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허니!

모스크바 꿀 시장에 가다

by 불가사리


'러시아는 마트료시카 말고 뭐가 유명해?'


나 또한 한국에 갈 때마다, 무엇을 사면 좋을까 고민한다. 마트료시카 외에 유명한 것 중 하나는 ‘꿀’이다. 모스크바 동남쪽 깔라멘스꼬에 공원에서는 매해 8월 초부터 석 달간 대규모 꿀 시장(ярмака мёда в коломенском) 이 열린다. 러시아 전 지역에서 채집되어 올라온 다양한 종류의 꿀을 맛보고 살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카시아 꿀부터 꽃 꿀, 메밀꿀, 밤꿀... 처음 보는 색과 질감의 꿀이 가득하다.


다양한 색, 질감의 꿀들 _ 모스크바 꿀시장


“꿀이 캐러멜 같아. 하얀 색도 있네”
“마음에 드는 거 맛볼래? 맛보기 스푼이 있어.”

다양한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놓고, 무슨 맛을 골라야 할지 모르는 심정으로 나는 많은 꿀들 앞에 정신을 잃었다. 마음에 드는 것들을 가리켰더니, 점포의 여주인은 하얀색 스푼에 꿀을 떠서 우리에게 건넸다.

러시아인들이 좋아하는 보리수꿀, 감기/콧물 등에 좋다고 쓰여있다.


“와, 엄청 달콤해. “
“이 것도 맛있다.”

각각 다른 종류의 꿀을 맛본 우리는 ‘맛있다’를 연발했다. 한국어로 말해도, 우리의 표정으로 이미 긍정의 기운을 눈치챈 여주인은 속사포로 꿀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프로폴리스, 로얄젤리가 들어있다는 야생벌꿀 :)


“갓 채집해서 온 거라 신선해요. 이 꿀은 두통에 좋고, 이 꿀은 알레르기를 유발하지 않죠. 감기에도 좋아요.”

러시아인에게 꿀은 만병 통치약일까? 종류별로 다른 꿀마다, 어디에 도움이 되는지 효능이 쓰여 있다. 내게 꿀물은 숙취해소에 가까운데... 이 곳의 사람들은 일상에서 꿀을 즐긴다. 꿀로 만든 케이크 <메도빅 медовик> 은 러시아인들의 국민 디저트 중 하나로, 스펀지 크림에 꿀이 들어 있어 촉촉하고 깊은 맛이 난다. <메도부하 медовуха> 불리는 꿀맥주도 있다. 우리에게 디즈니 만화 캐릭터로 알려진 노란색 푸우의 러시아 버전은 생김새가 많이 다른데, 꿀을 좋아하는 건 똑같다. 왠지 꿀과 더 잘 어울리는 느낌! (선생님의 설명에 의하면, 이 만화는 소비에트 시절에 만들어진 오래된 애니메이션이라고 한다.)


러시아 푸우와 디즈니 푸우
꿀 케이크 메도빅 과 슈퍼에서도 볼 수 있는 꿀 맥주 메도부하 (가운데)


주르르 흐르는 질감 외에, 캐러멜처럼 끈끈한 꿀도, 투명한 노란빛의 아카시아부터, 짙은 갈색의 밤꿀, 러시아인들이 좋아하는 하얀색 꽃 꿀, 벌집, 화분, 밀랍으로 만든 초들까지, 벌에 대한 모든 것이 이 곳에 가득하다. 이것저것 보느라 눈을 떼지 못하자, 여주인이 다른 맛보기

스푼을 건넸다.

“이 것도 맛보세요. 프로폴리스가 들어있어요.”

칙칙- 목 안 쪽으로 뿌리는 프로폴리스 스프레이. 그게 들어간 꿀이 있다고? 맛을 보니 프로폴리스 특유의 향과 맛이 느껴졌다. 아, 목이 칼칼할 때 참 좋을 것 같은데... 이 꿀을 사면 약 먹고 사탕 따로 안 먹어도 되는 거잖아? 마치, 민트 초콜릿을 먹으면, 양치질을 건너뛰어도 괜찮을 것 같은 착각. 엄청난 콜라보의 기운이 느껴진다. 이건 사야만 해.

“한국에 있는 부모님도 사다 드릴까?”
“친구들 것도 사자.”



여주인은 오른손에 빈 통을, 왼 손에는 큰 스푼을 들고 꿀을 담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홈이 파인 꿀 스푼이 아니면, 납작한 수저로 꿀을 뜨면 꼭 흘리게 되던데.... 날렵한 그녀의 손목 스냅에서 오랜 장인의 손길을 느낀다. 몇 번을 뒤집어도, 절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던 터키 아이스크림처럼 그녀는 단 한 방울의 꿀도 바닥에 흘리지 않았다. 우리의 지갑은 가벼워졌고, 남편의 두 손은 무거워졌다.

“아, 너무 많이 샀나 봐...”

두 손 무겁게 꿀통이 담긴 비닐봉지를 든 남편을 보며, 내가 멋쩍게 말했다.

“아니야, 잘 샀어. 있을 때 사야지- 나중엔 못사.”

역시... You are my HONEY, 오늘의 꿀과 같은 답변, 만점 드릴게요.


만약 러시아를 여행하게 된다면 마트료시카, 당근 크림, 할머니 샴푸가 아닌 꿀이 들어간 메도빅(꿀 케이크), 메도부하(꿀 맥주)도 맛보세요. 특히 꿀은 프로폴리스가 들어간 꿀 (мёд с прополисом 묘드 스 프로폴리섬) 참 괜찮습니다.


https://youtu.be/zyH0KEa86PA

모스크바 깔라멘스꼬에 공원의 대규모 꿀시장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의 사랑, 트람바이