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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Oct 10. 2020

즈드라스부이쩨!

러시아어를 배웁니다.

비자를 받기 위해 잠시 한국에 왔다. 오래간만에 본 친구들은 만나자마자, 내게 이상한 말로 인사를 건넸다.

“궤세까? 몬쥐라리냐?!”
“응? 너 지금 나한테 욕 한 거야?”  
“어, 이거  러시아어로 ‘안녕하세요? 오늘 기분 어때요?’ 아니야? 인터넷에서 봤는데!”  

친구는 휴대폰에서 정보의 출처를 보여줬다. 인터넷 카페의 게시물로 버젓이 ‘러시아 인사말’로 올라와 있었는데, 딱 보기에도 잘못된 정보였다. 게시물의 댓글은 수정 요청이 아닌 ‘러시아어, 정말 웃기네요.’라는 말만 쓸쓸하게 달려있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러시아어 인삿말


모스크바 이주를 앞두고, 러시아어를 배우기로 했다. 한국은 모든 외국어를 위한 어학연수로 최적화된 나라가 아닌가, 퇴사 후 두 달의 자유시간, 빠짝 러시아어를 배울 수 있는 학원을 찾다가 난관에 봉착했다. 학원 선택의 폭이 많지 않았다. 알파벳부터 배울 수 있다는, 약수역의 푸시킨 하우스의 매일반을 등록했다. 개강을 앞두고 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어쩌죠. 수강생이 한 명뿐이라, 수업이 폐강이 될 것 같아요.”
“아, 저 말고는 없나요? 그럼 어쩌죠?”
“주 3회 기초반 수업은 열릴 것 같은데, 그 수업으로 바꿔드릴까요? 오전 9시에 수업 시작이에요.”

퇴사 후 처음 맛보는 자유 ‘늦잠’을 포기하고, 나는 다시 출근길의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50분의 수업을 위해 왕복 3시간이 걸렸다. 작은 강의실엔 나를 포함 5명의 학생이 있었다. 선생님은 왜 러시아어를 배우는지 물었다.

“월드컵 때 러시아에 놀러 가고 싶어요.”
“영어 외에 다른 비인기 언어를 배우고 싶어서요.”
“러시아어는 하는 사람이 많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내 차례,
“그곳에서 살게 되었어요.”

 
알파벳을 쓰고 읽기부터 시작한 기초반은 다음 반으로 이어졌는데, 흥미와 호기심으로 시작한 이들은 다시 만날 수 없었다. 두 달 연속 듣는 이는, 나와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 러시아로 가게 된 친구, 두 명뿐이었다. 러시아에서 유학한 선생님은 우리에게 러시아와 러시아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제가 러시아어를 가르친다고 하면, 만나는 분들이 눈을 반짝이며 물어봐요. 러시아어로 안녕하세요가 뭔가요? 즈드라스부이쩨! 아.... 그럼 감사합니다는 요? 쓰파씨바.... 아... 하고 그다음부터 다들  말씀이 없어지죠.”

선생님은 웃었다. 모든 외국어 학습의 첫걸음은 인사말이다. 첫인상이 어려운 언어는, 두 번째 발걸음을 떼기 쉽지 않다. 곤니찌와, 니하오, 봉쥬르! 광고나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인사말이 얼마나 많은가. 그에 비해 러시아는 생소하고, 러시아어는 더욱 낯설었다.

“제가 보니 4개 국어를 하는 분들 중에 러시아어가 있는 경우는 드물더군요. 다른 언어에 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거 같아요. 하지만, 러시아어는 수학적이고 체계적이에요.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은 러시아어가 잘 맞을 수 있어요.”

아뿔싸. 나는 수포자다. 대입 수능에서도 수리영역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른 영역에 집중했다. 수포자인 내가 러시아어와 친해질 수 있을까. 알파벳을 열심히 그리며 두 달이 지났다. 러시아어가 그림이 아닌 글자처럼 보였다. 영어 알파벳 N 과 닮은 러시아어 알파벳 И  을 쓸 때, 방향에선 여전히 움찔하지만.... 점심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켰다. ‘즈드라스 부이쩨!’만 귓속으로 들어오고, 다른 말들은 귓등을 스쳤다. 가만, 면봉을 어디에 뒀더라, 오늘은 귀 청소를 한 번 해볼까....


러시아어 공부에 최적인 가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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