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꼴찌를 위하여
서른일곱, 나는 다시 학생이 됐다.
러시아 어학교 입학을 하러 가는 길, 회사에 출근한 남편 대신 그가 아는 유학생과 함께 택시를 탔다.
“이미 학기는 시작되어서요. 반 편성 때문에, 구두로 몇 가지 물어볼 수 있어요.”
“러시아어로요?”
“네, 다 러시아어로만 하죠. 선생님들 다 영어 안 써요.
자기소개, 얼마나 러시아어 공부했는지... 이런 거 물어볼 거예요.”
나는 그의 도움을 받아 적절한 답변을 소리 나는 대로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서 연습했다. 그의 예상대로 입학처에서는 내게 자기소개, 공부한 기간 등을 물었다. 반이 적힌 종이를 들고, 강의실을 열었다. 영국인 여자아이 2명이 있었다. 선생님이 들어와 러시아어로 말하는데, 머릿속이 하얘졌다. 전혀.... 한 문장, 아니 한 단어도.... 들리지 않는다. 반 아이들은 듣고 끄덕거리고 필기도 한다. 이게 무슨 일인가. 3시간을 앉아만 있다가, 터덜터덜 집으로 왔다.
“여보. 하나도 안 들려. 선생님이 무슨 말 하는지 진짜 하나도 모르겠어.”
“원래 그래. 나도 처음 배울 때 그랬어.”
“아니, 러시아어는 이렇게 배우는 거야?”
“같은 반 애들은 어때?”
“아니, 애들은 러시아어 이미 1년을 배웠대.”
한국의 학원에서 주 3회, 러시아어를 2달 배웠다. 알파벳만 간신히 뗐고 이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도 아니었다. 선생님의 필기체는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나는 펜 대신 휴대폰을 들었다. 선생님의 필기가 적힌 칠판을 찍어 매일 밤 남편에게 보여줬다. 매일 숙제가 쏟아졌다. 문법을 모두 배우지 않은 내겐, 이해되지 않고 벅차기만 했다.
매주 일요일 밤이면 책상에 앉아서 눈물이 났다. '주말에 뭐했니?'라는 질문으로 시작될 내일 수업이 겁이 났다. 아직 과거형을 모르는 내가 할 수 있는 답변은 한계가 있다.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의 심정이 이해가 됐다. 자신의 손톱 정리부터 키우는 고양이 이야기까지, 쉼 없이 이어지는 반 영국 아이들의 말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자유로운 사담이 오가는 그들 사이 나 홀로 깊은 소외감을 느꼈다. 수업을 견디고 나면 모든 진이 빠졌다. 1주일이 지나고, 나는 교실을 나가는 담당 선생님을 쫓아갔다.
“수업은 어떠니?”
“솔직히 내겐 너무 어려워. 나는 문법 설명이 좀 더 필요해. 영국 아이들 말 좀 끊어줄 수 없을까?"
“그건 나도 어쩔 수가 없네. 원래 아시아인들과 달리 유럽 애들은 말이 많잖아?”
이건 엄연한 인종차별이었다. 평소 선생님의 행동에서 추측은 했지만, 그녀의 답변에 한가닥 희망도 잃었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이 일을 말했더니 그는 말해다.
“기분 나쁘네. 선생님한테 ‘그 애들이 나보다 돈 더 많이 내니?’라고 물어봐.”
“진짜? 러시아에서 그렇게 말해도 돼?”
그는 진지하게 러시아어 표현을 알려주면서 웃었다. 아니, 여보. 난 진지하다고. 설마 농담한 거야? 나의 고민은 점점 깊어졌고, 2주 후 교무실을 찾아 반을 바꿔 줄 수 있는지 조심스레 물어봤다. 그 말을 꺼내기까지 정말 힘들었다. 엄마의 나에 대한 칭찬(?) 중 하나는, 예민한 여동생과 달리 단 한 번도 학교를 다니며, 짝이 싫으니 바꿔달라고 한 적 없는 ‘무난한’ 아이라는 거다. 대부분 참고 견디지만, 인종차별은 참을 수 없었다. 이런 선생님은 피하고 싶었다.
새로 바뀐 반은 나를 빼고 모두가 중국, 대만인이었다. 교실에 앉으면 내가 지금 모스크바에 있는지, 베이징에 온 건지 구분이 잘 안됐다. 그래도 마음은 편했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좋았다. 반년 후 다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됐다. 모스크바에서 한 해를 보내고 나니, 말보다 눈치가 늘었다. 새로운 반은 6반이었다. 알고 지낸 유학생 동생이 13반에서 6반으로 훌쩍 뛰었다며 축하해줬다. 새로운 반에 갔더니 중국인, 한국인들이 있었다. 모두 러시아어과 3-4학년, 교환학생들이라고 한다. '아, 나 또 이 반에서 꼴찌야?' 학교에서 돌아와 남편에게 속내를 푼다.
“여보, 나 이번에도 우리 반에서 내가 제일 못해. 하하하”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네?”
“아, 그런가. 그렇지. 뭐 이제 더 떨어질 곳도 없다.”
이상하다. 같은 꼴찌인데 첫 해보다 마음은 편했다. 매사에 긍정적인 남편과 살아서일까. 급하고 결과 중심으로 살아온 나와 달리, 이 곳에 오래 산 그는 천천히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다. 모스크바에 살면서 나는 느림의 미학을 배웠다. 이곳은 한국에 비하면 모든 것이 느리다. 러시아어 속담에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쫓기지 않고 그 시간 자체를 즐긴다는 뜻이다. 나는 러시아어를 배울 때, 지금까지 내게 익숙했던 세상의 시계를 보지 않기로 했다. 러시아어를 배우고, 이곳에서 살면서 계속 그와 함께 행복해지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