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봄맞이 축제, 마슬레니짜
겨울이 긴 러시아엔 봄을 맞는 특별한 기간이 있다. 마슬레니짜(Масленица), 일주일 간의 봄맞이 축제, 러시아 정교회의 달력에 따라 매해 부활절을 기준으로 시작 날짜가 바뀐다. 2021년의 마슬레니짜는 3월 8일부터 14일까지로 이 축제가 끝난 후 40일의 사순절이 시작되고, 부활절이 찾아온다.
마슬레니짜를 앞둔 슈퍼마켓엔 임시 매대가 열렸다. 메밀가루, 밀가루, 베이킹 소다, 해바라기씨 오일, 꿀, 우유, 버터가 한가득이다. 러시아식 팬케이크 블린을 위한 재료들이었다.
“저 여자 아이 풍선은 뭐지?”
“마슬레니짜라고 불러. 지푸라기 인형으로 만드는데, 마지막 날 태우는 거야. 겨울아 잘 가- 인사하는 거지.”
러시아의 봄맞이 축제, 마슬레니짜에 대한 이야기는 어학교 수업시간에 더 들을 수 있었다. 선생님은 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 (시베리아의 이발사, 1998)> 를 틀었다. 설원의 러시아가 아름답게 묘사된 영화엔 마슬레니짜 축제의 현장도 나온다. 눈이 쌓인 광장에 모인 이들은 블린니를 먹고, 남성들은 패를 나눠 주먹다짐을 한다. 두 패로 나뉘는 이들은 겨울과 봄을 상징한다. 결과는 늘 봄이 이기는 거지만, 승패의 의미보다 긴 겨울 내 움츠려있던 몸을 움직이는, 러시아 남성의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다. 그런데 많은 음식 중에 왜 블린니일까?
“이 동그란 모양이 태양을 닮아서 그래. 따뜻한 봄을 맞이하는 거지”
카페에서 만난 러시아인 친구가 접혀있던 블린니를 펼쳤다. 평소에도 즐겨먹지만, 마슬레니짜 기간의 카페는 블린니 특별 메뉴판을 따로 둔다. 익숙한 도톰한 팬케이크와 달리, 크레페에 더 가까운 블린니. 러시아인들은 블린니에 스메타나(러시아식 샤워크림), 캐비어, 잼을 곁들인다. ‘블린니가 없으면 마슬레니짜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제대로 봄을 맞기 위해, 블린니 만드는 걸 배워보고 싶었다. 마침 친구가 기획한 요리수업에 참석했다. 수염이 덥수룩한 러시아인 요리사, 올렉이 시연을 했다.
“블린니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아요. 서두르지 않으면 됩니다.”
가열된 프라이팬에 국자로 반죽을 떠서 골고루 펼쳤다. 마치 한국의 부침개를 만드는 것처럼, 좋아. 저건 할 수 있겠어. 뒤집는 게 어렵지. 그는 뒤집개 대신 얇고 긴 나무 꼬지를 들었다.
“가장자리부터 천천히 프라이팬에서 떼어 내세요. 그리고 뒤집으면 됩니다. 버터도 적당히 넣어주고요.”
마슬레니짜의 어원이 마슬로(버터)라고 하더니, 블린니엔 버터가 듬뿍 들어간다. 얇게 구워진 블린니 한 장을 접시에 올리고, 그 위에 작은 버터를, 또 블린니 한 장, 작은 버터를 올린다. 온기가 있는 얇은 블린니는 서로 붙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두터운 패딩을 벗지 못했지만, 눈 앞엔 따뜻한 태양을 닮은 블린니가 봄 인사를 건넸다. 햇살이 없는 하루, 홀로 멈춰진 시계처럼 느껴진 나날들, 울적했던 길고 긴 겨울이 떠나려 한다. 왠지 아쉬웠다. 함께 울던 친구가 곁을 떠나는 것처럼, 하지만 가장 추운 겨울은 이전보다 더 따뜻한 봄을 나에게 데려오겠지. 아직 온기가 남은 블린니를 입에 넣으며, 힘들었던 나의 겨울과 인사를 나눈다.
“잘 가- 겨울. 다음엔 더 친하게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