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나무, 베료자
러시아 달력에서 가장 긴 연휴, 새해와 러시아 성탄절(1/7)이 있는 첫 주는 잠시 여행을 떠난다. 눈의 나라가 아닌 햇살이 있는 겨울로, 이탈리아에서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 하늘 높이 뻗은 자작나무가 우리를 반긴다.
“이제 진짜 러시아에 왔네. 4시간 전과 다른 풍경이야.”
“벨라야 베료자(하얀 자작나무). 예쁘다. 그렇지?”
대화를 듣던 택시기사가 눈치를 채더니, 우리에게 어디서 왔는지 묻고선 자작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에세닌의 시 알고 있나요? 하얀 자작나무. 내 차운 밖에 눈으로 덮여 있네. 은 빛으로...(중략) 러시아인들은 모두 알고 있는 시예요. 학교에서 배웠죠. 자작나무 음료도 있는데, 한번 마셔봐요. 건강에 좋답니다.”
말이 없는 러시아인 택시기사가 시를 읊게 하는 힘. 베료자(자작나무). 러시아인들이 사랑하는 나무다.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자작나무 숲, 하얀 눈이 내린 설경 속 하늘 높이 곧게 뻗은 하얀 줄기의 나무는 러시아의 시, 노래, 그림에 자주 등장한다. 한국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이 나무를 모스크바에서는 집 가까운 공원에서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러시아인의 삶과 함께 하는 나무. 그들은 자작나무가 사람을 보호하는 ‘신의 선물’이라 믿었고, 집 주위에 꼭 자작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베료자(자작나무)의 어원은 ‘베레취-보호하다’ 에요. 러시아 전역에 100종류가 넘죠. 뿌리, 잎사귀, 껍질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러시아인에게 중요한 나무랍니다. 차가버섯은 이 나무에 붙어서 자라요.”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어린 시절 읽었던 그림책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생각났다. 자작나무의 껍질은 기름이 있어 오랫동안 썩지 않고, 얇게 벗겨져서 예전엔 종이를 대신했다. 자작나무는 가지를 내어주어, 누군가의 마음을 전하는 편지가 되기도 했고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스케치북이 되지 않았을까. 불이 잘 붙는 가지는 불 쏘시개가 되어, 산 길에 고립된 어떤 이에게 온기를 전하기도 했을 것이다. 평균적으로 100년 이상 살지만, 어떤 자작나무는 400년 넘게 산다. 캄캄한 겨울밤을 밝히는 나무. 이미 수만 번의 겨울을 지났을 자작나무에 기대어, 인생의 겨울을 보내는 법을 배우고 싶은 밤이다.
자작나무 _ 세르게이 에세닌
하얀 자작나무
내 창문 밖에
눈으로 덮여 있네
은 빛으로
굵은 가지에는
흰 눈이 쌓여서
꽃이삭이 피었네
하얀 술처럼
자작나무는 서있네
잠든 듯이 고요 속에
눈송이가 반짝이네
황금빛 석양 아래
노을이 서서히
주위를 감돌며
나뭇가지 위에 뿌려주네
새로운 은빛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