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했던 관계가 깨어진 날
초등학교 때 교사인 아빠의 발령에 따라 전학을 많이 다녔다. 짧게는 한 학기부터 길게는 2년 만에, 새로운 학교와 반 친구들을 만났다. 그중 가장 큰 이동은 초등학교 5학년의 끝 무렵인 11월, 전라남도 광주에서 서울로 전학을 온 것이다. 이삿짐이 아직 다 끌러지지 않은 집을 나서, 낯선 도시와 골목을 지나 처음 등교했던 아침, 선생님의 소개를 받아 인사를 하고 쭈뼛쭈뼛 뒷자리에 앉았다. 어색하게 교과서를 펼쳤다. 첫 수업은 사회였다. 내가 앉은 줄의 앞에서부터 차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 차례가 되었다.
“법을 어기는 행동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다른 사람으(의) 권리를 침해하며 사람들 간으(의) 갈등을 유발합니다.”
주변 아이들이 키 킥 거리기 시작했다. 왜지? 왜 웃는 거지? 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의사 해봐.”
“나의. 너의. 우리의. 해봐."
나의 ‘의’ 발음은 그들과 달랐다. 아이들에겐 그 사실이 꽤 흥미로웠겠지만, 내겐 고향 친구들과 이야기했던 말로만 듣던 ‘무서운 서울으 아이들’이었다. 매일 집에 와서 ‘의’ 발음을 연습했다. 어느 날은 젓가락을 물고 동화책을 읽었다. 텔레비전에 나온 아나운서들은 그렇게 연습하여 정확한 발음을 구사한다고 했다. ‘싱건지’가 아닌 ‘동치미’, ‘깡깡하다’가 아닌 ‘단단하다’ 자주 쓰던 말들의 표준어를 하나씩 찾아갔다. 노력으로 발음은 점점 나아지면서, ‘의’가 들어가지 않는 단어와 문장 구사력이 늘었다. 6학년이 되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무수한 전학이 내게 남긴 것은, 반의 중심 무리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주로 1:1로 한 친구와 시간을 쌓고, 마음을 나누며 그거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성인이 되어서도 습관은 그대로 이어졌다. 요즈음 말하는 ‘느슨한 연대’로 발이 넓은 사람은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한 사람을 알고, 나와 ‘결이 맞다.’는 느낌이 들면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길을 가다가도 그 사람의 취향을 발견하면, 그 물건을 사서 선물하거나, 평소 그 사람이 흘린 말들을 주워 담아 마음에 새겨 생일에 건네기도 했다. 서로의 비밀 이야기를 공유하는 사이도 생겼다. ‘너에게만 말하는 건데...’ 또는 ‘너니까 내가 이야기하는 건데...’로 시작하는 문장엔 내가 상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는 느낌을 주었고, 그런 마음이 들수록 나도 상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은 욕심도 커졌다.
오랜 시간 ‘특별한 존재’ 였던 친구가 있었다. 사실은 친구 같은 언니다. 둘이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그녀 앞에선 못 마시는 맥주를 홀짝거리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일상의 소소한 것들부터 크고 작은 고민까지, 때론 가족들에게 할 수 없는 은밀한 이야기들도 나눴다. 장녀인 내게 언니는 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의 대상이었고, 그녀는 내게 가상의 친언니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단 하나의 사건으로 우리의 관계는 끝이 났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깊은 마음을 나눈 사람이기에, 상처도 깊었다.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이 컸다.
매일 그녀를 만나야만 하는 게 힘들었는데, 그녀가 다른 이에게 다정하게 대하는 걸 보는 게 슬프고 서운하고 속상했다. 이는 ‘으’ 발음을 연습하여 ‘의’로 정확하게 소리를 낼 수 있는 노력과는 차원이 달랐다. 관계는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 한번 깨진 관계는 다시 예전과 똑같이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감정은 내 마음에 우울함으로 찾아와 깊이 차올랐다.
그즈음 나는 매일 걸었다. 퇴근 후 여의도에서 다리를 건너 영등포까지, 기운이 더 있을 때는 신도림까지 걸었다. 그때마다 B가 함께 걸었다. 그때의 나는 여러 면에서 두서가 없었다. 회사에선 잔뜩 긴장한 상태로, 퇴근 후엔 긴장이 풀어지면서 피로감이 몰려왔다. 서로 다른 팀이었던 우린 종종 그날의 사건과 사고를 나누곤 했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터져버렸다.
“너는 나와 계속 친구 해줄 거지? (꺼이꺼이)”
B는 두서없는 나의 말에 한 템포를 쉬더니, 특유의 담담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오래 같이 걸어 줄게요. “
‘그럼, 언니- 내가 있잖아.’ 또는 ‘울지 마요, 괜찮을 거예요.’라는 말보다 강력한 한 방이었다. 하나의 관계는 떠났어도, 또 하나의 관계는 여전히 내 곁에 있었다. 오래. 그리고. 같이. 걸어준다는 약속. 시간을 돌아 다시 만나도, 내 마음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스스로가 한없이 초라한 나여도 ‘튼튼한 두 다리’만 있으면 우리는 함께 걸을 것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아프리카의 속담처럼, 같이 걷는다면 끝나지 않을 이 악몽의 시간을 통과해서 멀리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문장은 내가 배운 최고의 우정의 말이었다. 그래, 우리 오래 같이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