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살리는 ‘한 사람’
사람과 사람이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먼저 같은 시기에 서로 살아 있어야 하고, 많은 대륙 중 같은 땅에서, 시간이 겹쳐야 한다. 어떤 인연은 나도 모르게 스쳐가지만, 단 한 번의 만남이 다른 공간까지 이어져 만남이 계속된다. 내게 C는 신기한 인연이었다.
우리는 한국의 러시아어 학원에서 처음 만났다. 그녀도, 나도 남편을 따라 해외이주를 앞두고, 생존을 위한 러시아어를 배우러 왔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단 두 달, 한 달은 서로 눈인사만 하다가, 함께 듣던 수강생들이 중도 포기하면서 다음 단계는 나와 그녀 둘 만 남게 됐다.
“러시아 어디로 가세요?”
"저는 모스크바로 가요.”
"어머, 저도요. 나중에 모스크바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모스크바가 얼마나 넓은가!. 서울의 김서방을 찾듯 쉽게 만날 수 없는 게 사람의 인연이다. 종종 연락을 주고받던 우리는, 먼저 주재원으로 나가 있던 그녀의 남편이 집을 구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됐다.
“언니, 남편이 집을 구했는데...”
"어머, 거기 우리 아파트야. 옆 동인가 봐.”
수많은 대륙 중 러시아. 넓고 넓은 모스크바에서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내가 먼저 모스크바에 왔고, 그녀는 두 달 후 이백일을 갓 넘긴 아가와 함께 이곳에 도착했다. 아가가 있는 그녀는 육아로, 나는 바로 어학교에 입학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햇빛이 내리쬐는 날, 우리는 종종 함께 산책을 했다.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되는 날에는 그녀의 집에서 함께 티타임도 가졌다. 저녁을 짓다가 손이 커서 음식을 많이 한 날, 서로 엇갈려 한국에 다녀온 후에 우리는 서로 연락을 했다.
"잠깐 볼까? 저녁에 짜장을 했는데.. 괜찮다면...!”
“언니, 저도 줄 게 있어요.”
동과 동 사이, 단지 내의 화단을 따라 서로를 향해 걷는다. 손에 무겁게 들린 음식, 집에서 만든 반찬들, 한국에서 가져온 분홍 소시지를 비롯한 구호식품을 교환했다. 먼 옛날, 이웃사촌의 정이란 이런 걸까. 슈퍼를 다녀오는 길, 나는 습관처럼 고개를 들어 그녀의 집 창문을 본다. 불이 켜진 집을 보며, 가까운 곳에 그녀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언니, 떠나기 전에 우리 어서 만나요.”
코로나로 닫혔던 하늘길이 다시 열렸다. 나는 모스크바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그녀는 아가와 함께 한국에 남기로 했다. 엄마 등에 업혀있던 아가는 이제 걷고 말도 한다. 대륙을 옮기면서도 이어진 신기하고, 고마운 인연. 그녀 덕분에 모스크바의 날들이 따뜻했다.
“언니 덕분에 제가 살았어요.”
"C야, 내가 네 덕분에 살았지.”
서로가 서로를 살릴 수 있는 사이가 된다는 것. '덕분에 살았어요.'라는 그 말을 처음 듣던 또 다른 날이 생각났다. 아프리카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서 반나절을 달려 도착한 마을, 그곳에서 만난 한 엄마는 걸음마를 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내가 일하던 국제구호기관에서는 모자를 위한 보건 영양 사업을 진행 중이었다. 그녀는 이미 두 명의 아이를 잃었지만, 우리가 한 사업 덕분에 건강한 출산과 영양지원을 받으면서, 지금의 아이를 지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이 아이는 당신들 덕분에 살았어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눈물이 났다. 한 사람으로 인해 상처 입고, 괴로워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날도 있지만, 또 한 사람의 말 때문에 잘 살고 싶어 지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 말 한마디로 서로를 살릴 수도 있고, 서로를 죽일 수도 있는 관계. 내게 주어진 우연과 같은 만남에 다정하자고 다짐한다. 서로 초대하고, 초대받는 인생에서 서로를 살리는 ‘한 사람’ 이 되는 기회를 가능한 더 많이 잡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