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새롭고 짜릿한 슈퍼마켓
새로운 도시와의 첫 만남에 슈퍼마켓처럼 매력적인 곳이 있을까. 눈에 익숙한 것과 처음 보는 낯선 것이 공존하는 곳, 이미 아는 맛과 전혀 알 수 없는 맛이 숨겨진 곳, 그 나라의 말을 알지 못해도, 찬찬히 보고 만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문자 누구에게나 열린 평등한 세상. 슈퍼마켓이다.
“빼레크레스톡(перекресток) 은 러시아어로 교차로란 뜻이야.”
남편은 집 앞의 작은 쇼핑몰, 지하에 있는 슈퍼마켓으로 나를 안내했다. 한국의 롯데마트 정도 될까? 대부분의 식자재, 생필품을 파는 모스크바의 국민마트 중 하나인 빼레크레스톡. 나는 매력적인 그 교차로에서 자주 가야 할 길과 시간을 동시에 잃었다.
“사과 종류 많다! 맛이 다 다른가?”
“껍질이 고구마 같은 감자도 있네? 어머, 요리에 따라 종류가 다른가 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진열된 채소와 과일에 발걸음이 멈췄다. 일단 눈에 보이는 대로 바로 안다. 눈에 익숙한 채소 아래 쓰인 생소한 러시아어 알파벳을 띄엄띄엄 읽어본다. 이것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현장 러시아어다. 색색깔의 반질 반질한 파프리카가 싱그러워서, 고르게 열을 맞춰 진열된 토마토의 각 맞춤에 감동한다. 이 작은 미니호박은 어느 음식에 들어가는 채소 인고? 사진을 찍는 나를 러시아인이 힐끗 쳐다본다.
계절이 주는 주는 선물은 그때의 슈퍼마켓에 숨어있다. 어린 시절, 겨울이 되면 엄마는 우리 사 남매를 위해 귤 한 박스를 주문했다. 텔레비전을 보며 손이 노랗게 되도록 까먹던 귤은 이틀이면 동이 났다. 하우스 재배로 사계절 내내 먹을 수 있어도, 겨울의 맛과 달랐다. 그 계절이 품은 태양의 열기, 촉촉한 비와 습도, 보드라운 땅의 기운을 충분히 받고 제철에 수확된 과일과 채소는 맛과 영양이 다르다. 모스크바의 여름은 복숭아 천국이다.
“납작 복숭아다! 천도복숭아도 있네.”
“여름에만 있어. 지금 많이 먹어두자.”
“종류별로 하나씩 사볼까.”
글씨를 읽을 수 없고, 뜻은 몰라도 ‘슈퍼 홀릭’ 은 한눈에 모든 걸 파악한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계산의 기능은 손에 탑재되어 있다. 필요한 만큼 봉지에 담아 저울에 올리고, 과일 옆에 적혀 있던 숫자를 누르니 올린 무게에 따른 금액이 적힌 바코드 스티커가 출력됐다. 그 숫자에 대략 1.5를 곱하면 한국의 가격이다.
“하루 종일 이 곳에 있어도 심심하지 않을 거 같아.”
“나중엔 재미없을 걸?”
“그럴 리 없어. 혹시 내가 우울해지면, 다른 슈퍼마켓으로 날 안내해줘.”
단조로운 일상에 새로움이 필요한 날, 나는 슈퍼에 간다. 각각 다른 이름을 가진 사과를 종류별로 한 두개씩 담아본다. 떠나온 한국이 그리운 날, 마음이 헛헛할 때에도 슈퍼로 간다. 바비큐립 용으로 나온 등갈비를 사서 갈비찜을 하거나, 감자탕을 끓였다. 완벽하진 않지만, 비슷한 맛이 나온다. (한국보다 저렴한 고기가격에 감탄) 나의 사랑 슈퍼마켓, 늘 새롭고 짜릿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