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비자 여행
비행기가 지연됐다. 원래대로 라면 지금 공항으로 출발해야 하지만, 항공사의 사정으로 두 시간 늦게 출발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덕분에 기적적인 타이밍으로, 오늘이면 나올 거라는 초청장이 지금 내 손에 들어왔다.
초청장을 받자마자 틀린 게 없는지 확인해 본다. 최근 비자 때문에 한국에 다녀온 분이, 초청장에 자신의 성이 LEE 가 아닌 LI로 표기되어 다시 초청장을 신청하고, 받기까지 한 달이 더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내 초청장은 영문 이름도, 여권발급 날짜도, 주소도 틀린 건 없었다. 다행이다. 이제 한국에 가서 지정 병원에서 에이즈 검사를 받고, 비자 신청을 하고 기다리면 된다. 잠깐, 나 이제 진짜 러시아에 살게 되는 건가. 기분이 묘하다. 뭔가 오류가 있어, 혹시 좀 더 길게 한국에 있고 싶었던 건가?
엄마는 내가 긴 출장을 떠난 거 같다고 했다.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바로 러시아로 떠나는 날, 6개의 가방을 싣고 부모님과 광명역에 왔다. 공항터미널에서 짐을 부치고, 바로 공항버스를 탔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서운해하던 아빠와 달리 씩씩했던 엄마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 엄마, 왜 울려고 그래,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잖아.
- 너무 이상해, 네가 너무 멀리 가버린다고 하니까.
- 두 달 있다가 다시 올게!
바로 버스가 와서 다행이다. 창 밖을 보니 엄마는 계속 울고 있었다. 밖에서는 버스 안이 보이지 않아서 또 다행이다. 내가 우는 것은 엄마가 볼 수 없으니까, 서로 보면 펑펑 더 눈물이 날 텐데, 나만 엄마가 보여서 참 다행이다.
- 언제 도착해? 김치찌개 해둘게
엄마의 카톡에 왠지 눈물이 핑- 돈다. 큰일이다. 아직 만나고 헤어지지도 않았는데, 이 감정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 모르겠다. 늘 출장을 마치고 오면 엄마가 해준 김치찌개를 먹었는데, 마음이 왠지 쓸쓸하다. 너무 가까이 있는 것보다 조금 거리를 두면 더 사이가 좋아지는 게 부모와 자식이라던데,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좋은 적당한 거리는 어느 정도 일까. 그 마음의 거리를 찾게 된다면,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게 될까.
마음이 무거울 땐 몸을 움직여야 한다. 기내용과 부칠 짐을 나누려던 걸 다시 펼쳤다. 기내용 캐리어에 가족 친구들에게 줄 초콜릿, 선물들을 담고, 좀 더 큰 캐리어에 넣는다. 그리고 캐리어의 빈자리에 옷가지를 몇 벌 챙겨 넣고, 다시 또 큰 캐리어로 감싼다. 짐 검사 엑스레이를 통과한다면, 총 3개의 가방이 보일 거다. 단단하고 큰 캐리어 안으로 꽁꽁 싸맨 작은 짐 가방, 마치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내 마음 같다.
비자를 받으러 집으로 가는 길,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오는 길에는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내 생각보다 조금만 눈물이 나면 좋겠다. 이제 진짜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다시 오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