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쉬운 마늘 까기
어린 시절, 아빠는 배추를 씻어 욕조에 넣었다. 아직 기세 등등한 배추들이 소금물에 몸을 푹 담가 노곤노곤 해지길 기다리는 사이, 엄마는 물이 담긴 양푼에 줄기에서 떼어낸 마늘들을 쏟아서 거실로 가져왔다.
“이 마늘 좀 같이 까자. 까서 여기에 두면 돼.”
엄마가 작은 칼로 마늘 끝을 살짝 자르고 다시 물이 담긴 양푼에 담그면, 나와 동생은 작은 마늘 낱알을 찾아서 손끝으로 조심스레 껍질을 벗겼다. 적당히 물에 불려진 마늘의 껍질은 마른 것보다 까기 수월 했지만, 축축하고 눅눅한 마늘을 찾아 건지느라 손가락은 목욕탕에 있는 것처럼 금세 쭈글쭈글해졌다. 한눈에 보이는 겉껍질을 보다 얇은 속 껍질을 벗기느라, 때론 손 끝이 아려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엄마 눈을 피해 마늘 끝을 좀 더 잘라냈다.
“끝을 이렇게 많이 자르면 어떡해.”
“잘 안 벗겨진단 말이야.”
작은 마을 한 톨의 껍질을 벗기는 것은 단순하지만, 꽤나 귀찮은 일이었다. 깨끗하게 벗은 마늘이 수북하게 그릇에 쌓이면, 엄마는 다른 곳에 옮겨두고 또 빈 그릇을 가져왔다. 모두 벗겨진 마늘은 믹서기에 들어갔고, 윙윙 소리가 난 후 지퍼백에 담긴 후 냉동실로 들어갔다. 양푼엔 마늘이 벗은 옷들이 가득 쌓였다.
일본인 친구는 내게 ‘한국인의 힘은 마늘’이라고 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마늘을 많이 먹어서 더 건강하고, 피부도 더 좋은 것 같다며. 마늘을 뺀 한국을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무엇인가 부족하다 싶으면, 다진 마늘 한 스푼을 넣으면 맛이 깊어졌고, 삼겹살에도 구운 마늘을 빼놓을 수 없다. 세계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반가운 재료이면서, 까는 것이 망설여지는, 애증의 관계라고 할까.
그러나, 모스크바에서 내게 마늘에 대한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이건 통마늘이야. 체스녹(чеснок 러시아어로 마늘) 솔로라고 쓰여있지?”
“이게 마늘이라고?”
눈 앞에 놓인 것은 내가 지금까지 본 마늘과 생김새가 달렸다. 여러 형제자매가 어깨동무하여 한 집을 이룬 형태가 아닌, 독립된 외동의 존재처럼 보였다. 반신반의하며 장바구니에 담아온 마늘을 집에 오자마자 꺼냈다. 아니! 세상에, 이런 마늘이 있다니! 끝을 살짝 자르니 마늘의 껍질이 순식간에 벗겨졌다. 마치 찜질방에서 먹는 맥반석 계란을 톡 깨면 스르르 벗겨지듯, 마늘은 곱고 반질 반질한 속살을 드러냈다.
“와, 세상에서 가장 까기 쉬운 마늘이다.”
“파스타 할 때, 편 썰기도 좋아. 그래서 이 마늘만 쓰게 되더라.”
“까서 모아 두니까, 꼭 치즈 같다.”
나는 지금껏 엄마와 함께 깠던 마늘을 생각했다.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만나는 이들 마다, 이 마늘의 존재를 알렸다. 중국인 친구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 마늘. 중국에도 있어.!”
그랬구나. 중국과 러시아에는 있었구나. 한국에는 없는데.... 마늘아 마늘아. 넌 또 어느 나라에 숨어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