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우리 동네
“어디에 살아요?”
“저는 남쪽이에요. 0000 역이라고 아세요?”
“잠시만요.”
휴대폰의 메트로 앱을 열어 위치를 확인한다. 최근에 새로 생긴 노선으로 우리 집이랑 멀지 않았다. 지난 학기 한국어 수업을 들었던 파티마는 이란에서 왔다. 공무원으로 일하던 그녀는 대사관에서 일하는 남편을 따라 업무 휴직 후 모스크바로 왔다. 3년이라는 기간, 끝이 있는 모스크바의 생활에서 그녀는 러시아어 대신 테헤란에서부터 배우던 한국어를 택했다. 교실 밖에서 따로 만나 파티마와 커피를 마신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동네를 확인하고 웃었다. 아이의 어린이집 앞에 있는 작은 쇼핑몰의 슈퍼마켓, 나도 종종 가는 그곳을 그녀도 자주 간다고 했다. 어쩌면 우리는 한 번쯤 서로 마주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모스크바에 살면서 어디에 사는지 묻는 질문에 “남쪽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이 이제 익숙해졌다. 서울이었다면 ‘00구 00동’이라고 했겠지만 이런 대화를 나누는 우리가 이곳에서 외국인이며, 서울 면적보다 4배 정도 큰 도시 모스크바의 지리가 여전히 낯설고, 가보지 않은 생소한 동네, 지하철역이 많다는 것이다. 시내의 명소 (동물원, 붉은 광장, 모스크바 시티...) 근처가 아니고 지하철역이 아닌 이상 우리는 서로의 동네를 동서남북의 방향으로 답한다. 러시아인 친구들의 경우 지하철역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그때마다 나는 메트로 앱을 열어 동네를 확인한다.
남편을 따라 러시아 모스크바에 산 지 올 해로 7년에 접어든다. 중간에 코로나로 인하여 서울에 머물렀던 2년을 제외하면, 5년 내내 나의 동네는 모스크바 ‘남쪽’이다. 아마 우리가 한국에서 결혼하고 살림을 꾸렸더라면 서로의 직장이 위치한 출퇴근 거리, 주변의 편의시설, 경제상황, 미래의 자녀를 고려한 다양한 조건을 고민하며 동네를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과 함께 이곳의 생활을 시작한 내게 남편이 지냈던 동네가 나의 동네가 되었다. 무엇보다 그의 회사가 가깝고, 경비원이 있는 아파트, 집 옆의 공원과 작은 쇼핑몰이 있어서 편리했다.
배 속에 새로운 생명이 찾아온 후, 나는 내게 익숙한 이 동네 주변으로 집을 알아보았다. 같은 아파트 단지엔 적당한 집이 없었고, 우리는 한 정거장 더 남쪽으로 내려온 아파트를 찾았다. 두 가지 노선의 지하철 역이 도보와 버스로 갈 수 있어 편리하고, 집 앞엔 작은 공원, 아파트 단지 안엔 작은 클리닉도 있다. 아이를 품은 여름 내내, 집 앞의 작은 공원을 거닐었다. 밤이 긴 여름이면 산책을 한 후 남편과 동네 슈퍼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었다. 주말이면 공원을 통과하여 아파트 단지를 지나, 예전에 살던 집 옆의 큰 공원을 산책했다. 둘이 지내던 아파트 단지를 보며 추억을 떠올리고, 남편이 집에 모아둔 동전들을 털어 장을 보곤 했던 슈퍼를 지났다. 모스크바를 방문했던 부모님과 함께 산책했던 공원에는 여전히 오리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남쪽 동네에서의 추억이 하나 둘 쌓인다.
아이가 태어난 후 나는 이 동네에서 새로운 추억을 하나 둘 쌓아간다. 다시 한번 남쪽 동네에서의 새로운 삶을 덧칠한다. 30개월 인생의 26개월을 이곳에서 보내고 있는 아이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잠이 들었다. 초여름, 공원의 오솔길에서 동네 친구 미르와 함께 무당벌레를 발견하고 까르르 웃었다. 해 질 녘엔 연못의 오리들을 손으로 가리키기며 “꽥꽥” 소리를 냈다. 아이는 햇볕 아래 모래 놀이를 하던 놀이터, 의자에 앉아 블루베리를 서로의 입에 넣어주던 순간들, 늘 다정하게 우리를 대해주는 클리닉의 루드밀라 선생님과 매일 등하원길에 작은 비스킷을 건네는 레나 아주머니의 포옹을 기억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이 집에서, 이 동네에서 얼마나 머물게 될지는 모르겠다. 집주인에게 월세를 내며 지내는 한국에서 온 이방인, 언젠가 이 집을 떠나고 이 동네를 떠날 일이 올 것이다. 하지만 계속 남쪽에 머물게 되지 않을까. 왠지 남쪽이라는 방향만으로도 따스한, 햇살이 오래 머무는 이 동네에 머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