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방향을 헤매던 날
고등학교 때, 친구가 내게 책 한 권을 건넸다.
“이 책 읽어봤어? 이 여자, 전 세계를 혼자 다녔더라.”
“바람의 딸? 한비야?”
친구가 건넨 책은 <바람의 딸, 걸어서 지쿠 세 바퀴 반>이었다. 당시 출간된 그녀의 책은 여고생들 사이 인기가 많았다. 지금과 달리 저가 항공이 없던 시절, 전 세계를 돌며 쓴 그녀의 여행기는, 아직 가보지 못한 또 다른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러나 책을 모두 읽은 나의 반응은 ‘이 사람 뭐야, 전 세계 남자들이 다 자기를 좋아한 거야?’ 내 취향의 책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의 존재를 잊었다.
2009년 12월, 일본에서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돌아왔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한비야, 그녀의 새로운 책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였다. 설마 이제 지도 밖에서도 모두 자기를 좋아하나? 호기심에 책을 열었다가,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10년 사이, 그녀는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자신의 인생에서 소중한 것을 찾은, 구호 현장생생한 일상이 담긴 그녀의 글은 나를 사로잡았다. 처음으로 국제구호기구에 관심이 갔다.
국제구호기구엔 구호활동가만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찾아보니 여러 직무가 있었고, 마침 ‘언론사 경력 3년 이상’인 취업요건에 맞아 지원했다. 운 좋게도 다음 해 4월, 국제구호기구 대외협력팀으로 입사했다. 내가 맡은 업무는 콘텐츠를 다루는 일이었다. 주로 홈페이지 캠페인, 팀 주관 행사, 브로슈어 등 닥치는 대로 문구를 썼다.
“팀장님, 이거 한 번 봐주세요. 1안, 2안, 3안. 어떤 문구가 제일 좋아요?”
방송국에서도 대본, 방송 홍보 안 문구를 쓴다. 최종 점검을 위해 메인작가에게 가져가면, 그녀는 늘 빨간펜을 들어 쫙쫙- 그었다.
“이거 말고, 좀 더 섹시하면서 쌔끈한 말 없니?”
섹시하고 쌔끈하면서, 심의 규정에도 어긋나지 않는 말. 나는 그 말을 찾기 위해 몇 번을 고쳤다. 마지막엔 처음 썼던 문구로 결정하기도.... (그럴 거면 왜...?) 나는 그때를 떠올리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허허허, 난 다 좋은데~~~~ 대리님이 보기엔 어때요?”
“아, 전 1번이 제일 괜찮지 않을까 해요.”
“전문가가 보기에 그러면 1번이 맞지. 아, 이 용어만 바꿔주면 되겠어요.”
A 팀장님은 빨간펜을 들지 않았다. 이미 정해진 답을 놓고 질문을 하거나, 다시 또 몇 번을 반복하게 하지도 않았다. 다만, 사기업에서 이제 비영리 기관으로 입사해 내가 놓친 표현들을 알려주셨다.
입사한 첫해, 회사의 큰 행사 준비로 종종 야근을 했다. 워낙 밤샘 근무가 익숙한 곳에서 첫 직장을 다녔기에, 저녁 10시나 11시의 퇴근은 내게 야근 축에도 끼지 않았다. A 팀장님이 나의 전문성을 인정해 주시는 만큼, 나는 더 꼼꼼하게 맡은 일을 하게 됐다. 야근을 하며 몇 번이나 대본을 고쳐 썼다. 혼자만 할 수 있고, 혼자 해야 하는 일이었다.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엔 그와 나만 남아있었다.
“팀장님, 먼저 들어가세요. 내일 아침에 보여드릴게요.”
“팀원이 야근하는데, 팀장이 어떻게 먼저 들어가~ 괜찮아~”
그는 잔잔한 음악을 틀거나, 편의점 커피를 내 책상에 두기도 했다. 함께 있지만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야근의 시간이 흘러갔다. A 팀장님은 늘 묵묵하게 나의 일을 지켜보고, 작은 것에도 칭찬과 섬세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 덕분에 나는 팀을 옮기고, 다양한 업무를 하며 한 회사에서 8년을 잘 보냈다. 결혼과 함께 해외로 이주하게 되어 퇴사할 때까지, 그는 회사의 업무, 사람, 때론 인생에 대한 나의 속내와 고민을 끊임없이 들어주고, 같이 마주해준 유일한 어른이었다.
2019년 4월이었다. 모스크바에서 처음 맞는 봄은 춥고, 흐리고, 비가 많이 내렸다. 굳은 표정의 러시아인을 보면 마음에도 찬 바람이 들어왔다. 반년이 지나도 러시아어는 너무 어려웠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는 거짓말이다. ‘일이 제일 쉬웠어요.’가 맞아. 일로서 맛보던 성취감이 그리웠다. 모든 것이 더디기만 한 스스로가 실망스러웠다. ‘나는 누구이고, 또 여기는 어디인가?’ 쓸쓸하고 외로웠다. 털모자를 쓰고 학교에 가는 길, 페이스북 메신저가 울렸다.
“똑똑~ 잘 지내요?”
“팀장님!!! 잘 지내고 계세요?”
“그냥 그래요~ 그러나 감사하면서 지내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감사하면서 지내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팀장님의 다정한 말투와 표정이 생각나서 마음이 뭉클했다.
“눈물이 나네요.”
"아이코 이런 울지 말고. /
좋은 일만 있을 거예요. /
러시아에서 사는 이유를 나중에 아실 거예요. /
하나님께서 귀히 쓰실 거니까요. /
러시아 말 열심히 배워요. 머리가 좋으니 금방 하실 겁니다. 힘내요. ^^”
속사포로 쏟아지는 그의 문자가 채팅창에 블록처럼 차곡차곡 쌓여갔다. 이내 한기가 서렸던 마음이 서서히 온기가 느껴졌다. 잊고 있었다. 남편을 따라 여기 있지만, 그와의 결혼, 새로운 삶을 선택한 것은 나였다. 팀장님의 말처럼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되겠지.’ 내가 왜 러시아어를 배우며 이곳에 사는지, 쓰임받을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려보자. 나의 삶은 나 자신 그대로의 인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