후 카타르 도하 공항에 도착했고, 22시간을 기다렸다가 유럽 각국에서 탈출한 다른 한국인들과 함께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모스크바에서 인천까지 직항은 8시간 30분이 걸린다. 저녁 비행이라 하룻밤을 비행기에서 보내면 아침에 도착하지만, 우리는 떠난 지 꼬박 이틀이 되어서야  대부분 저녁 비행기라 하룻밤을 비행기에서 보내면 아침에 도착하는 인천공항이지만. 우리는 떠난 지 이틀이 되어서야 한국에 왔다.




“늦어도 9월엔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한국이 헝가리와 함께 2차로 논의 중인 나라야.”
“아, 그래? 꼭 그때엔 돌아가면 좋겠다. “
“벌써 한 계절이 지나버렸네.”  
“돌아가면 이 시간이 그리워지겠지?
 그래도 납작 복숭아가 없어지기 전에 모스크바에 돌아가면 좋겠다.”

갑작스러운 서울살이 어느덧 4개월 차,  퇴근길의 남편을 만나 집으로 가는 언덕길을 오른다. 어느 날은 갈아 만든 배 맛의 탱크보이 쮸쮸바를 고르고, 또 어느 날은 새로운 맛의 스크류바를 손에 쥔다. 모스크바 우리 집 베란다에 남겨진 J의 캐리어처럼, 내 마음의 반쪽도 여전히 그곳에 있다. 시원하게 뚫린 길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 화가 난 듯 입을 꾹 다문 사람들, 자꾸 길을 물어보는 버스정류장의 할머니, 모든 게 느릿느릿 흘러가던 곳, 급하게 탈출하느라 몸만 간신히 빠져나왔다. 다시 돌아가면, 청개구리처럼 또 이 곳의 일상을 그리워하겠지. 언젠가 그리워질 순간들을 차곡차곡 반쪽의 마음에 채운다.


다시 그리워질 한국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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