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밖의 반응을 마주한 날
정류장에서부터 궁금했다. 할머니가 팔던 나뭇가지에는 밝은 회색빛의 봉우리가 작은 솜뭉치처럼 붙어있었다. 4월 중순, 절기상으로 봄이었지만 모스크바의 날씨는 한국의 늦가을 같다. 해는 큰 구름 뒤로 숨어버렸고, 종일 뿌옇고 흐린 회색빛 하늘이 계속 됐다. 가끔은 빗방울이 날렸고, 코끝이 시린 쌀쌀한 바람이 불어 나는 여전히 두꺼운 패딩을 걸치고 있다. 그즈음 그 나뭇가지를 많이 보았다. 나뭇가지 다발은 트램을 타러 가는 지하차도에서, 거리에서 사람들의 품에 한아름 안긴 꽃다발처럼 보였다. 사람들에 밀려 바로 버스에 올랐다. 급하게 사진을 찍었다. 러시아인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안나, 이거 뭐야? 요즘 자주 보이던데!"
"그거 버드나무 가지야. 부활절 전주일에 교회에 가져가는데 집에 두고 장식을 하기도 해. 가족들을 보호하고 좋은 일을 가져다 줄 거라고 믿지."
친구가 알려준 단어를 검색하니 많은 버드나무 가지의 모습이 나왔다. 갯버들의 봉우리는 색이 칠해져 있기도 했고, 익숙한 부활절 달걀이 함께 놓여 있었다. 부활절을 일주일 앞둔 종려주일 (Palm Sunday, 예수께서 십자가 죽음을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을 기념하는 절기) 러시아인들은 봄에 처음 싹을 생산하는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교회에 가고, 집에 장식을 하며 그 주간을 기념한다. 나도 해보고 싶다. 버드나무 가지를 구입하고 부활주일을 기다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집으로 가는 길, 슈퍼에 들렀다. 며칠 전까지 매대에 있던 버드나무 가지는 보이지 않았다. 과일을 고르고 있는데, 옆에 있던 러시아 여성의 손에 버드나무 가지를 보았다. 처음으로 용기를 냈다.
"안녕하세요. 죄송한데... 혹시 그거 어디에서 샀나요?"
"(기분 나쁘다는 표정) 시내요. (쌩-)"
그녀는 고르던 사과를 내려놓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쌩- 하고 가버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내 러시아어가 기분 나빴나? 그런 질문은 예의에 어긋났던 건가? 모스크바 생활이 1년이 되어가지만, 차갑고 무표정한, 세상 모든 것에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 러시아인들의 태도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만약 반대로 한국에서 이와 같은 상황이 내게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 안녀하세요. 제손한데요. 그거 어디에쏘 사써요? - 서툰 한국어로 물어본 이의 용기를 기특한 마음으로 봤겠지. 최대한 친절하게 또박또박 답해줬을 것이다. 그가 이해할 수 있는 한국어 단어를 골라서, 어쩌면 짧은 영어로 도움을 주고 싶었을 거야. 쳇.!
이럴 때 쓰는 말이 하나 있다. "에따 라씨아. (이것이 러시아다)" 이 마법 같은 말은 모든 이해되지 않는, 내가 상식이며 기본이라 여겼던 것들이 통용되지 않는 모든 상황에서 쓸 수 있었다. 러시아어 교재에서 이 표현을 처음 배웠는데 11명의 러시아인이 나왔다. 넓은 러시아 곳곳에 사는 러시아인들이 자신들의 러시아를 설명한다. 시베리아에 사는 세르게이는 “러시아는 눈이 많이 오고 추운 나라”이지만 크림반도의 나탈랴는 눈을 볼 수 없다. 바이칼 호 근처에 사는 올가에게 러시아는 '신선한 해산물이 풍부한 곳' 이지만 모스크바에 사는 나리사는 '야경이 아름다운 나라' 로 각각의 러시아를 설명한다. 넓고 넓은 러시아를 바라보는 해석은 모두 다르다. 다름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해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인정이 필요한 나라. 그것이 내가 터득한 러시아를 ‘인정’ (그리고 이해) 하는 방법이었다. 예상 밖의 일들이 생기면 마음 깊이 외치면 된다. 그래, 에따 라씨아. (이것이 러시아다. 그렇지 뭐)
며칠 후 안나를 만났다. 트램에서 알게 된 그녀는 나의 유일한 러시아인 친구다. 나는 자주 궁금한 것을 그녀에게 물었다. 그날의 주제는 <왜 러시아인은 친절하지 않은가?>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슈퍼에서의 일을 쏟아냈다. 당시의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며, 혹시 내가 잘못한 것은 없는지, 러시아 문화권에서 이런 접근은 무례한 태도였는지 물었다. 그녀의 답은 명료했다.
"네 잘못은 없어. 내게 그런 일이 생기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
내가 좋은 마음, 좋은 기분이라면 좋은 사람을 만날 거라고.
만약 나쁜 사람을 만나잖아?
그럼 자, 이제 내가 먼저 좋은 기분을 가져보자! 마음을 바꾸지.
어쩌면 네게 불친절한 이들은, 자신의 삶이 너무 힘들어서일지도 몰라.
네게 화가 난 게 아니라, 그날 힘든 일이 있었거나... "
아, 이런 게 넓은 대륙에 사는 이의 마음인가? 그 날의 대화는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만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이 나와 같을 수도, 그들의 하루가 어땠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모르는 사람을 그렇게까지 이해하려고 애써야 해? 싶지만 한 번 더 생각하면 ‘스스로, 내가 먼저 좋은 기분을 갖자’는 다짐은 나 자신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친절이 아닐까. 러시아인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배운다. 앞으로 상대가 어떻든, 어떤 기대 이상의 일이 일어나든 에따 라씨아.(이것이 러시아다)에 이어 '좋은 기분을 가져보자’를 나에게 속삭이는 내가 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