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白夜)의 여름
한국과 모스크바의 시차는 6시간이다. 한국의 오후 4시는 모스크바의 오전 10시, 한국 보다 6시간이 느리다. 한국에서 오전 9시에 모스크바까지 가는 직항을 타면 같은 날 정오 즈음이 된다. 여덟 시간 넘게 비행을 했지만, 시계를 보면 3시간만 지난 셈이다. 도착하면 시간을 번 착각이 든다.
모스크바에 도착한 직후, 초저녁부터 잠이 쏟아졌다. 이 곳의 오후 5시는 한국의 밤 11시니까. 졸음을 견디지 못해 일찍 자거나 또는 고비를 넘겨 늦게 자더라도 꼭 새벽이면 눈이 떠졌다. 밝아진 밖을 보며, 드디어 나도 ‘아침형 인간’ 이 된 걸까? 깜짝 놀라서 시계를 보면 늘 새벽 4시. 한국의 시간으론 아침 10시다. 회사원이었다면 늦잠으로 오전 반차를 내야 하는 아찔한 순간이다.
“아직 4시인데, 밖이 너무 밝아. 벌써 해가 뜬 거야?”
“백야라서 그래. 여름엔 계속 이렇게 밝을 거야.”
모스크바에 오래 산 남편에겐 익숙한 여름밤이었다. 불을 켜지 않아도, 베이지 색 커튼 너머로 들어온 빛은 오후의 햇살처럼 방 안을 환하고 따뜻하게 감쌌다. 어느 날은 초저녁부터 자꾸만 내려오는 무거운 눈꺼풀을 부릅뜨고, 백야현상을 찬찬히 관찰했다. 밤 10시 반까지 환했던 밖은 잠시 어두워지더니, 새벽 3시 반이면 다시 밝아졌다. 잠깐 꾸벅꾸벅 졸면서 눈이 감긴 사이 밤은 소리 없이 지나갔다.
선선한 여름밤, 우리는 자주 집 앞 공원을 산책했다. 저녁을 먹고 8시 반에 나가서 공원을 걷다 보면, 9시에 가로등에 불이 들어왔다. 어딘가에서 누군가 몰래 준비한 프러포즈 이벤트처럼, 한 번에 켜지는 공원의 불 빛을 보고 있으면 내가 그 주인공이 된 것처럼 가슴이 설렜다. 매일 밤, 우리가 찾은 작은 행복의 순간이었다.
천천히 어두워지기 시작한 하늘에 떠있는 구름과 석양, 공원의 동그란 가로등이 호수에 환하게 비쳤다. 하늘과 호수는 학교 미술시간에 했던 데칼코마니처럼 완벽한 한 쌍을 이뤘다. 나는 학교에서 들었던 이태백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물에 비친 달이 아름다워서, 달을 잡으려다 물에 빠졌다는 그의 심정을 이제야 알 것 같아.”
매미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요한 여름밤, 같은 달을 보지만 우리를 지나는 밤의 시간과 형태는 모두 다르구나. 여름내내 밤은 우리를 얕게 스치고, 낮은 점점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