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은 인생에서 긴 시간이 아니야

나이에 묶여 시작을 망설이던 날

by 불가사리

‘아홉수소년’이란 드라마가 있다. 한 지붕 아래 사는 아홉, 열아홉, 스물아홉, 서른아홉 남성들의 운 사나운 로맨스를 다뤘다. 흔히 ‘아홉수’ 라 불리는 숫자의 나이, 끝자리가 아홉이 되는 때는 아슬아슬한 기분이 든다. 10년을 주기로 인간의 생체 리듬이 정확하게 변하는 것은 아닐 텐데, 앞자리가 바뀐 것으로 공감의 문장을 건넬 수 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 확실히 작년과는 다르다니까.” 끄덕끄덕- 해야 할 것을 다 끝내지 못한 마음은 더 짙어지고, 벼랑 끝으로 내몰리듯 불안하다. 불길한 기운이 감돈다. 사람이 되지 못한 꼬리 9개의 구미호 때문인가? 응급 전화 119의 영향인가. 수사물을 너무 많이 본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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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은 출장이 많았다. 당시 프로그램의 막내 방송작가로 일했던 나는 당일치기로 지방을 오갔다. 막차는 끊기고 첫 차는 다니지 않는 새벽에야 여의도에 도착했고,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일이 잦았다. 음식코너의 촬영이 끝나고 받은 소품 (주로 지역특산물)이나 마을 이장이 챙겨준 농산물을 들고 있었다. 해남의 고구마, 평창의 파프리카, 아산의 송이버섯, 봉화의 사과 등등이 파란 비닐봉지에 듬뿍 담겨 있었다. 그날도 회사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나는 색색의 파프리카가 훤히 보이는 파란 비닐봉지를 먼저 택시 안으로 밀어 넣었다.

“명일동이요.”

여의도에서 명일동까지 올림픽대로를 탄다. 새벽의 올림픽대로는 한산했고 곧 집에 도착할 수 있다. 하루의 긴장이 풀긴 노곤 노곤한 상태. 깊은 밤을 반짝이는 서울의 야경을 볼 틈도 없이 일단 눈이 감겼다. 30분은 잘 수 있다. 단, 호기심 많은 택시기사를 만나지 않는다면.... 하지만 오늘은 예감이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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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휴, 젊은이가 고생이 많네. 새벽시장에서 떼 오는 길인가 봐?”

네?! 기사님, 여의도에 새벽시장이 있나요? 이 파프리카는 말이죠... 사실 제가 방송국에서 막내 작가로 일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강원도 평창에서 촬영이 있었어요. 촬영에 쓴 걸 팔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이장님이 이렇게 싸주셨어요... 구구절절 답했다가는 질문 공세가 이어질 게 뻔했다. 대부분 이런 질문들이다. - 어떤 방송이야? 엠씨는 누구? 아, 그럼 송은이는 봤나? 어때 성격 좋아?...... 나는 자야 한다. 집에 들렀다가 씻고 또 출근이다. 눈을 감고 싶다. 죄송해요. 진실을 말할 수가 없어요.

“네, 요즘 너무 장사가 안되네요.” 울적한 목소리로, 창밖을 한 번 보고 낮게 한숨을 쉬며 살며시 눈을 감는다. 대부분 여기서 멈춘다. 더는 질문 없이 편하게 집까지 갈 수 있다.

“그래도 일이 있으니 좋죠?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면 더 좋고! 그럼 된 거예요.”


하고 싶어서 하는 일. 그날 잊고 있던 꿈이 생각났다. 영화였다.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학부시절 수업을 들을 때도 신문학 개론보다는 영화학 개론에 더 눈이 반짝였다. 스물여덟, (당시의 내가 생각하기에) 새로운 시작을 하기엔 많은 나이(지금 생각하면 핏덩이였는데...)였다. ‘하고 싶은 일’을 잊은 채 나의 세 번째 아홉수를 향해 가고 있다니! 이대로 좋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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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같은 기종의 휴대폰을 쓰는 언니에게 문자가 왔다. 스마트폰이 없던 때라 휴대폰 별로 보유한 이모지가 달랐는데, 언니의 문자에 캐릭터 스노우캣 그림이 붙어 있었다. “언니, 이 이모지 어떻게 보낸 거야?” 다음 날 언니는 내 휴대폰을 열어 처음 보는 메뉴의 설정에서 이모지의 위치를 찾아줬다. 1년 동안 나는 이 기능을 모른 채 휴대폰을 사용했다. 설명서를 꼼꼼하게 읽는 성격이 아닌 나는 그저 닥치는 대로 휴대폰을 사용했다. 이 일이 하나의 계기가 됐다. 어쩌면 인생도 어떤 상황에 놓여야만 알 수 있는 나 자신이 있지 않을까? 일단 ‘하고 싶은 일’을 더 늦기 전에 해볼까. 방송국을 나와 부산영화제 스태프로 일을 시작했다. 부산에서 보냈던 반년은 부딪치며 나를 알아간 시간이었다.



아홉 살에서 열 살이 되는 건, 더는 구부리는 손가락 없이 양손 모두를 펼칠 수 있는 나이, 열아홉 살에서 스무 살은 ‘드디어 대학생’으로 꿈을 펼칠 수 있는 나이라면, 스물아홉은 다르다. 나를 비롯한 친구들의 모습은 각각 다르게 펼쳐졌다. 이미 결혼하여 엄마가 된 친구, 한 직장에서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 승진한 친구도 있었다.


스물아홉, 나는 또 다른 환경에 나를 펼쳐 두기로 했다. 일본 워킹홀리데이였다. 망설여졌다. 다녀오면 서른인데 이직을 할 수 있을까? 영화든, 방송이든 이제 하나를 선택해서 경력을 쌓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인 비자인데.... 고민이 깊어지는 내게 엄마는 말했다.


“나이는 생각하지 마. 네가 진짜 가고 싶으면 가는 거지.

엄마가 살아보니 인생에서 1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더라. 나중에 후회할 거 같으면 일단 해 봐.”


엄마는 내 마음을 읽었던 걸까.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내게는 앞자리가 바뀌는 10년 같은 1년이었지만, 이미 그 나이를 통과한 엄마에겐 고작 1년의 세월. 종종 나이에 묶여 시작이 두려울 때 나는 엄마의 말을 떠올린다. 후회할 거 같으면 일단 해보자,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또 다른 나를 펼쳐보는 마음으로, 나만의 속도로 오늘의 인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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