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큰 잘못을 한 것 같은 날
그녀가 열쇠로 문을 열자, 사진으로 보던 집의 실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방의 중간엔 미닫이문이 있어 두 개의 방처럼 나눠 쓸 수 있다. 그녀의 손가락이 오른편을 가리켰다.
“이쪽 방을 쓰면 돼요. 근데 난방기는 제 방에만 있어서, 제가 잘 때 미닫이문을 살짝 열어두면 그쪽으로 따뜻한 기운이 가니까 괜찮으실 거예요. 아, 혹시 텔레비전도 제 방에 있으니까, 보고 싶으시면 말씀하세요.”
난방기, 텔레비전, 붙박이장은 모두 그녀의 방에, 내 방에는 옷을 걸 수 있는 행거 하나뿐이다. 그제야 후회했다. ‘아, 집을 인터넷으로 구하는 게 아닌데. 3개월만 지내면 되니까!’ 1월 3일, 도쿄에서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시작했다. 바깥보다 실내가 더 추울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집에서 나는 깨달았다. 매일 밤늦게까지 켜진 텔레비전 소리에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됐다. 일본인 집주인에게 월세를 내는 세입자인 유학생의 또 다른 세입자. 전기세와 수도세도 반반. 졸업반인 그녀는 주로 집에 있었고, 대부분의 가전제품은 그녀의 방에 있다. 시작부터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킹이 있어야 홀리데이가 있는 법이다. 수많은 면접 끝에 미타카 역 앞의 KFC에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최저시급이 한국보다 비싼 일본엔 시간제로 생활을 유지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을 프리타(フリーター : 프리(Free)와 아르바이트(Arbeit)를 합친 표현)라고 부른다. 평일 낮엔 프리타인 엄마 또래의 분들이 있었지만, 저녁이나 주말은 대부분 중, 고등학생이 선배가 되어 내게 일을 가르쳤다. 그중 가장 무서운 동료는 16살의 킨키라는 여학생이었다.
“이(李)상, 이건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요. 알겠어요? 내가 몇 번이나 말해요?”
검은색 아이라이너로 눈매 끝을 살짝 올린 그녀의 눈이 목소리와 묘하게 어울렸다. 말끝마다 “와카루(알겠어?)”를 덧붙이는데 뒤로 가서 한대 콩-하고 머리를 때려 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웠다. 일본어가 짧은 나를 배려해서 일의 시범을 몸으로 보여주는 이도 있었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말로만 설명했다. 우리는 자주 파트너가 됐다.
집에 오면 말은 들려도, 행동은 이해되지 않는 한국인 룸메이트, 일터에 가면 말이 들리지 않으니, 하루하루가 버겁고 힘에 부쳤다. 일터에서 아는 태국인 친구가 물었다.
“언니-(한국말), 무슨 일 있어요?
그제야 속내를 말했다. 한국인 룸메이트와의 어려움을 들은 친구는 당장 그 집에서 나오라고 했다. 정 머물 곳이 없으면 자기네 집으로 오라며, 남은 월세는 내고 오면 되지 않냐는 것이다. 계약이 끝나자마자 나가려고 했는데, 월세가 이중으로 들더라도 그게 마음이 편하겠다 싶었다. 셰어하우스를 알아보고 이사를 준비했다. 다음 달 월세와 편지를 써서 방에 두고 그 집을 나왔다. 계약이 끝날 때까지 한 달 반의 시간이 있으니, 그녀도 새로운 룸메이트를 구하기엔 충분하리라 믿었다. 그 후. 그녀는 내게 한동안 일본어로 욕이 잔뜩 적힌 문자를 보냈다. 답할 이유는 없었다. 더 이상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후에 알고 보니 그녀는 유학생 모임 사이트에서 3개월마다 새로운 룸메이트를 구했다. 계약 연장이 아닌 떠남을 택한 그녀의 전 룸메이트들의 마음을 나는 이해한다.
반년의 시간이 지났다. 주방에서 닭을 튀기던 나는 종종 카운터에서 주문도 받았다. 어느 날 카운터에 있던 내게 점장이 오면서 말했다.
“이(李)상, 너한테 착불로 소포가 하나 왔어.”
“소포요? 저한테요? 여기 주소로 보낼 사람이 없는데?”
“착불로 와서 일단 내가 냈어. 사무실에 뒀으니까 나중에 확인해봐.”
매장 영업이 끝난 밤 10시에야 내 앞으로 온 소포를 확인했다. 보낸 이는 처음 보는 일본인 이름이었다. 조심스레 박스를 열었고, 그 사이로 보인 내용물에 나는 이 소포의 진짜 보낸 이를 알았다. 함께 살던 한국인 룸메이트였다. 그녀는 내가 그 집을 떠나면서, 다음 주 지정 요일에 버려주길 부탁한 재활용 쓰레기에 자신의 쓰레기를 더해 내게 착불로 소포를 부친 것이다. 도대체 왜? 반년이 지나서야? 나는 소포 상자를 바로 닫았다. 이상한 기운을 눈치챈 점장이 물었다.
“이(李)상, 너한테 온 거 맞니?”
“네. 제 앞으로 온 게 맞긴 하는데...”
일본인인 그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까. 구구절절 말해봤자 같은 한국인을 욕하는 것밖에 더 되나 싶어 꾹 참았다. 그는 반갑지 않은 소포인 것을 눈치챘다. 나는 그가 지불한 착불 소포 비용을 지갑에서 주섬주섬 꺼냈다.
“점장, 여기...”
“이(李)상, 안 받을게. 잘못 온 소포잖아. 네 이름만 보고 확인 없이 받아버린 내 실수야. 그리고 그 소포 버려도 되는 거면 여기 두고 가. 여기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가게 앞에 두자.”
“고맙습니다.”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어. 내가 아는 너는 좋은 사람이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그 말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때까지 살면서 누군가의 원한을 살만한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쓰레기 소포’를 받고 나니 큰 잘못을 저지른 것만 같았다. 같은 한국인은 일본인 가명을 써서 더러운 쓰레기를 소포로 보냈지만, 이를 받은 일본인 점장은 배려의 말들로 더러워진 내 마음을 깨끗하게 쓸어주었다. 그 후로 가끔 도쿄에 가면, 미타카 역 앞 KFC에 들렀다. 왠지 그곳에 가면 ‘좋은 사람’이 된 것만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