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가장 사랑한다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해준 사람

by 불가사리

엄마는 내게 고장 난 시계를 건넸다.

“외 할아버지 시계야. 네가 가져. 널 제일 좋아했으니까...”

시계의 시간은 멈춘 지 오래되었다. 용추가 없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집 앞 금은방에 들러 시계의 수리를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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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을 열어봐야 정확한 수리 비용이 나와요.
용추만 바꾸면 되는지, 오래된 거라서... 연락드릴게요.”
“네, 꼭 고쳐주세요.”

3 년 전 여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밤에 외삼촌의 연락을 받은 부모님은 바로 전라남도 광주로 출발했지만, 도착했을 때는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 막내딸인 엄마는 그의 따뜻한 손을 마지막으로 잡지 못한 걸 계속 슬퍼했다. 그날 점심 이후 소화가 안되신다던 외할아버지는 병원을 다녀왔고, 속에 있던 걸 모두 게워내셨다. 그는 의식만 있는 채로 잠시 숨을 고르시다가, 고요하게 숨을 거두셨다. 연세 97세였다. 다른 이에게 폐를 끼치지 않은 조용한 마지막, 생전의 외할아버지 다운 삶의 끝이었다.

아이가 자라는 데 중요한 것은 어떤 한 존재의 전폭적인 사랑과 신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주 양육자가 부모가 아니어도, 나를 믿고 사랑해 주는 사람.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을 표현해 주는 사람. 내게 외할아버지는 그런 존재였다. 사랑하는 막내딸이 낳은 첫 딸. 외할아버지는 전화할 때마다 늘 내게 사랑을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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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 손녀, 할아버지는 네가 제일 좋다.”

내 이름을 부르는 외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눈물이 났다. 수년간 나를 향한 그의 사랑은 늘 한결같았다. 연세가 들어, 원거리 이동이 힘드셨던 외할아버지는 우리 집의 개혼이었던 여동생의 결혼식에 오지 않으셨다.

“내가 네 결혼식엔 꼭 서울 올라가마. 가장 사랑하는 우리 손녀. 결혼하는 날 경복궁도 구경하고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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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는 끝내 서울에 올라오지 못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1년이 지나 나는 결혼했다. 내 결혼식에 온 큰 이모는 날 보자마자 눈물을 글썽였다.

“할아버지가 네 결혼식에는 꼭 온다고 했는데....”
“이모, 울지 마. 나도 눈물이 난단 말이야.”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일주일쯤 되었을 때, 나는 꿈에서 외할아버지를 만났다. 내 꿈에 찾아온 그는 하얀 병풍에 멋진 호랑이 그림을 그렸고, 내게 붓을 건넸다. 나는 그가 그린 호랑이를 따라서 그림을 그렸다. 꿈속의 외할아버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내가 네게 준 사랑을 잊지 말렴. 내가 네게 보여준 삶을 살아가는 방식처럼 살아가면 된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한참 전에 꾼 꿈이지만, 어젯밤처럼 여전히 생생하다. 엄마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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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할아버지가 환하게 웃으셨어. 좋은 곳으로 가신 것 같아.”
“널 가장 좋아하더니, 네 꿈에 찾아갔나 봐. 우리 아버지. 내 꿈에도 오셨으면 좋겠다.”




핸드폰이 울렸다. 시계가 다 고쳐졌으니 찾으러 와도 좋다는 메시지다. 금은방에 들러 고쳐진 시계를 받았다.

“주인이 깨끗하게 쓰셨네요. 용추 끼우고, 배터리만 갈았어요.”

외할아버지 남긴 시계를 손목에 찼다. 손목 아래로 한참 내려오는 헐거운 시곗줄, 내가 만나지 못한 젊은 시절의 외할아버지를 상상한다. 그는 이제 내 곁에 없지만, 그가 내게 남긴 값없는 사랑은 이 시계와 함께 다시 움직인다. 째깍째깍. 초침이 그의 부지런한 사랑을 말한다. 외할아버지를 다시 만나는 날, 이번엔 내가 먼저 그에게 말해줘야지.

“할아버지, 제가 정말 정말 사랑해요.”


째깍째깍, 다시 움직이는 외 할아버지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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