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돌보아야 해요

내 안의 작은 아이를 만난 날

by 불가사리

방을 정리하다가 상자를 하나 열었다. 그 안에는 빽빽하게 쓰인 수첩이 4권이 있었다. 불과 4년 전, 여름의 끝무렵부터 쓰기 시작한 노트는 그 이듬해 여름까지 이어졌다. 2016년 그 해 여름은 무척 더웠다. 그리고 그 여름이 끝날 무렵, 나는 큰 이별을 겪었다.

누군가를 만나며 이별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 이미 드리워져 있던 이별의 그림자는, 무더웠던 여름을 지나 점점 짙어지더니 나를 삼켰다.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때의 나는 내가 그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픈 사람 곁에서, 나는 점점 나 자신을 잃었고, 일방적인 그의 이별 통보에도 화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나는 많이 아팠다. 매일 걷고, 묵상과 감사노트를 쓰며 두 계절을 홀로 견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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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한 번 받아보면 어때? 내가 소개해줄게.”

종종 통화를 하며, 내 상황을 모두 알고 있던 친구는 내게 상담을 권했다. 심리 상담을 받는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봄이 되어도 마음은 늘 겨울에 멈춰 있었다. 나는 잘 살아내고 싶었다. 다시 봄을 찾고 싶었다. 오후 반차를 내고, 일산에 있는 심리상담소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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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정상인지 알고 싶어요.”

처음 보는 선생님 앞에서 그 말을 꺼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 자리에서 엉엉, 아이처럼 소리를 내어 울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1:1 심리상담을 받게 됐다. 매주 토요일 오후, 약속된 시간에 선생님을 만났다. 그 앞에서 나는 물이 틀어진 수도꼭지처럼 펑펑 울었다. 3개월이 흘렀다. 눈물도 나의 일방적인 폭로도 조금씩 잦아들 무렵,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배워야 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법을 모르겠어요. (엉엉)”

“불가사리에겐 여러 모습이 있어요. 회사에서는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하는 어른의 모습도 있죠. 그 어른의 내가, 내 안의 어린아이를 돌보아 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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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회사에서의 나를 생각했다. 당시 팀에는 새로 입사한 신입직원이 있었다. 나의 직속 후임이었다. 그녀가 쓴 제안서를 고쳐주고, 보도자료 쓰는 법을 알려주고, 메일을 보내는 법, 회사의 작고 소소한 업무 프로세스를 하나하나 가르쳤다. 그녀는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신입이니까... 문득 내 안에 자라지 못한 작은 아이가, 내 세상에 갓 입사한 신입직원처럼 느껴졌다.


내 안에 있지만, 나의 세상이 낯선 아이. 자라지 못한 채 성장이 멈춰버린, 한 번의 사고로 그 자리에 넘어져서 엉엉 울고 있는 내 안의 작은 아이가 보였다. ‘그 사고는 네가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야, 그 길이 처음이라 낯설어서 그런 거야. ‘ 다른 길을 가고 있던 내 안의 어른이, 캄캄한 곳에서 울고 있는 작은 아이를 향해 처음으로 밝은 불빛을 비췄다. 어른은 넘어진 아이의 손을 잡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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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넘어졌으면, 다시 일어나서 걸어가면 되는 거야. 이제 우리 함께 걸어가자.’


서른이 훌쩍 넘어서야, 나는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의 돌봄이 필요한, 내 안의 작은 아이들은 계속 넘어지고, 한동안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걷기를 반복한다. 그러면서 배우고 성장할 것이다. 내가 선생님이면서, 학생이기도 한 ‘스스로를 돌보는 수업’은 나의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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