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이대로 괜찮아

베를린의 밤

by 불가사리


친구가 그리웠다. 굳이 나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오랜 시간을 나눈 사이가 보고 싶었다. 결혼과 함께 남편을 따라 모스크바에 살게 되면서, 그가 알던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그의 아내”로 소개되는 자리가 어색했다. 그에겐 친구였던 이도, 내게 모두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 Ana_J, 출처 OGQ

내가 운전을 잘한다고 사고의 위험을 피할 수는 없다. 관계도 그렇다.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언제든지 깨어짐을 경험할 수 있다. 해외에서 큰 사고를 한 번 겪은 후에, 나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분했지만, 사고의 순간에 최대한 말을 아꼈다. 많은 설명을 하고 싶지 않았다. 거짓은 언젠가 밝혀지고, 결국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많은 말을 한 이는 후에 그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 믿었다.


그 시간을 침묵으로 견디면서, 나는 친구가 그리웠다. 누군가 나에 대해 어떤 말을 하더라도 ‘에이, 불가사리가 그럴 리 없는데, 네가 오해한 거 아닐까?’라고 해줄 수 있는 그런 친구. 나와 진실한 시간을 공유한 사이가 그리웠다.


웰컴 투 베를린 :)

베를린에는 친구들이 있었다. 한 때 회사 동료였던 S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일하고 있다. 마침 그녀의 베를린 출장과 나의 여행 기간과 겹쳐서, 잠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잘 지내고 있었어?”
“이게 몇 년만 이에요. 모스크바 생활은 어때요?”


안부를 묻는 그녀의 다정한 목소리에 마음이 울컥했다. 우리는 서로의 교집합 속 사람들의 소식을 나누고, 지난 시간들을 떠올렸다. 서로만 알 수 있는 추억의 단어, 유머, 대사로 상황극까지 한 판 하고 나니 숨통이 트였다. 그렇고 그런 사이, 그녀와의 짧고 굵은 만남에 쩍쩍 갈라졌던 마음의 땅에 단비가 내렸다.

마음에 든 엽서 You're my favorite person

모스크바에 도착한 첫 해, 러시아어 학교 같은 반에서 함께 공부한 대만 친구 M도 이 곳에 있었다. 그는 베를린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유학을 이어가는 중이다. 메신저로 연락을 했더니, 한걸음에 달려왔다.


“불가사리, 우리 한국음식 먹자. 내가 살게.”

“그럼 후식은 내가 사게 해 줘.”


대만 친구와 베를린의 한국식당


베를린의 한국식당 삼겹살과 순두부찌개를 시켰다. 러시아어로 대화를 시도하다가, 서로 틀린 문법을 고치느라 바빠졌다. 안부를 나누고, 이미 본국으로 돌아간 친구들의 이야기를 나눈다. 모스크바와 베를린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아시아인 두 명은 한식을 먹고, 대만 밀크티 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근 베를린에 오픈했다는, 그의 고향의 유명한 밀크티를 들고 우리는 함께 베를린을 걸었다. 오랜만에 밤공기를 마시며 많이 웃고 떠들었다. 마음이 촉촉해졌다.


베를린의 대만 밀크티


베를린, 오랜 친구들이 있는 도시. ‘암스테르담에서 이 곳으로 오기를 잘했어.’ 나는 이번 여행의 끝이 마음에 들었다. 어젯밤 S는 말했다.



“언니, 암스테르담 좋죠? 근데 그래서 난 좀 부담스럽더라. 적당히 더럽고, 적당히 이상한 사람도 있는 베를린이 나에게 더 딱인 거 같아요.”


나도 그랬다. 일하면서, 러시아어를 배우면서 함께 울고 웃었던 사이, 두 친구들 앞에서 나 적당히 더럽고, 이상해도 괜찮았다. 베를린, 이 도시를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나도 그냥 그대로의 나여도 괜찮다고, 스스로 쌓아온 마음의 장벽을 조금씩 허문다.

베를린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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