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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Oct 12. 2020

두 가지 언어를 배우는 삶

베를린에서 이모를 만났다.


이모는 베를린에 산다. 그녀가 결혼하던 때엔, 누구나 해외에 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모가 간호사로 있던 병원의 환자였던 독일인 부부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고, 자신의 아들을 소개했다. 파란 눈의 독일인과 사랑에 빠진 이모는 호적을 바꿔, 나이를 올려 결혼과 함께 고국을 떠났다. 이모부의 직업 특성상, 그녀의 가족은 독일, 터키, 인도네시아 등 해외 곳곳을 돌아다니며 살았다. 엄마의 작은 언니를 우리는 ‘독일 이모’라고 불렀다.

이모는 가끔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사촌 언니가 작아서 입지 못하는 옷가지, 가방, 신발 등을 가져왔는데 거기선 특유의 냄새가 났다. 터질 것 같은 큰 가방이 열리면, 동생과 나는 코를 킁킁 거리며 “독일 냄새다!”라고 했다. 한국에서 맡아보지 못한 바다 건너 나라의 냄새. 지금 생각하면 해외의 세제, 섬유 유연제 냄새가 아니었을까 싶다.

“넌 이모랑 참 많이 닮았어. 좋아하는 것들도 그렇고.. 결혼도 그렇네.
 이제 시차가 같으니까, 가면 이모에게 연락 자주 하고~”

먼 옛날 자신의 언니처럼,  결혼과 함께 고국을 떠나는 내게 엄마는 말했다.
 
모스크바에서 베를린까지 3시간 반, 결혼 한지 한 달만에 이모를 보러 가게 됐다. 남편은 갑작스레 4박 5일의 출장을 가게 되었다며, 홀로 집에 있을 나를 걱정했다. 결혼과 함께 모스크바로 온 나는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웠다. 행복하면서도 쓸쓸한 기분. 때때로 낯선 감정이 찾아오면 남편에게 쏟아 내었고, 고스란히 내 감정을 받아주는 그를 보는 것도 스스로 미성숙한 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베를린에 다녀와, 이모도 만나고 햇볕도 많이 쬐고, 기분 전환하고 와.”

설상가상으로 모스크바는 이미 초가을의 날씨가 되어, 한 번도 꺼내지 못한 여름옷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등 떠밀리듯 모스크바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S7 시베리아 항공을 탔다. 비자를 받아야 하는 러시아인과 달리, 어디든 통과할 수 있는 한국인.  초록색 여권으로 입국심사도 가장 빠르게 통과했다. 이렇게 뿌듯한 날이 오다니! 영어를 쓴다! 그리고 사람들이 잘 웃는다! 따뜻한 햇살과 살짝 습한 더위가 반가웠다.

이모네 집에 도착하여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그녀가 오지 못한 나의 작은 결혼식 사진을 보여주며, 가족 이야기, 소소한 일상, 이모의 옛이야기까지... 미처 알지 못했던 어린 이모가 그 안에 있었다. 결혼과 함께 고국을 떠난 해외 생활의 외롭고 쓸쓸함, 그 시간을 어떻게 통과했는지...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이야기를 들었다. 이모의 결정적인 한마디는 이 것이었다.     

“너는 그래도, 남편이 한국 사람이니까.”

맞다. 나는 남편이 한국사람이지. 국적이 다른 이와 시작한 이모의 결혼생활은, 나와 조금 다른 시작점이었을 것이다.


결혼과 함께 모스크바에 오면서 나는 두 개의 언어를 배우고 있었다. 하나는 러시아어이고, 다른 하나는 남편의 언어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우리는 표면적으로 한국어라는 같은 모국어를 쓰지만, 다른 외국어처럼 서로의 언어가 가진 뉘앙스를 완벽히 읽기엔 학습이 필요했다.


외국어를 배울 때 꾸준함과 시간이 필요하듯, 서로의 사랑의 언어도 그랬다. 결혼과 함께 독일어를 배우고, 독일어로 표현되는 이모부의 언어까지 배워야 했던, 그때의 이모는 어땠을까. 나는 나보다 어렸던 베를린 새댁, 이모를 꼭 안아주었다. 독일 이모에게 엄마 냄새가 났다.


이모와 함께 만든 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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