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든 남자

일상에 색을 더하는 방법

by 불가사리

한국의 편의점만큼 모스크바에 흔한 게 ‘꽃집’이다. 특별한 상호 없이 ‘취베티(꽃)’이라고 쓰인 가게를 거리 곳곳에서 쉽게 만난다. ‘취베티 24’라고 쓰인 24시간 열린 꽃집도 있다. 남편과 원거리 연애하던 시절, 그는 한국에서 나를 만날 때마다 꽃다발을 건넸다.

“고마워. 너무 예쁘다. 들고 오기 번거롭지 않았어?”
“전혀! 나에겐 일상인 걸. 러시아에서는 꽃을 서로 많이 주고받아.”

그의 말처럼 러시아는 ‘꽃의 나라’였다. 공항에 도착하니 많은 남성들이 꽃다발을 안고 있었다. 공항에서 사람을 맞을 때, 꽃은 필수라고 남편은 말했다. 반가운 이를 만나 포옹을 하고 꽃다발을 건네는 건 무척 자연스러웠다. 미리 준비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공항 안에도 꽃가게가 있었다.


모스크바 시장에서 만난 다양하고 화려한 꽃들


지하철 입구, 지하차도에서 할머니들이 꽃을 팔았다. 본인의 다차(별장)의 뜰에서 기른 국화, 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그녀들의 양동이를 가득 채웠다. 슈퍼와 시장에서도 쉽게 꽃을 볼 수 있다. 노란 장미, 하얀 국화, 이른 봄의 튤립까지, 장 바구니에 제철의 과일을 고르듯 꽃다발을 넣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특히 햇빛이 귀한 겨울, 식탁의 밝은 색깔의 꽃에 마음도 두둥실 위로 떠올랐다. 러시아어로 색깔은 취벳 이고, 꽃은 취베톡, 취베티 라고 하는데, 다양한 꽃으로 얼마든지 단조로운 일상의 색을 더할 수 있다.


“쉽게 꽃을 살 수 있어서 참 좋아.”
“꽃송이 세어봤어? 여기 다 홀수로만 팔 거야. 짝수의 꽃은 고인을 위한 것이거든.”


러시아에서 꽃은 홀수로 주고 받는다. 짝수는 고인을 위한 것



꽃을 주고받을 때는 홀수로 한다. 한 번은 꽃가게에서 남편과 튤립 두 송이를 골랐더니, 직원이 진지한 표정으로 정말 두 송이만 살 건지 묻더니, 한 송이를 서비스로 준 적도 있다. 외국인인 우리에게는 크게 상관없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편치 않았나 보다. 여러 송이가 붙어 있는 가지의 경우, 홀수로 맞춰 가지를 고른다. 러시아에서 꽃을 주고받는 예의다.


모스크바의 슈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꽃다발 :) 자세히 보면 모두 홀수로 포장되어 있다.


한국처럼 꽃 포장이 세련되거나, 아기자기한 맛은 없다. 장미의 꽃 봉오리가 어찌나 큰지, 가지를 많이 자르지 않고 길게 묶어주는 탓에 품에 안기기 버거운 꽃다발도 많다. 꽃다발을 안고 식당, 카페에 들어가면 직원은 꽃병을 가져온다. 우리가 밥을 먹는 사이, 꽃도 우리 곁에서 잠시 물을 축인다.

“꽃병을 가져다주는 세심함, 러시아는 낭만적이야.”
“러시아인 친구 집에 초대를 받을 때도 꽃과 케이크를 가져가곤 해.”


레스토랑에서 제공해준 꽃병, 우리가 식사하는 사이 꽃도 물을 축인다.


처음 러시아인 친구 집에 초대를 받은 날, 그에게 배운 대로 꽃다발과 케이크를 들었다. 노란 장미를 받은 친구는 환하게 웃었다. 바로 꽃병을 꺼내 꽃을 꽂고, 따뜻한 홍차를 내렸다. 달콤한 케이크를 포크로 한 조각 덜어 앞 접시에 놓았다. 향긋한 꽃내음과 달콤한 케이크, 따뜻한 차. 햇살이 없는 영하의 겨울 모스크바에서 우리는 지금 눈 앞의 봄을 맞는다.


“사랑하는 여자에겐 눈물 아닌 꽃을 준다” 거리 곳곳에서 보는 꽃을 든 러시아의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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